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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정신, 생존하는 정신
'인간 J'들의 불평등 그리고 정신장애 운동에 관해
등록일 [ 2015년11월26일 22시27분 ]

 

1. 인간 J

 

“앉으면 일어서고 싶고, 일어서면 바로 앉고 싶어져요.” J가 말했다. 나는 이미 그의 사건을 종결한 터였다. 그는 한동안 내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증상을 설명했고 퇴원을 도와달라 호소했다. 내가 “당장은 제가 해드릴 일이 없어요”라고 말하면, 그는 “네, 저도 알아요. 그냥 전화해봤습니다”라고 힘없이 답했다. 전화 속 그의 목소리는 매번 온도 차가 있었다. 어느 날은 또렷하고 생기가 느껴졌다. 논리적이지 않고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의 나열이기는 하여도,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어로 말하는 타인과의 대화처럼, 그가 여전히 인격성과 욕망, 의지를 보유한 인간이라는 느낌은 가질 수 있었다. 반면 어느 날은 조금 더 논리적으로 말하더라도 목소리는 작고 높낮이 변화가 없어 흐릿한 안개 가운데 놓인 무미건조한 기계음처럼 느껴졌다.

 

나는 몇 가지 이유에서 J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다 사건을 종결해야 했고, 그러는 동안 그에 대해 얼마간 알게 되었다. 그는 가난한 집에서 자랐고, 연세가 많으신 어머니 한 분만이 지금 그를 돌볼 수 있는 유일한 가족이며, 자살시도를 한 적이 있고 심할 때는 어머니에게 칼을 휘둘렀다. 약물을 잘 복용할 때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차분했고 어떤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다. 그렇지만 퇴원하여 집에서 지낼 때면 복용하던 약을 곧 스스로 끊었다. 어머니가 며칠간 집을 비울 때였다.

 

J를 강제입원시킨 어머니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의 발병은 이미 십여 년 시작되었다고 했다. 민간 응급이송업체가 그의 온몸을 묶어 끌어가는 모습을 보는 일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해서 입원을 시켜두는 편이 마음이 편했다고 한다. “그래도 6개월이나 1년 입원했으면 최소한 얼마간은 집에서 잘 적응하는지 보셔야죠”라고 내가 말하자 그의 어머니는 답했다. “그렇긴 한데… 퇴원시켰다가 또 그렇게 끌려 들어가는 걸 보는 게 괴로워서…”

 

J는 여러 병원을 전전했다. 한 병원에서 1년이나 2년을 머물다 입원심사가 연장되지 않을 듯할 때 다른 병원으로 옮겨졌다. 인권위원회가 조사를 시작하자 퇴원하여 집으로 갈 수 있었지만, 곧 다시 입원되었다. 그의 삶은 늘 병원에서 이어졌고, 그중 대부분은 인격이 소거된 목소리로 살았다. 인간성을 묘사하기 가장 어려운 말로서만 그를 설명할 수 있다. 신체의 자유와 인격을 모두 소멸당한 인간.

 

▲복도 양쪽으로 문들이 빼곡한 이미지.

 

 2. 불평등

 

2년 전 일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정신병원을 처음 방문했다. 도심 한가운데 서 있는 허름한 5층 건물이었다. 그곳을 방문하기 전까지 내가 생각한 정신병원의 모습은 한적한 곳에 커다란 아름드리나무가 서 있고, 세상의 번잡한 소음들이 차단된 고요한 장소였다. 소설 『마의 산』에 등장하는 요양소처럼 바깥과는 다른 시간의 법칙이 적용되는 공간 말이다. 하지만 상황은 정반대였다. 규모가 큰 국립이나 시립 정신병원들을 제외하면 오히려 1차 병원급 정신건강의학과는 분식집이나 과일가게와 나란히 도심의 한복판에 치과나 정형외과처럼 아무렇지 않게 위치해 있다. 그렇다고 치료 중에 과일가게와 분식집으로도 연결될 수 있는 지역사회 중심의 의료서비스를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근처 주민들조차 알지 못하며 폐쇄병동에 입원한 환자들은 그 건물 밖으로는 단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다. 이들은 분식집이나 나무는커녕 햇빛을 볼 기회도 거의 없으며, 기껏해야 옥상 공간을 ‘산책 시간’에 밟으며 하늘의 모양을 확인한다.



