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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이 낳는다는 것, 장애인을 낳는다는 것 - 장애인이 산다는 것
[장애x젠더, 재생산을 말하다] ②
등록일 [ 2015년12월17일 22시49분 ]

(편집인 주) 한국사회에서 임신과 출산은 인구정책의 기조에 따라서 국가로부터 관리되고 간섭받는 영역이었다. 임신을 중단할 것인가 지속할 것인가의 문제에서도 철저하게 국가가 허용하는 사유와 처벌하는 사유가 나누어져 있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성관계와 양육 등의 문제에 대해서 장애를 가진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낸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해 고민하며 <장애/여성 재생산권 새로운 패러다임 만들기> 기획단이 활동해왔다. 앞으로 8차에 걸친 연재를 통해서 장애/여성의 재생산권리에 대해 다각도로 살펴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 연재는 인권오름과 공동게재된다.


[ 연재 순서 ]


1. 장애/여성 재생산권 새로운 패러다임 만들기 활동 과정과 의미 : 박서연(장애여성공감 연구정책팀 활동가)


2. 장애인이 낳는다는 것, 장애인을 낳는다는 것 ― 장애인이 산다는 것 : 안팎(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활동가)


3. 출산을 결정하는 여성, 여성을 결정하는 사회, 사회를 마주하는 장애 : 김재왕(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4. 여'성' 건강이 담아야 하는 목소리 : 유림(건강과 대안 젠더건강팀 연구원


5. 불평등과 성적권리로 관점을 전환하는 여성주의적 재생산 정의운동 : 나영(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GP네트워크 팀장)


6. 재생산권을 둘러싼 인권규범의 지형 : 류민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7. 국가주도의 인구정치에 도전하기 위해서 필요한 재생산권리 관점 : 백영경(한국방송통신대학교 문화교양학과 교수)


8. 재생산권리, 여성주의와 장애정치의 만남을 통해서 길찾기 : 나영정(장애여성공감 정책연구원) 

 

평균 출산 연령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산전검사를 강조하는 기사들이 늘어간다. 얼마 전엔 <양수검사 100만원…"아이 포기하지 않게 해야">라는 제목의 기사를 발견했다.1) 100만 원과 아이의 포기, 둘이 무슨 관계일까 싶어 기사를 읽어 보았는데, 본문에서 ‘100만원짜리 양수검사’가 언급된 문단의 앞뒤를 함께 옮겨 보자면 이렇다.


"의료계에 따르면 35세 이상 고령 임신부는 다운증후군 아이를 낳을 위험이 20대 여성보다 7배 정도 높다. / 이 씨는 "양수검사를 권유받았지만 100만원에 달하는 비용 때문에 고민했다"며 "결론적으로 받지 않았지만 돈 때문에 아이 건강을 외면한 것은 아닌지 마음이 무거웠다"고 고백했다. / 이어 "노산을 경험한 여성들 사이에서는 아이 건강을 생각해 부모가 주치의가 돼야 한다는 얘기가 있다"며 "저출산 시대에 한 명의 아이라도 건강하게 자라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면 연령에 맞는 정책 지원도 필요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의료비, 나아가 양육비 부담에 출산을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저런 흐름은 자연스럽게도 “아이 건강을 외면한 것”과 “아이 포기”를 아주 가까이 놓았다. 꼭 그런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한 명의 아이라도 건강하게 자라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 걸린다. 건강하지 않은 아이란 어떤 아이일까. 건강하지 않은 아이는 중요한 것일까 아닐까. 저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적어도 “다운증후군 아이”는 “건강”보다는 “위험”에 가까이 놓인다는 사실이다.

 

(기사에 등장한 이 씨의 장애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걱정은 비단 비장애인 부모들만의 것은 아니다. 장애/여성 재생산권 새로운 패러다임 만들기 기획단의 3차 포럼으로 열린 목포 지역 간담회에 참석한 한 장애여성은 장애인 차별이 사라진다 해도 장애인으로 사는 것은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다며 장애아를 임신하면 중절을 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이는 ‘그래도’ 낳을 것이라고 했지만, 종교적 신념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또 어떤 이는 임신 기간 내내 불안해하다가 출산 직후 마취가 풀리자마자 아이의 손발가락 개수를 확인했다고, 모두 열 개씩이라는 말을 듣고 그제야 안심했다고 했다.


부정적인 이야기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같은 곳에서 한 장애여성은 유전질환을 가진 자신의 딸을 여러 장애인 시설에 데리고 다닌다고 했다. 그 덕분에 딸은 크게 비관적이지는 않게 되었다고 했다. 저신장 장애를 가진 다른 이는 자기 아들에게 늘 엄마는 공주라고 '세뇌'를 시킨다고 했다. 아들은 엄마의 장애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이것이 긍정적인 이야기인 것만은 아니다. 학교를 다니고, 직장을 가지고,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고, 이런 ‘평범한’ 삶의 과업들을 다 수행한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장애는 아무것도 아니지도, 긍정적인 무언가도 아니었다. 수없이 설명하고 보여주고 이해시켜야 했을 것이다. 그는 그것을 '세뇌'라고 표현했다. (그 끝에서도 장애는 자랑스러운 무언가이기보다는 부끄럽지 않은 무언가였다.) 비교를 통해서가 아니라면, 세뇌를 통해서가 아니라면, 장애는 긍정될 수 없는 것일까?

