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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제와 기독교의 경합, 시혜주의 복지의 뿌리를 형성하다
국정교과서에는 없는 빈곤과 차별의 현대사 ① 주윤정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선임 연구원
<시혜와 동정의 사회복지 역사의 시작-식민지 사회사업>
등록일 [ 2016년01월04일 18시32분 ]
[편집자 주] 현 정부는 학생들이 단 하나의 교과서만으로 역사를 배워야 한다며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근대화·산업화의 과정에서 차별과 배제를 겪어온 소수자의 이야기는 '하나의 교과서'에 온전히 담길 수 없을 것이다. 이에 비마이너는 국정교과서에는 담기지 않을, 한국 현대사 속 숨겨진 빈곤과 차별의 이야기를 찾아 나서는 특별 기획강좌를 준비했다. 앞으로 3회에 걸쳐 강좌 전문을 기사로 전한다. 단, 1강은 강사와의 협의로 요약본만을 싣는다.

1강 - 시혜와 동정의 사회복지 역사의 시작-식민지 사회사업 (주윤정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
2강 - 서울 구석구석, 숨어있는 빈곤의 역사 찾기 (최인기 빈민해방실천연대 집행위원장)
3강 - 삼청교육대, 청송감호소, 그리고 형제복지원-감금의 역사 (유해정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장애인들은 외친다. “복지를 시혜가 아닌 권리로 보장”해줄 것을. 그런데 이 시혜주의적 복지는 대체 어디에서 기원한 걸까.
 
비마이너가 주최한 기획강좌 ‘국정교과서에는 없는 빈곤과 차별의 현대사 이야기’ 첫 번째는 바로 이러한 시혜주의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다. 주윤정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선임 연구원은 복지가 사람들에게 권리가 아닌 자선과 시혜, 동정의 산물이라는 인식이 된 역사적 기원을 찾기 위해 일제 식민지 시기의 사회사업을 살펴본다.
 
주 연구원에 따르면 복지의 영역은 당시 기독교의 사회사업과 천황의 자혜가 경합을 벌였던 장이었다. 그중에서도 ‘맹인, 나환자, 앉은뱅이, 정신질환자’ 등이 복지사업의 주요 대상이었다.
 
그러나 사실 조선시대 맹인은 점을 치는 판수로 ‘일정한 사회적 지위’를 보장받던 존재였다. 실제 19세기 말, 개화기 조선을 여행한 이자벨라 비솝이라는 영국 지리학자는 판수를 소개하며 “맹인을 아들로 둔 부모는 운이 좋은 편(fortunate)”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주 연구원은 “지금 21세기에 시각장애아동을 둔 부모에게 ‘당신은 정말 운이 좋아요(fortunate)’라고는 말하기 힘들 것”이라면서 “그러나 당시 이자벨라 비솝의 말은 ‘맹인들이 점쳐서 돈 잘 벌어 부모 봉양한다’는 의미로 그만큼 당시 판수조직은 엄청났다는 걸 나타낸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들은 기독교 선교 대상으로 지목되면서 ‘암흑 속에 있는 불쌍한 사람’으로 주저앉았다. 그리고 기독교 선교는 이들에게 ‘빛을 갖다 준다’며 맹학교를 만들고 점자를 가르치고 성경을 읽게 했다. 선교사들은 이러한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맹인이 근대적 사람으로 변모하고 있다’며 외국에 소개했고 이를 통해 꾸준히 선교 자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 맹인은 선전 효과를 위해 고통을 극대화하여 더더욱 불쌍하고 비참한 인간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기독교가 자선을 베푸는 동안 조선총독부도 무언가를 베풀어야 했다. 조선 총독부는 1915년에 맹인에게 점자를 가르친다고 홍보하는 박람회를 경복궁에서 대대적으로 열었다. 주 연구원은 “당시 맹인들이 앉아서 글자 읽는 모습은 문명개화의 상징이었다”면서 “맹인들이 안마하는 모습 또한 조선에 대한 선진적 통치, 천황의 자혜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인용되면서 선전도구로 활용됐다”라고 전했다. 안마는 일제 때 근대적 직업으로 도입된 것으로 몸을 많이 쓰는 일본 무사 문화에서 유래했다.
 
