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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권력 개념을 통해 본 우생학②
[김발의 장애학 연구노트-17]
예외상태에 놓인 생명, 장애인
등록일 [ 2015년08월18일 14시58분 ]

이탈리아의 정치철학자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은 푸코가 제시한 생명권력 개념을 새로운 방향에서 확장하고 심화시켜 낸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 그는 푸코와 달리 생명권력이란 근대 이후에 탄생한 것이 아니라 고대 그리스 이래의 서구 정치 구조 속에 항상 이미 함축이 되어 있었다고 주장 합니다. 거칠게 말하자면 그의 관점에서는 ‘살 가치가 없는 생명’을 결정하는 생명권력이란 모든 주권 권력의 핵심에 놓여 있는 것이고, 단지 근대 이후에 그러한 생명권력의 발현이 좀 더 일상화 내지 전면화된다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러한 아감벤의 생명권력 이론에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이 바로 그가 쓴 가장 유명한 저서의 제목이기도 한 ‘호모 사케르(Homo sacer)’1)와 ‘예외상태(state of exception)’2)라고 할 수 있는데요, 호모 사케르란 일단 예외상태에 놓여 있는 벌거벗은 생명(bare life)이라고 정의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벌거벗은 생명이란 무엇이며, 예외상태란 또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 ‘호모 사케르’와 ‘예외상태’라는 개념을 통해 푸코의 생명권력 이론을 확장하고 심화시켜 낸 조르조 아감벤.

 

고대 그리스에서는 삶/생명(life)을 가리키는 단어가 두 개로 구분되어 있었는데요, 그 하나는 조에(zoē)고 다른 하나는 비오스(bios)입니다. 조에란 모든 생명체에 공통된 것으로 살아 있음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즉 동물적·생물학적 삶/생명이 바로 조에입니다. 반면 비오스란 어떤 개인이나 집단에 특유한 삶의 형태나 방식을 가리킵니다. 즉 정치적·사회적 존재로서의 삶/생명이 바로 비오스이지요.


고대 그리스에서는 조에로서의 삶이 영위되는 공간은 오이코스(oikos), 즉 가정이었고 비오스로서의 삶이 실현되는 공간은 폴리스(police)였으며 이 둘은 철저하게 분리·구분되었습니다. 아감벤은 주권 권력에 의해 비오스의 영역에서 ‘추방’되고 ‘배제’되어 조에로서만 존재하는 생명을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이야기했던 ‘한갓 생명(bloßes Leben)’과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이야기한 ‘단순한 생명(sheer life)’ 개념을 참조하여 ‘벌거벗은 생명’이라고 부릅니다.


아감벤은 이러한 벌거벗은 생명의 대표적인 형상을 고대 로마법에 나오는 호모 사케르에서 찾는데요, 로마법에서 호모 사케르는 “희생물로 바치는 것은 허용되지 않지만 그를 죽이더라도 살인죄로 처벌받지 않는” 자로서 기술됩니다. 호모 사케르는 희생물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신의 법에서도 배제되어 있고, 그를 죽여도 살인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세속의 법에서도 배제되어 있는 존재, 즉 법질서의 외부에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호모 사케르가 주권 권력에 의해 법[즉 권리]으로부터 추방되고 배제된 채 벌거벗은 생명으로서만 존재하는 영역이 바로 ‘예외상태’입니다.


이러한 예외상태는 좀 단순화시켜 얘기하자면 일종의 치외법권지대(extra-territory)라고 할 수 있는데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치외법권지대로서의 예외상태는 단순히 법으로부터 배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배제된 채 법에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예외상태는 법의 효력이 정지되고 미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는 법의 외부에 있지만, 그 자체가 법에 의해 규정된다는 의미에서는 여전히 법의 내부에 있으며 법과의 관계를 잃지 않습니다.


위상학적으로 말하자면 예외상태란 법의 내부와 외부의 경계·극한·문턱, 좀 더 정확히는 그러한 내부와 외부의 구분이 불가능해지는 비식별역(zone of indistinction)에 해당합니다. 결국 호모 사케르 역시 배제의 형식을 통해(서만) 법에 포함되는 존재, 그러한 비식별역에서 주권자의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지요.


이처럼 ‘예외상태’에 놓인 자로서의 ‘호모 사케르’라는 형상을 우리는 바로 산전 검사와 선별적 낙태의 대상이 되는 장애를 지닌 태아에게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장애를 지닌 태아가 우리 사회에서 ‘살 가치가 없는 생명’으로 간주되고 임의적인 폭력 앞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며, 낙태와 관련된 법에서 장애가 말 그대로 예외적 조건으로 취급된다는 점에서 또한 그러합니다.


