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09월26일tue
기사최종편집일  최종뉴스편집일
비마이너로고
news
뉴스상세검색 버튼
기사등록 기사제보
전체메뉴 뷰 펼침
HOME 뉴스홈 > 기고ㆍ칼럼 > 칼럼 > 원영의지하생활자의수기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쪽지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장애인 비례대표는 ‘성소수자’는 대표하지 않아도 되는가
성찰 없이 ‘존재’를 배제하던 역사를 되풀이하는 장애인 의원에게
등록일 [ 2016년01월30일 15시23분 ]

최동익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저는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음을 분명히 합니다’라고 썼다. 그는 지난 총선에서 장애인 비례대표로 선출되었으므로 ‘성소수자’의 삶에 대한 존중이나 권리 옹호는 하지 않아도 괜찮은 걸까?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최 의원이 쓴 짧은 글을 통해, 그의 입장과 능력에 커다란 회의를 품게 되었다.
 

먼저 그의 입장이 그 지위에 비추어 합당한 것이었는지 살펴보자. 최동익 의원은 개인의 능력과 인기에 기반을 둔 지역구 다수결투표를 통해 국회에 진출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물론 자신의 분야에서 마땅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제도적으로 국회에 진입한 것은 그 개인의 투표 동원력 때문이 아니라, 더불어민주당(당시 민주통합당)이라는 정당의 인기에 힘입어서다. 그리고 정당은 개인 간 인기투표와 같은 다수결 중심으로는 선출되기 어렵거나 불가능한 후보를, 그럼에도 국회에서 대변해야 할 ‘소수성’을 가진 후보로 비례대표 명단과 순위를 구성하였다. 최동익 당시 후보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당선이 확실시되는 번호를 받았는데, 이는 ‘장애인’이라는 인적 속성이 반드시 국회에 진입할 필요가 있다는 민주당의 결단 때문이었다. 즉 그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국회의원이 된 것이다.

최동익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장애인 비례대표의 취지란 무엇일까? ‘장애인’이라는 집단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것으로 충분한가? 최동익 의원은 장애인이라는 그 ‘집단’을 과연 대표할 수 있는가? 나는 휠체어를 탄 지체장애인으로서, 사실 시각장애를 가진 최동익 의원과 ‘속성’ 측면에서 유사한 점이 거의 없다. 나는 시각을 삶의 매우 중요한 요소로 활용하며 그렇게 활용하는 데 있어 지금 이 사회에서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 반면 높은 책상, 계단 있는 버스, 평균적으로 낮은 체력 등의 문제를 누군가 해소해주기를 바란다. 최동익 의원은 웹접근성, 음향신호기 등이 큰 관심사일 수 있지만 엄밀히 말해 저상버스는 있다면 편리할지언정 삶에서 필수적인 제도는 아닐 것이다. 이처럼, 그와 내가 ‘실질적으로’ 이 사회에서 요구해야 할 이해관계가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그가 나와 같은 인간의 의지와 이해관계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이라고 생각한다. 왜 그런가? 그와 나는 우리가 바꿀 수 없거나 바꾸기에 매우 어려운, 우리 스스로 선택하지도 않은 어떤 신체적 속성, 그것도 남에게 직접적으로 해를 끼치지도 않는 그런 속성 때문에 타인에게 혐오스럽고 하찮고, 비생산적이고, 사회적으로 쓸모없다고 취급되어온 경험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그가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향신호기와 웹접근성을 위해 노력할 때 내가 이를 지지하는 이유는 음향신호기를 내가 사용하기 때문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가진 신체적 ‘결핍’ 또는 ‘다름’이 결코 사회적인 배제로 연결되어야 하지 않는다는 이념과 실천을 대표하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이유에서 그와 같은 사람들이 국회에 많이 진출해서 의정활동을 성실히 해주길 희망한다.
 

