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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권력 개념을 통해 본 우생학④
[김발의 장애학 연구노트-19]
저항의 두 가지 차원: 주체화와 저항권
등록일 [ 2015년08월31일 21시17분 ]

우생주의적 실천이 과거에는 국가의 강압적인 정책을 통해 이루어졌다면, 앞선 글에서 설명했듯이 현대 사회에서는 우생주의적 욕망을 내면화한 개인들의 자발적 선택이라는 형식을 통해 이러한 실천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바로 이와 같은 상황을 지칭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개인주의적 우생학(individual eugenics)’이나 ‘자발적 우생학(voluntary eugenics)’ 같은 개념1)이라고 할 수 있지요. 트로이 더스터(Troy Duster)가 ‘뒷문으로 이루어지는 우생학(back door eugenics)’2)이라고 불렀던 것, 그리고 철학자 필립 키처(Philip Kitcher)가 사용하는 ‘소비자 우생학(consumer eugenics)’과 ‘자유방임 우생학(Laissez-faire eugenics)’이라는 용어3)도 뉘앙스와 시각은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같은 맥락 내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우생주의적 욕망의 내면화 과정에는 무엇보다도 무한경쟁의 체제에서 밀려난 주체들을 ‘사회적 배제’의 영역으로 밀어내 “죽게 내버려”지도록 만드는 현실이 가로놓여 있습니다.

 

▲▲장애대중을 비롯한 한국사회의 빈곤계층에서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자살, 스페인의 맑스주의 사회학자 마누엘 카스텔을 참조하자면 그것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제도적으로 금지”당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타살이다. (사진 앞 열의 오른쪽이 마누엘 카스텔)


스페인의 맑스주의 사회학자 마누엘 카스텔(Manuel Castells)은 사회적 배제를 “특정한 개인들과 그룹들이 어떤 주어진 환경에서 제도와 가치에 의해 고안된 사회 표준 내의 자율적인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위치로의 접근을 제도적으로 금지당하는 과정”이라고 정의합니다.4) 장애대중을 포함한 한국사회의 빈곤계층에서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자살―즉 죽음의 자발적 선택―을 우리가 사회적 타살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바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제도적으로 금지”당함으로 인해 발생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대 사회의 우생주의에 대한 저항은 서로 연동되어 있는 다음의 두 가지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 주체의 측면에서는 신자유주의적 통치 권력과 우생주의적 욕망에의 예속화(assujettissement)에서 벗어난 주체화(subjectivation)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확장하는 것입니다. ‘예속화’가 기존 체제의 통치 원리에 따라 자기 관리를 실행하는 순응적․복종적 주체의 형성이라면, ‘주체화’란 그러한 통치 원리에 의거하지 않는 이탈적․저항적 주체의 형성, 즉 ‘자기 자신에 의한 자기의 형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존 체제의 질서와 이데올로기는 다양한 장치를 통하여 이에 예속된 주체를 생산해내지만, 우리가 직관적․경험적으로 확인할 수 있듯이 그러한 과정이 ‘모든’ 구성원을 대상으로 ‘완전무결’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시설 체제는 그러한 시설의 규율과 권력에 순응하는 주체들을 생산해 낼 수 있기에 유지되지만, 그로부터 이탈을 하고자 하는 탈시설의 욕망을 지닌 주체들의 생성을 완벽히 막아낼 수는 없습니다. 즉 예속화에는 양적인 측면에서나 질적인 측면에서 언제나 일정한 여백 내지 공백이 존재를 하는 것이지요.


푸코는 『성의 역사 1: 앎의 의지』에서 “권력이 있는 곳, 거기에는 저항이 있다”고, 저항은 권력관계의 “축소[배제]할 수 없는” “또 다른 항”으로서 그러한 권력관계 속에 기입되어 있다고 말합니다.5) 그렇다면 권력에의 예속화란 단 한 번의 절차로서 완수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반복되면서 성공을 거두어야 하는 어떤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6) 그리고 그러한 반복과 갱신의 과정에서 주체의 내재적 ‘반성’에 의해, 보다 일반적으로는 우발성을 띤 외재적 ‘사건’―타자와의 만남을 포함한―의 틈입과 이러한 반성의 결합에 의해 일정한 균열의 가능성이 발생하고 현실화될 수 있습니다.