 

▲4차례 진행된 장애/여성 재생산권 연속포럼

 

# 장애는 긍정될 수 없는가


꼭 저런 자리를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가끔 던져 보는 질문이지만, 그럴듯한 답은 나오지 않는다. 장애는 흔히 병으로, 결함으로, 재난으로, 고통으로 ― 그것도 벗어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산전검사 기술이 발달할수록, 혹은 줄기세포다 뭐다 장애를 ‘치료’할 수 있는 기술이 발달할수록, 문제는 악화될 것이다. 장애인으로 태어나지 못하거나, 장애인으로 남지 못하거나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이유로, 혹은 기술적인 이유로 ‘여전히’ 장애인으로 살아야 하는 이들의 삶은 더욱 더 절망적인 재난과 고통으로 여겨지게 될 것이란 전망이 억지스럽지는 않다.


그렇다면 정말로 비교와 세뇌 이외의 길은 없을까?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나는 집회에서 마주치는 장애인들에게서 장애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느낀다. 그들에게 또한 장애는 어떤 불편이지만, 동시에 운동가로서의 토양이기도 하다. 장애는 단순한 결함이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세상을 다르게 판단하게 하는 토양, 자신이 무엇을 원하며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판단하게 하는 토양, 주어진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삶을 개척하게 하는 토양이 된다. 그런 점에서 분명, 장애는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억지스럽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수많은 장애 극복의 서사들을 생각해 보자. 강력한 의지로 장애를 ‘극복’한 이들에게서 장애는 단순한 시련이 아닌 삶의 다음 단계를 위한 디딤돌로서 이야기된다. 마찬가지로, 내가 집회에서 만난 이들에게서 장애는 자신을 가로막는 무언가가 아니라 자신을 구성하는 출발점이요 주요 요소가 된다. 다른 것이 있다면 그들의 삶은 ‘장애가 있음에도’가 아니라 ‘장애가 있기에’라는 말로 설명된다는 점이다. 그들에게서 극복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장애가 아니라 장애를 장애로 만드는 지금의 사회이다. 사회를 극복하게 만드는 원동력으로서의 장애라면, 사회를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드는, 그 과정에서 고유한 자신을 만드는 원동력으로서의 장애라면, 어쩌면 긍정될 수 있지 않을까.


연구자 주윤정은 논문 「시각장애인의 구술전통과 역사전하기」에서 시각장애인의 자긍심에 관한 이야기를 보고한다.2) 점복업, 안마업 등을 중심으로 한 집단을 형성한 시각장애인들은 특유의 구술 전통을 토대로 집합적 정체성을 형성해 왔다. 주윤정에 따르면 이 구술 전통은 시각장애인의 직업이 국가정책으로써 보장된 고려 시대부터의 역사를 담고 있으며, 시각장애인들의 투쟁과 정체성은 이러한 나름의 전통과 역사에 기대고 있다.


물론 이러한 상황은 어느 정도, 시각장애인들이 문자 중심인 ― 또한 식민지배와 근대화를 겪으며 전통과 단절된 ― 주류문화에 접근하지 ‘못한’ 데에 기인하지만 적지 않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그것은 바로 독립적으로 형성된 역사와 문화의 존재이다. 모든 장애인이 운동가가 되고 그것을 통해 긍정적 정체성을 가질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러한 정체성이 통용되는 장애문화를 형성하고 그 문화 속에서 살아갈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 문화적 뒷받침 속에서, 주류문화에서와는 다른, 장애인의 정체성, 장애를 가진 삶의 가치가 이야기될 수 있지는 않을까. 그 장애문화가 더 이상 단순한 하위문화가 아니게 되는 어떤 지점, 전 사회적으로 장애의 다른 의미가 이야기되는 어떤 시점이 있을 수 있지는 않을까.

 

# 장애/여성의 재생산을 이야기하기 위해


이런 이야기를 한다 해도,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들 속에서 장애가 긍정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심스럽다. 그러나 그렇기에 더더욱 이런 이야기가 필요할 것이다. 어디선가는 장애인이 태어날 것이고 어디선가는 누군가가 장애인이 될 것이며, 바로 여기서, 장애인이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의학적인 근거가 있건 없건 장애아를 낳으면 어쩌냐는 우려 앞에서, 또한 장애인이 아이를 낳고 길러도 좋으냐는 물음 앞에서 (그럴 수 있냐 이전에, 그래도 되냐는 물음이 존재한다), 그러니까 과연 장애가 ‘재생산’할만한 것이냐는 물음 앞에서, 장애가 어떤 방식으로 긍정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결코 사소하지 않은 문제이다.


장애인의 문화가 형성될 수 있다면 장애도 긍정될 수 있을 것이고 (선천적이건 후천적이건) 장애인의 탄생도 축복받을 수 있을 것이다 ― 이런 낙관론을 펼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을 하나의 단초로 삼아, 장애인이 낳는다는 것, 장애인을 낳는다는 것, 장애인이 산다는 것의 의미를 함께 고민하지 않고서는 장애/여성의 재생산에 관한 담론은 여전히 어떤 한계 속에 있을 것임을 말하고 싶었다. 장애란 무엇인가, 장애인의 삶이란 무엇인가, 묻고 싶었다.

 

 

    *       *       *

 

각주 1) 관련기사_ 음상준·이영성, 「[노산(老産) 시대] 양수검사 100만원…"아이 포기하지 않게 해야"」, 『뉴스1』, 2015. 11. 15.


각주 2) 한국구술사학회, 『구술사연구』 제 5권 2호, 2014, pp.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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