그런데 어떤 인간이 스스로 바꿀 수 없거나 매우 어려운, 그가 선택하지도 않은 어떤 속성, 그것도 남에게 직접 해를 끼치지 않는데도 그저 다른 사람들이 존재만으로 혐오스럽다고 치부하고, 자신들의 눈으로 보기 추하다고, 병을 옮길 것 같다는 이유로 배제하고 분리하는 바로 그 속성의 또 다른 유형은 무엇인가? 최동익 의원은 정말 그것이 무엇인지 추론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는 두 가지 다른 유형의 속성으로부터 완전한 공통적 요소를 추출하여 그로부터 자신이 적극적으로 대변해야 할 존재들의 목록을 정리하지는 못하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나는 그의 ‘신념’에 반대하기 전에 그의 ‘능력’을 크게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의 능력을 더욱 의심하게 만드는 두 번째 이유를 살펴보자. 최동익 의원이 만약 장애계를 대표하는 활동을 오랜 시간 해왔다면, 그가 적어도 어떤 사람의 ‘존재’나 ‘속성’은 지지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머리로라도’ 알았어야 한다. 지금 시대에 누구도 “저는 장애인을 반대합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또는 저는 “‘장애’를 반대합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없다. 구체적인 정책판단에서 장애인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을 지지하지 않을 수 있고, 심지어 장애인을 마음속으로 혐오할 수 있지만 그렇게 장애 자체를 공식적으로 반대한다고 선언하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이는 장애를 우리 존재에 깊이 결부된 정체성으로, 하나의 속성으로 받아들이고자 했던 오랜 인식전환의 결과이다. 마찬가지의 흐름이 성소수자 운동에도 있다. 동성애나 동성애자는 그 자체로 지지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물론 구체적으로 관련된 사회적 제도나 실천에 대해 반대할 수 있다. 동성결혼이라는 ‘제도’에 반대할 수 있고, 동성 간의 사랑을 주제로 하는 TV 프로그램을 제재하자는 데 동의할 수도 있다(나는 이런 주장에 전혀 동의할 수 없고 그 철학적, 사회적 근거도 빈약하다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동성애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면 그 형식은 이러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최동익 의원은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습니다’라고만 (분명하게) 말한다. 거기에는 어떤 논증도 없다. 물론 최동익 의원은 여러 고민과 성찰을 거쳐 자신의 종교적 신념이나 경험, 어떤 철학에 근거할 때 동성 간의 사랑을 규범적으로 승인하는 입장에 반대할 수 있다. 소수자를 대표하는 의원이 그런 입장이라는 점이 나는 슬프지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저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함으로써, 그는 장애와 함께 지난한 시간동안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섰던 소수자문제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결여하고 있음을 드러내었다. 이 점에서 나는 그가 가진 신념이 21세기에 소수자 대표로서 적정한 것인가를 논하기 이전에, 그는 소수자 담론에 접근하는 형식에서조차 뒤처진 인물이라는 점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사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어떤 슬픔을 느낀다. 나는 장애를 가지고 나보다 앞서 열악한 한국사회를 살아왔던 나의 선배 장애인들의 삶을 상상해볼 때, 그 자체만으로도 이들에게 깊은 존경심을 느끼곤 한다. 지금보다 훨씬 더 가혹한 차별로 가득했던 사회에서, 장애가 신의 저주나 개인적 비극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인정받아야 할 인간적 삶의 한 모습임을 입증하기 위해 얼마나 처절하게 살았을까. 그들 덕분에 나는 장애를 가지고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음에도 대학에 들어갔고, 대학원을 나왔고, 직장을 얻었다. 그러므로 나의 선배들이 세월의 흐름 속에서, 권력과 정치의 복잡다단한 맥락 속에서 우리와 동일한 억압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존재에 주목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나의 인간적 선배인 당신들에 대한 존경을 철회하기 원하지 않는다. 사람이란 오랜 신념과 경험에 따라 각자의 판단을 형성해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제라도 장애와 성소수자의 억압이 가진 동일성과 차이가 무엇인지를 더 성찰할 ‘책임’이 있다는 점이다. ‘지지하지 않습니다’라는 한 줄로 특정 존재의 배제를 선언하기에 장애운동의 역사가 만들어낸 ‘비정상들의 저항’의 역사는 얼마나 두터운가. ‘커리어월드(발달장애인 직업훈련센터)’ 설립을 두고 발달장애인에 대해 느끼는 중학생 부모들의 ‘공포심’이 동성애가 주는 사회적 해악에 대한 몇몇 사람들의 ‘공포심’과는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추신 _ 반동성애 단체에게 국회 의원회관을 대관해준 김정록 새누리당 의원(19대 총선에서 장애인 비례대표로 선출)에 대해서는 왜 언급하지 않는지 누군가 물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언급할 필요조차 없기 때문이다. 

 

원영의 '지하 생활자의 수기'

김원영. 서른 살이 넘었다. 장애, 연극, 법에 관심을 두고 산다. 골형성부전증으로 15년간 집에서만 살았으나 한국사회에서 태어난 장애인치고는 운이 좋아 가방끈이 길다. 친절하지 않은 편이나 친밀한 친구들은 몇 있다.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를 썼다.
올려 0 내려 0
원영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텔레그램 비마이너 구독하기 비마이너 paypal로 일시후원하기 새창으로열기 비마이너 정기후원하기 새창으로열기
무통장입금 정보입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관련뉴스]
동아시아 성소수자 부모, 자녀의 권리 위해 어떤 일을 했을까?
찢겨진 성소수자 환영 현수막, “성소수자에 대한 증오범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일본의 장애차별해소법, 그 내용과 의의 (2016-05-04 10:34:57)
우리가 알지 못했던 말 (2015-09-23 00:28:51)
Disabled People News Leader 비마이너 정기 후원하기
비마이너의 아름다운 유혹, 독자 인터뷰 비마이너의 아름다운 유혹, 독자 인터뷰 더보기
비마이너 기자의 포부, “사골국 끓여드릴게요”
비마이너는 높은 해상도의 렌즈로 세상을 정확히 보여주죠
비마이너는 현실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힘을 주는 언론이죠
“장애에 대한 이야기를 자극적으로 소비하지 않아서 좋아요”
비마이너는 소수자의 시민권을 옹호하는 언론
우리 사회가 공유할 더 큰 가치를 위해, 비마이너를 읽고 후원합니다
기자에게 비마이너는, ‘나침판’이에요
“소수자를 차별하는 가장 무서운 방법은 그들에 대해 말하지 않는 거예요”


Beminor SNS 비마이너 페이스북비마이너 트위터비마이너 텔레그램
기고 칼럼 기자칼럼

기고 작은이미지
활동보조 등급심사...'전기 밥솥으로 밥을 할 수 있냐...
유난히 날씨가 맑던 지난 9월의 어느 날, 나는 막내동생과 함...

신선한 충격, 스웨덴의 지원고용과 주거...
박문희 님의 자랑스러운 삶과 투쟁, 모두...
도시, 악취가 아니라 '사람'을 내쫓다
포토그룹뉴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