예속화가 단 한 번의 절차로서 완수되지 않는다는 것은 주체화가 또한 어떤 지속적인 과정으로서 존재한다는 사실에 상응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개인이 한 번 저항적․이탈적 주체가 되었다는 사실이 그가 영원히 저항적․이탈적 주체로 존재할 것임을 보장하지는 않는 것처럼, 역으로 어떤 개인이 한 번 순응적․복종적 주체가 되었다는 사실이 그가 영원히 순응적․복종적 주체로 남을 것임을 보장하지도 않는 것이지요. 즉, 예속화와 주체화는 서로 길항(拮抗)의 힘을 주고받는 끊임없는 운동의 과정으로서 존재를 한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어떤 하나의 경향성이 우세해질 때 그것은 ‘양의 되먹임(positive feedback)'을 발생시키면서 상대적인 안정화에 도달할 수 있지만, 그것이 반대편의 운동을 완전히 분쇄하고 정지시킬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지금과는 다른 주체로 변태할 수 있는 계기를 자기 자신의 수준에서, 또한 자기 자신과 타인들 간의 만남의 과정에서 촉발해내기 위한 실천이 끊임없이 모색되고 개발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둘째, 사회구조적 측면에서는 저항권의 발동을 통해 사회적 배제의 메커니즘을 약화시키고 해체하는 것입니다. 아감벤의 생명권력 이론에서 주권자란 칼 슈미트(Carl Schmitt)의 정의를 따라 “예외상태에 관해 결정하는 자”로서 규정되는데요, 그러한 주권자는 법의 외부와 내부에 동시에 위치하는 역설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주권자는 법질서의 효력을 정지시키는 권력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법의 외부에 위치하지만, 동시에 그러한 권력을 법에 의해 정당화하면서 법의 내부에 자리를 잡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주권자의 위치는 법에서 배제되어 있지만 그러한 배제의 형식을 통해 법에 포획되어 있는 호모 사케르7)의 위치에 정확히 상응을 합니다.


예컨대 계엄과 같은 예외상태를 선포할 수 있는 주권 권력은 헌법의 효력과 국민의 기본권을 정지시킨다는 의미에서 법의 외부에 있지만, 그것은 많은 경우에 법률에 의해서만 선포될 수 있다고 규정되며 소위 ‘특별법’의 형태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이에 대응하는 인민들의 저항권 역시 기존의 헌법을 취소하고 새롭게 제정할 수 있는 제헌권력으로까지 소급된다는 의미에서 헌법의 외부에 있지만 이 또한 헌법에 의해 정당화되며, 그러한 의미에서 법의 외부와 내부를 가로지르는 어떤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대칭성은 예외상태하에서 벌거벗은 생명으로 격하된 (혹은 그러한 격하의 가능성에 항상적으로 노출된) 호모 사케르가 정치적 생명/삶으로서의 존재론적 의미를 회복하는 것은 저항권의 발동을 통해서만 가능함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생주의적 욕망을 강화하는 신자유주의적 배제사회에서 우리에게 요청되고 있는 것은 ‘무조건적인 삶의 권리’입니다. 그것은 기본소득(basic income)8)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도 있고, 공공시민노동 체제9)의 구축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도 있으며, 또 다른 어떤 방향에서 이루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구체적인 방식이 무엇이든 간에, 무조건적인 삶의 권리는 인민에게 주어진 최종심급에서의 권리인 저항권이 유의미하게 활성화될 때만이 현실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 이번 글을 마지막으로 ‘우생주의의 역사와 생명권력 시대의 장애’라는 타이틀 아래 이루어졌던 연재는 매듭을 짓게 됩니다. 한동안 모색과 연구의 시간을 갖고, 또 다른 주제를 통해 찾아뵐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각주 1)  염운옥, 『생명에도 계급이 있는가: 유전자 정치와 영국의 우생학』, 12쪽.


각주 2)  Troy Duster, Backdoor to Eugenics, New York: Routledge, 1990.


각주 3)  Philip Kitcher, The Lives to Come: The genetic revolution and human possibilities, New York: Simon and Schuster, 1996.


각주 4)  마누엘 카스텔, 『밀레니엄의 종언』, 이종삼․박행웅 옮김, 한울아카데미, 2003, 97쪽.


각주 5)  미셸 푸코, 『성의 역사 1: 앎의 의지』, 이규현 옮김, 나남출판, 2004, 115~116쪽; 사토 요시유키, 『권력과 저항: 푸코, 들뢰즈, 데리다, 알튀세르』, 김상운 옮김, 난장, 2012, 57~58쪽.


각주 6)  이와 관련해서는 요시유키, 「복종화/주체화는 한 번뿐인가?」, 『신자유주의와 권력: 자기-경영적 주체의 탄생과 소수자-되기』, 181~201쪽을 참조하라.


각주 7) ‘호모 사케르’라는 개념의 의미와 우생학과의 관련성에 대해서는 앞선 연재에서 설명한 바 있다. 연재 17편,「생명권력 개념을 통해 본 우생학②」를 참조하라.


각주 8) ‘기본소득’이란 국가가 모든 사회 구성원들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기본 생활비를 현금으로 지급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학술․담론 운동의 차원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지만, 스위스에서 2013년 10월에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국민발의안이 12만 명 이상의 서명을 받아 연방의회에 제출되었다는 뉴스가 보도되면서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스위스의 안은 정부가 성인인 국민 모두에게 한 달 2500스위스프랑(약 297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각주 9) 김도현, 「만인을 위한 노동사회의 유니버설 디자인: 공공시민노동체제에 대한 정치철학적 고찰과 중증장애인공공고용제」, 『중증장애인 인턴제 및 공공고용제 도입 토론회』, 2014, 중증장애인노동권공대위 외, 51~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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