몇몇 경우를 제외하면 병동의 광경은 대부분 처참하다. 매트리스 7개가 좁은 병실 하나에 놓여있고, 눈동자에서 그 어떤 인격성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이 종일 TV를 보거나 매트리스 위에 누워 팔을 이마에 진 채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 여름에는 화장실 냄새가 병동 전체를 휘감는다. 당연히 모든 병원이 그렇지는 않으며 특히 비교적 규모 있는 국공립 병원들은 낯 시간 햇볕 아래서 환자들이 배드민턴을 치기도 하고, 병동 내에서 악취가 풍기는 일은 없다. 이렇게 잘 관리되는 병원들은 지역사회와의 고립 속에 환자들을 장기입원시키는 이른바 ‘시설병’의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적어도 기본적인 생물학적, 인격적 위생과 품위의 처참한 위기를 초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분식집과 과일가게 한가운데서, 작은 매트리스 하나를 깔고 화장실 냄새로 가득한 곳에 장기간 수용되는 다수의 정신장애인은 빈곤층에 속해있다. 부유한 사람들은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완전히 버림받아 유배의 형벌을 당한 경우가 아닌 한, 이런 병원을 이용하는 일은 드물다. 이들은 정신질환이 발병하면 우리가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유명 대형병원들을 비롯해 3차 진료 기관의 정신건강의학과 병동에 입원한다. 이곳의 환자들은 대체로 조용하고 위생적인 환경에서 개별화된 치료와 상담을 받으며, 독서를 하고 질 높은 음식을 섭취한다. 이런 병원에서는 1개월 이상 장기입원되는 경우도 드물다. 이런 곳의 의료비는 1차 의료기관의 3배가 넘는다. 건강보험은 그중 일부만을 보장한다. 1차 의료기관에 환자를 입원시키고, 장기입원을 이유로 노동능력 상실을 입증하면 가난한 가족들은 대개 그 환자를 기초생활수급자로 만들 수 있다. 이렇게 의료급여 1종을 받으면 가족들은 의료비를 전혀 부담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3차 병원에 입원할 경우 월 수백만 원 이상을 자비로 부담해야 한다.      

 

우리나라 정신병원 수용자 가운데 약 30% 이상은 조현병(정신분열증)으로 진단받는다. 조현병은 통상 15세에서 30세 사이에 진행되며, 완전히 발병되고 5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만성 및 후유증 단계’에 접어든다. 이 단계에 이르면 적절한 항정신병약을 복용하더라도 절반가량이 효과를 볼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조현병 초기 치료적 개입이 중요하다. 이때에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지지로 충분히 본인을 설득해 진단과 치료로 나아가도록 할 여지가 있으며, 불가피하게 강제입원치료를 하게 되더라도 1개월 내외의 집중적인 치료로 상당한 호전을 보이고, 이후 적절한 관리로도 충분히 사회적 기능과 정신질환 발병 전 자신이 가졌던 정신적 고유성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J와 같이 가난한 조현병 환자들의 대부분은 처참하고 소변 냄새로 가득한 병원에 갇혀 생의 대부분을 보낼 수밖에 없다. J는 어머니가 혼자 그를 길렀다. 그 역시 20대를 전후하여 조현병에 따른 징후가 나타났겠지만 그와 같은 징후를 미리 포착하고 의료적 개입을 해줄 지지적인 가족이나 친척, 정보와 지식네트워크를 가지지 못했다. J는 그저 “좀 이상하고 사회에 부적응하는 청년”으로 취급되었을 것이고, 아침에 일을 나가 저녁에야 집에 들어와 J에게 밥을 차려주며 다 큰 자식이 집에서 빈둥댄다고만 여겼을 어머니는 J의 상태를 그의 게으름이나 비사교성에 돌렸을 터이다. 그 어머니조차 ‘질병’에 해당한다고 느낄 즈음 J는 이미 만성단계에 접어들었다. 뒤늦게 병원으로 보내려 하지만 J는 환청과 망상에 시달리면서 자신을 병원에 보내려는 어머니와 주변 사람들의 ‘음모’를 두려워하고, 치료에 저항한다. 결국 그의 어머니에게 남은 선택지는 강제입원이며, 빈곤한 그의 어머니는 J를 기초생활보장대상자로 만든 후 월 100만 원 내외의 금액만으로 모든 치료비를 충당하는 의원급 정신과에 보낼 수밖에 없다. 100만 원의 한도 내에서(정신과 치료에는 정액수가제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J는 그에게 맞는 다양한 약물치료나 심리, 인지 프로그램, 의사의 주의 깊은 개별적 서비스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이미 만성단계에 접어든 조현병을 제한적이고 열악한 치료환경 속에 더 장기화한다. 소변 냄새와 좁은 공간, 환자들 간의 권위적인 서열, 햇빛도 제대로 볼 수 없는 환경에서 병은 악화되고 회복의 가능성은 점점 줄어든다. 이 단계의 J는 이미 치료가 아닌 격리와 수용의 대상이 된다. 