제생원(서울맹학교 전신) 맹아부 학생들의 침과 안마 실습 모습(1921) ⓒ서울맹학교
주 연구원은 “조선총독부는 초기에 문명개화를 이룩하고 있다는 것을 서구 선진국에 인정받아야 했기에 지속적으로 박람회를 열었다”면서 “일본은 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이들에게 특수교육을 통해 문명개화를 하고 있다고 외부에 홍보했는데 여기엔 ‘천황의 자혜’가 있다. 이는 즉, 이 모든 게 천황의 은사금을 통해 세워졌으며 천황의 은혜를 받았다는 걸 의미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주 연구원은 “맹인, 나환자 등 이들이 정말 심각한 사회문제였기에 구제하려 했던 걸까, 아니면 자기네 교리를 증명하기 위해 교리에 입각한 타자를 선택한 걸까 물음이 든다”면서 “시혜적 모델은 복잡한 사회구조와 얽혀있다”고 밝혔다.
 
시혜주의, 복지를 ‘개인의 인격’으로 만들어버렸다
 
한국 복지의 시혜주의 기원으로 지목되는 일본 천황의 자혜는 메이지 시대로부터 시작한다. 일본은 메이지 시대로 접어들면서 에도시대의 쇼군 대신 천황을 상징적 군주로 내세웠다. 그리고 천황에게 귀속된 막부 시대의 거대한 재산으로 이들은 자혜 사업을 진행했다. 단, 천황은 여기서 직접 앞에 드러나지 않으며 천황의 황비, 여동생 등 천황가의 여자들이 전면에 나선다. 천황은 뒤에서 ‘은사금만 베풀고’, 천황가의 여자들이 불쌍한 이들에게 직접 돈을 전달하고 건물을 세우는 방식으로 자혜를 드러내는 거다. 이러한 천황의 자혜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이가 박정희 대통령과 그의 아내 육영수 여사다.
 
주윤정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선임 연구원 “메이지 정부는 구호, 구빈, 복지의 영역에서 여성의 자선을 장려했고, 가부장제 국가 운영에서 국가가 담당해야 할 복지를 여성의 자선의 영역으로 만들면서 복지를 여성화시킨 측면이 있습니다. 국가가 사회문제 해결을 공적인 방식으로 접근한 게 아니라 모든 걸 인격화시켜 버린 거죠. 맹인이 맹학교 다니며 교육받은 게 근대국가에서 보편적 교육을 확장한 게 아니라 천황이 자혜를 베풀었기 때문인 거예요. 그래서 감사함을 생각하게 되죠. 복지를 국가의 제도와 같은 보편적인 게 아니라 개인의 업적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 복지의 영역을 인격화한 것, 이런 게 시혜주의의 핵심입니다.”
 
일제 때 만들어진 한센인 강제수용소는 박정희 대통령 때도 지속됐는데, 육 여사는 바로 그 한센인 정착촌에 가서 그들 손을 잡으며 그들을 위로했다. 그 안에선 단종, 낙태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잔악한 인권침해가 이뤄졌다.
 
주 연구원은 “한센인 정착촌에 살던 분들은 ‘육여사가 우리한테 얼마나 잘해줬는데’라고 말씀하신다”면서 “당시 인간 취급도 못 받던 한센병력자들 손을 꼭 잡고 접촉했다는 건 그들을 인간 취급해준다는 의미였으며 그것은 한센인들에게 엄청난 신뢰의 행위였다”라고 말했다. 그 결과 박 대통령은 ‘부인과 딸을 통해 보여준 자비심’으로 무자비한 독재자이기보다 친근한 인격적 존재로 어르신 세대에 기억되고 있다.
 
