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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양의무의 역설, 국가는 어떻게 가정을 해체하는가?
24시간 활동보조 필요한 장애인 김율만 씨, 생사의 기로에 서다
등록일 [ 2016년01월02일 16시21분 ]

김율만 씨는 뇌병변 장애인이다. 그가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혀, 목, 왼쪽 검지 손가락 하나. 혼자서는 일상생활이 완전히 불가능한 율만 씨에게 활동보조 서비스는 숨과 같이 간절한 것이다. 국가에서도 김율만 씨의 장애 정도가 매우 심각한 점을 인정하여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이 받을 수 있는 가장 많은 시간의 활동보조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그래서 김율만 씨가 받아온 활동보조 서비스 시간은 한 달에 총 496시간. 이렇게 받은 시간으로 김율만 씨는 평일에는 아침 아홉시부터 밤 아홉시 반까지, 주말에는 아침 아홉시부터 저녁 여섯시까지 활동보조 서비스를 받았다. 그리고 잠을 자는 밤 시간에는 율만 씨의 동생이 그의 곁을 지켰다.


하지만 지난 11월, 율만 씨의 활동보조 서비스 시간은 갑자기 223시간으로 줄어들어버렸다. 당황한 율만 씨가 구청으로부터 들은 답은 ‘동생이 만 18세가 넘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율만 씨가 추가적으로 받아온 273시간은 ‘취약가구 특례’에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이 특례에는 조건이 있다. 함께 사는 가족의 나이가 18세 미만이거나, 65세 이상일 것. 국가는 어제까지만 해도 아직 어리기에 할 수 있는 게 없다던 미성년자 동생에게, 생일이 지남과 동시에 갑자기 오빠를 한 달에 273시간 돌볼 의무를 떠넘긴다.

혼자서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중증장애인 김율만 씨. 그는 혀, 목, 왼쪽 검지 손가락 외에는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여서 사실상 24시간 활동보조가 필요하지만, 국가는 그나마 있는 서비스 마저 절반이나 삭감해버렸다.

율만씨가 이전처럼 273시간 활동보조를 더 받는 방법이 있다. 동생과 세대분리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율만씨는 ‘독거 특례’ 시간을 받을 수 있다. 이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받을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 딜레마가 있다. 그렇게 되면 율만 씨의 동생은 ‘근로 능력이 있는 성인’으로 분류되어 대학교 학비를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조달해야 한다. ‘딸린 식구’, 더구나 ‘장애인 가족’이 없으니까 국가는 그녀에게 마음껏 일을 할 자유가 주어졌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에 대학을 다니거나 자녀를 대학에 보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경력도 없고 학력도 고졸에 그치는, 이제 갓 성인이 된 사람은 잘 해봐야 최저시급을 조금 넘기는 6000원-7000원 수준의 시급을 받을 것이고, 이렇게는 아무리 해도 한 학기에 4-500만 원이 훌쩍 넘는 대학 학비를 마련할 수 없다는 것을. 학비를 모으기 위해서는 입학을 미루거나, 빚을 져야 한다. 한 달 알바비로는 한 달 생활도 빠듯한데, ‘근로 능력’은 있고 ‘부양할 가족’은 없기에 수급자가 될 수 없는 율만 씨 동생은 학자금 대출을 받아도 이자를 꼬박꼬박 내야 할 것이다.


동생이 학비를 지원받으려면 오빠와 함께 살며 혼자 힘으로 움직일 수 없는 오빠를 270시간 이상 돌봐야 한다. 재학 증명서를 제출하면 구 차원에서 한 달에 77시간을 더 준단다. 하지만 하루에 두 시간 남짓 되는 추가 활동지원 시간으로는 마음 놓고 학교생활에 집중할 수 없다. 대학은 중, 고등학교와 달라서 강의가 다섯 시에 끝난다고 모든 일과가 다섯 시에 종료되는 것이 아니다. 과제도 많고, 스터디도 해야 한다. 매일 새로운 세상과 만날 스무 살에, 너에게는 장애인 오빠가 있으니, 그리고 이제 너는 성인이니 집에서 오빠를 ‘돌봐야’ 한다는 요구를 당연하게 받아들일 사람이 얼마나 될까.