 

우리 정신보건체계는 사회계층에 따라 철저히 양극화되어 있다.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이 이러한 양극화에서 자유롭지 않지만 정신질환에 결부된 복잡한 생물학적, 사회적 메커니즘은 경제 수준과 정보력, 지지환경에 따른 사회적 격차에 더욱 민감하다. 위암에 걸린 환자에게는 조기진단, 스트레스 없는 환경, 따듯한 간호, 수준 높은 외과 시술, 방사선 치료 등이 필요하겠지만, 이 경우는 빈곤층이라도 보편화된 내시경 검사를 통해 조기진단을 용이하게 받을 수 있고, 암 수술에 필요한 외과적 처치 능력이 상향 평준화되어 있으며 건강보험의 혜택을 높게 받기 때문에 불평등의 정도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그러나 조현병을 비롯한 정신과 치료는 조기 진단이 가능한 환경, 의료진의 적절한 진단 및 약물치료 능력, 입원하는 경우 병원의 환경, 건강보험/의료급여의 적용 범위 등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빈곤과 정신장애의 관계는 복잡하다. 빈곤이 정신장애를 유발할 수 있고 정신장애도 빈곤을 유발할 수 있다. 정신장애를 일으키는 사회제도(만성적 실업, 열악한 교육기회, 스트레스 높은 노동환경 등) 개혁이 근본적 해결책이지만 빈곤한 사람들에 대한 정신의료서비스 접근성을 향상시켜 빈곤한 사람들도 암이나 고혈압 치료를 받는 수준과 다르지 않은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일도 중요하다.

 

▲강제입원과 장기입원이 만연한 현실에서 도저히 살 수 없다며 1인시위를 벌이는 정신장애 당사자 활동가. 병원 감금방을 의미하는 쇠창살을 거리에 들고 나왔다. 쇠창살 안에서 팔을 뻗어 피켓을 들고 서 있다.

 

 3. 정체성과 치료의 딜레마
 
한편 우리가 정신장애인의 인권을 다룰 때, 의료서비스의 평등한 분배에 앞서 정신장애에 대한 과도한 병리화가 더 근본적이지는 않은지 문제 삼을 수 있다. 8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정신병원과 정신요양시설에 수용되어 있고 그중에 73.5%가 강제입원인 우리나라 현실에서, 정신의 고유성, 종잡을 수 없는 다양성을 긍정하고, 근대 이성주의가 만들어낸 ‘건강한 정신(sound mind)’이라는 신화에 도전하는 일은 시급한 과제가 아닌가? 비록 치료적 개입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도 정신장애인이 맞닥뜨린 현실의 상당 부분은 철학자 미셸 푸코 이후 수없이 언급됐던 저 새로운 인간학의 오랜 역사적 산물이며, 권력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이해관계가 만들어낸 각종 신화들로 점철되어 있지 않은가?

 

장애인운동이 페미니즘에 대해 그러했듯이, 정신장애운동은 기존 장애인운동을 참조할 수밖에 없다. 장애인 운동은 ‘건강한/정상적인 인간’의 범주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장애를 치료나 재활을 통해 극복하고자 하는 오랜 병리적 관점을 비판하였다. 장애란 이미 의료적 요소만으로 설명될 수 없으며,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생물학적 손상에 부여된 사회적 장벽으로 이해되었다. 이를 통해 장애인들은 자신의 ‘손상된’ 신체를 자기 존재의 중대한 일부로서, 나아가 인격적 요소의 일부인 정체성으로 긍정하고자 노력한다.