우리나라는 낙태가 실제로는 매우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법에 의해서는 엄격히 제한되어 있는 나라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모자보건법」은 제14조 ①항에서 합법적으로 낙태(인공임신중절수술)가 이루어질 수 있는 예외적인 경우를 명시하고 있는데, 그 중 1호가 바로 “본인 또는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우생학적(優生學的)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입니다. 이러한 조항은 태아의 장애 여부를 직접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매우 명시적으로 장애를 지닌 생명의 가치를 절하하면서 장애아의 출산을 합법적으로 방지하는 말 그대로의 ‘우생학적’인 규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영국의 「낙태법(Abortion Act)」은 임신 24주 후에는 임신중절을 금지하지만, 아이가 심각한 신체적 또는 정신적 손상을 지니고 태어날 상당한 위험이 존재하는 경우만은 예외로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예외조항은 표면적으로 태아가 출산 과정의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가능성이 희박하거나 또는 신생아기 사망(neonatal death)―살아서 태어난 아기가 4주 이내에 사망하는 것―에 이를 수 있는 경우를 포괄하기 위해 마련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법이 ‘심각한 장애를 지닌(severely handicapped)’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와 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심각한 장애와 그렇지 않은 장애의 경계를 어디에서 그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문제, 즉 누가 실제로 태아에 대해 ‘주권자’로 행세하는가의 문제는 최종심급에서 결국 의료권력의 재량에 맡겨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 속에서 그 자체로 생명을 전혀 위협하지 않는 구개열(口蓋裂)을 이유로 태아에 대한 낙태가 이루어진 경우도 있었지요.3)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합법적으로 낙태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부모가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이기 때문에, 사실 산전 검사에 의한 장애태아의 선별적 낙태는 성별 선택(sex selection)에 의한 낙태와 마찬가지로 불법이라고 주장될 수 있습니다.4) 그러나 그러한 낙태가 불법/합법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일종의 비식별역으로 들어올 수 있는 것은 「모자보건법」제14조 ①항 5호에서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낙태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의료권력이 손상을 지닌 태아의 임신은 그 정신적 고통과 스트레스로 인해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칠 것이라는 자의적 판단을 내릴 권한을 부여받아 행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5)


대한민국의 보건복지부가 제공하고 있는 국가건강정보포털(health.mw.go.kr)에서는 ‘산전 기형아 검사’ 항목의 개요 부분에서 “임신부나 그 가족은 임신 기간 내내 태아가 건강할까하는 불안감으로 많은 걱정을 하게 됩니다. 만일 유전적 질환이나 선천적 기형을 갖고 있는 신생아가 태어나면 부모와 다른 가족은 물론 본인도 신체적, 정신적, 경제적 부담으로 고통 받기 때문입니다.… 특히 염색체 이상이 있는 경우는 평생 장애를 갖게 되고, 대부분 다발성 기형을 동반하므로 더욱 심각한 문제입니다.”라고 서술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의 작성 및 감수자로 ‘보건복지부/대한의학회/대한산부인과학회’라고 명시가 되어 있지요.


국가권력과 결합된 의료권력의 이러한 공식적인 입장 속에는 “신체적, 정신적, 경제적 부담으로 (인한) 고통”과 “심각한 문제”에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지시적인 방향성이 또한 함축되어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대처법(즉 선별적 낙태)은 법의 내부와 외부의 구분이 무의미해지는 비식별역에서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실행되고 있겠지요.


(다음 글에서 계속)

 

 

각주 1) 조르조 아감벤, 『호모 사케르: 주권 권력과 벌거벗은 생명』, 박진우 옮김, 새물결, 2008.

 

각주 2) 조르조 아감벤, 『예외상태』, 김항 옮김, 새물결, 2009.

 

각주 3) Donna Reeve, “Biopolitics and Bare Life: Does the Impaired Body Provide Contemporary Examples of Homo Sacer?”, eds. Kristjana Kristiansen, Simo Vehmas and Tom Shakespeare, Arguing About Disability: philosophical perspective, London and Lew York: Routledge, 2009, p. 207.

 

각주 4) 이러한 지점은 소위 ‘원치 않은 출산(wrongful birth)’ 소송에서 법원에 의해 간접적으로 확인된 바 있다. 장애가 있던 첫째 아이를 기르던 곽모 씨는 2005년 7월 태어난 둘째 아이마저 아무런 이상이 없다던 병원의 검사 결과와는 달리 지적장애 1급 판정을 받았고, 지난 2012년 ‘장애아인 것을 알았더라면 아이를 낳지 않았을 것인데 병원 측 과실로 장애아를 낳고 키우게 됐다’며 병원 측을 상태로 총 2억 4천만 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그러나 2013년 6월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은 ‘태아의 질환은 모자보건법이 허용하는 낙태사유가 아닌 점’을 들어 “곽 씨가 둘째 아이의 장애를 알았다 하더라도 아이를 낙태할 결정권이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고, 2014년 7월 대전고등법원 역시 원고의 항소를 기각했다. 반면 장애태아에 대해 낙태를 선택할 부모의 권리를 인정하고, 의사가 산전 검사를 잘못하여 낙태를 할 수도 있었는데 못했을 경우 이에 대한 위자료는 물론 재산상의 손해에 대한 법적 책임까지도 인정한 판례 역시 존재한다. 서울서부지법 민사 11부는 2006년 12월 6일, 상염색체 열성 유성질환인 척추성근위축증(Spinal Muscular Atrophy, SMA)을 지닌 자녀를 출산한 김모 씨 부부가 학교법인 연세대학교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피고 병원은 원고들에게 1억 6천여만 원을 지급하라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던 바 있다.

 

각주 5) 김나경, 「태아의 장애를 이유로 하는 임신중절: 사회학적 구조와 형법정책」, 『형사법연구』 제19권 제1호, 2007, 129쪽.

 

각주 6) http://health.mw.go.kr/HealthInfoArea/HealthInfo/View.do?idx=3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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