율만 씨와 그의 동생은, 서로에게 자유를 저당 잡힌 형태로 가족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서로에 대한 책임이 강요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내적 연대를 유지할 수 있을까. 율만 씨는 연신 ‘동생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말했다. 하필 내 동생으로 태어나서, 주말에도 밤에도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하지만 율만 씨도 장애인으로 태어나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다.


율만 씨와 같은 이유로, 그러니까 가족이 ‘아직’ 해체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취약가구 특례에서 제외된 사람이 또 있었다. 그는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활동지원인도, 어머니도 없는 시간에 빠져버린 호흡기를 제 손으로 끼우지 못해 생을 달리했다. 그는 지난해 4월 세상을 떠난 오지석이다. 율만 씨가 동생의 학비 지원을 위해 포기하는 것은 어쩌면 생명일지도 모른다. 

김율만 씨가 혀를 이용해 컴퓨터를 이용하고 있다.
 

율만 씨 가족은 위태롭게나마 유지되고 있지만, 국가로부터 복지 지원을 받기 위해 혼자가 되어야 하는 사람은 더 많다. 기초생활수급자가 1인일 경우에는 한 달에 49만9288원을 받지만, 결혼을 하여 두 명이 한 가정을 이루게 되면 85만140원을 받게 된다. 한 사람 당  42만5070원을 받는 셈이다. 가족이 늘어날수록 한 명 당 받는 수급비는 더 줄어든다. 3인 가구는 1인당 36만6594원(총 109만9784원), 4인 가구는 1인당 33만7357원(총 134만9428원). 두 세 사람이 한 집에 산다고 생활에 필요한 돈이 갑자기 줄어들 리 없는데, 국가의 셈법은 그렇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초생활 수급자는 보통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본인의 의지로 선택하는 가족을, 국가로부터는 인정받을 수 없다.


국가에 의한 가족의 해체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신규로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하려면 가진 재산이 없다는 것 외에도 ‘나를 먹여 살릴 가족이 단 한 명도 없는, 철저히 혼자임’을 증명해야 한다. 수급자를 신청하려는 사람들은 가족들과 전화 통화도 할 수 없다. 통화 내역을 남기면 ‘부양의무자’, 그러니까 왕래하는 가족이 있다고 판단되어 수급자 자격에서 탈락하기 때문이다. 멀리 떨어져 살며 실질적으로 경제적 도움을 받지 못하는, 이제는 가족이라고 부르기 어색한 사람들에게는 직접 찾아가 우리가 더 이상 연락하고 지내지 않는다는 증명서에 서명을 받아야 한다.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으려면 힘도 없어야 하고, 가족도 없어야 한다. 더 많은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더 고독해져야 한다. 자신의 불행을 적극적으로 어필해야 국가는 비로소 그를 돌아본다. 살기 위해 섬이 되어야 하는 사람들은 자기 손으로 가족을 떠나보내야 하고, 자기 목소리로 이를 국가에 설득해야 한다. 반복적이고 집요하게.


이쯤 되면 대체 복지제도라는 것이 왜 존재하는가에 관한 근본적인 의문을 품게 된다. 복지제도는 국가라는 공동체가 직조한 사회에서 미처 고려하지 못한 구멍을 메우는 보호 그물이 아닌가? 하지만 한국의 복지제도는 가능한 한 존재하는 가족을 갈라놓고, 가족의 형성을 가로막는 칼날의 역할을 하고 있다. 너의 가족은 네가 먹여 살려야 한다는 국가의 태도는 국가의 책무를 가족의 도의적 책임감과 애정에 전가하고 이 호의가 고갈될 때까지 착취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근본 토대가 되는 헌법. 그 헌법에서도 가장 먼저 등장하는, 그러니까 가장 중요한 1조에는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며 주권과 권력이 국민에게 있음을 선언한다. 대한민국은 국민을 위해 존재하며 국민에 의해 존재한다는 이 기본 원리가 알맹이 없이 죽은 문장으로 느껴진다. 국민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불행한 순서에 따라, 국가의 ‘의무’가 아니라 ‘호의’를 베풀어 주겠다는 태도 때문이다. 2016년에도, 이 국가의 ‘호의’로부터 배제된 장애인들은 생사의 기로를 아슬아슬하게 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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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별 기자 hbchoi1216@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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