 

정신장애운동도 정신질환과 ‘건강한 정신’이라는 범주에 도전한다. 우리 정신이 가진 역동성과 창조성을 강조하고, 비정상이라 낙인찍힌 사람들에 대한 무자비한 강제입원에 제동을 걸며 정신장애의 깊은 곳에 놓여있는 빛나는 인간적 요소를 의료적 관리는 물론이고 과감한 사회개혁을 통해 구원하고자 하는 투쟁을 전개한다. 이러한 움직임이 이른바 ‘매드 프라이드(MAD PRIDE)’ 운동이며 한국에서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자기서사와 정치적 조직화를 통해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의 중요한 일부이다.

 

나는 확실히 우리가 정신장애를 병리학적으로만 규율하고 시설에 수용해왔던 오랜 역사를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장애인운동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제가 간단하지는 않다. 장애를 정체성으로 수용하고자 하는 종래의 장애운동은 사실 사회적 낙인과 실질적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체적 손상(절단된 다리, 볼 수 없는 눈, 뒤틀린 척추)을 자부심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정신적 용기’에 대한 찬양을 전제한다. 최근 들어 장애운동이 점점 영웅주의에서 멀어지고는 있지만, 애초에 장애정체성과 사회변혁을 주장한 장애인들은 역경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 영웅적 장애인들이었으며 이들이 백악관 계단을 기어오르며 보여준 성과가 미국장애인법(ADA)이었다. 한국의 장애인들 역시 한강대교를 기어서 건너며 활동보조서비스를 쟁취했다. 이때 장애인들의 모습은 처절한 사회적 약자들의 투쟁이라는 사실 한편으로, 손상된 신체를 권리의 주체로 만들어내는 정신적 도전의 위대한 성취로 기억된다.

 

하지만 정신장애를 통해 유발되는 중증 우울증, 조현병은 우리가 자신의 장애를 당당히 수용하고 사회변혁의 주체로 나아가는 존재가 되고자 하는 그 정신에너지 자체를 무력화한다. 그래서 정신장애인운동의 당사자들은 잔혹한 격리와 수용으로 대표되는 정신의료서비스의 생존자이기도 하지만, 자기 정신 내부에서 자신을 괴롭혔던 망상이나 환청으로부터의 생존자이기도 하다. 신체장애운동은 척수손상을 입고 재활에 성공하여 혼자 휠체어에 탈 수 있게 된 사람을 생존자라고 부르지 않는 반면, 장애인시설의 만성화된 폭력과 격리로부터 살아나온 장애인은 생존자로 부른다. 즉 (신체) 장애인운동은 투쟁과 개혁의 주체로서 자신의 정신과 자기인식을 적으로 돌릴 필요 없이 오로지 사회적 차별과 구조적 억압으로부터의 생존에 주목한다. 그러나 정신장애운동은 이보다 복잡하게 사회적 차별과 의료권력, 정치권력으로부터 생존과 더불어 자신의 인격에 침투한 복잡한 질병과 사회적 관계 모두로부터 투쟁이 필요하다.

 

따라서 정신질환을 자칫 낭만화하거나 장애운동의 경우에도 그대로 대입하는 일은 위험할 수 있다. 우리는 우선 만연한 편견과 엄청난 강제입원시스템을 개선하여야 하며, 동시에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어떤 사회계층에 속하느냐에 따라 철저히 다른 삶을 살아가는 시스템을 변화시켜야 한다. 이때는 장애운동이 구축해온 정체성이나 장애자부심이라는 관념에 지나치게 집착할 필요는 없다. 정신장애운동은 현실의 문제로부터 새로운 이론과 입장을 구성해나가야 한다. 내가 만난 당당한 ‘생존자’들은 망상과 환청, 무기력 속에서도 우리의 인격이 어떻게 빛날 수 있으며, ‘건전한 정신’이란 진정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사람들이다. 이들과 함께 J와 같이 가난 속에서 적정한 치료도, 사회적 인정도, 신체적 자유도, 위생적인 환경도, 지지적인 사람들도 없이 버려진 수많은 사람들을 정신질환과 사회시스템으로부터 구출해야 한다.  



글쓴이 : 김원영. 비마이너 칼럼니스트.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관.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을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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