주 연구원은 “육여사가 정말 선한 마음에서 우러나와 한 행위일 수도 있으나 이를 분명 정치적으로 이용해왔고 정치 레토릭으로 발전시켜온 게 있다”면서 “선한 심정과 정치 언어화되는 것은 분리해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뿌리 깊은 구조의 문제…시혜가 아닌 권리로의 변화, 가능할까?
 
그런데 식민지 경험이 어떻게 오늘날까지 하나의 유산으로 남게 된 걸까. 식민지 시대는 분명 복지를 보편적 제도가 아닌 특정 집단에 편중시킴으로써 복지를 왜곡된 형태로 만들어 놓았다. 이후 탈식민지화를 통해 극복할 수는 없었을까. 그러나 그러한 시도는 없었다. 그 배경엔 국가가 이를 정치술로써 활용한 측면도 있으나 한편으로 복지재벌 또한 당대의 자원을 활용하여 성장한 측면이 있다.
 
한국전쟁 후 등장한 사회복지재단, 사회복지법인 등은 외국 원조 물자의 지원과 국가가 수용한 적산(일본인들이 두고 간 땅)을 싼값에 매입하는 방법으로 성장을 거듭했다. 그 과정에서 미국의 주요 선교 대상이었던 중국이 1950년대 공산화되면서 미국은 중국에 투입했던 선교자금을 한국으로 돌렸다.
 
주 연구원은 “그중에서도 영어 통하고 기독교인 사람들이 주요 지원대상이 됐을 것”이라면서 당시 이것이 일종의 ‘신분 자격’이 되었다고 밝혔다. 이후 기독교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에게 지원이 집중되면서 그들을 중심으로 사회사업은 활성화됐다. 70년대 이후 사회복지사업법이 제정되면서 국가와 지자체가 사회복지를 증진할 책임을 지고 국가가 보조금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점차 변화했지만, 이미 사유화의 뿌리에서 자란 재단과 법인은 공적자금을 지원받으면서도 이것이 공적 영역에 해당하는 것이라는 의식을 하진 않았다. 즉, 공적 자금은 받지만 공적 책임은 지지 않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까지 재단과 법인의 중요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국가 또한 적극적으로 제재를 가하기보다 이에 편승했다.
비마이너가 주최한 기획강좌 ‘국정교과서에는 없는 빈곤과 차별의 현대사 이야기’ 첫 번째로 주윤정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선임 연구원이 시혜와 동정의 사회복지 역사의 기원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종교단체 중심의 시혜주의적 구조는 사회발전과정에서 정부가 많은 돈을 들이지 않으면서 책임은 별로 지지 않는 방식으로 문제를 비가시화 시켜 버릴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사회적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식이기에 외원물자 도입과 종교시설의 시혜주의 구조로 재편되어 갔죠. 그리고 이 과정에서 돈을 모으려면 장애인을 계속 불쌍한 사람으로 만들어야 했어요. 끊임없이 불쌍한 사람으로 만들어야 저 사람을 도와주게 되니깐. 선교사업의 일환과 정치 언어에서도 마찬가지예요.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는 우리는 훌륭한 정권이다, 기독교의 성경과 그에 필적하는 천황제적 자혜의 경합이 이런 수사를 만드는 게 있었던 거죠. 과거 김종필 국무총리 부인, 이순자(전두환 부인), 김옥숙(노태우 부인) 씨가 맹인 수용시설 대린원에 지속해서 방문한 사진이 계속 나왔는데요, 어떤 측면에서 이건 복지라는 제도적 영역을 사적인, 사사화(私事化) 시키는 게 있었던 거죠.”
 
따라서 주 연구원은 “시혜주의는 권력의 은혜와 주관적 은혜를 보여주는 장치이자 취약한 권력이 자신의 정당성을 획득하는 정치 수사로 적극 활용됐다”면서 “시혜주의는 마음가짐이 아닌 사회구조 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 이러한 구조를 깨는 게 어떻게 가능한지, 복지를 시혜가 아닌 권리로 바꾸는 게 어떻게 가능한지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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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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