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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신장애인 공동체 ‘베델의 집’을 가다 ②
정신장애인 당사자 스스로의 ‘힘’을 느끼다
등록일 [ 2016년02월14일 11시32분 ]

[ 일본 정신장애인 공동체 ‘베델의 집’을 가다 ① ] 먼저 읽기


“오늘 몸상태는 별로입니다. 세시까지입니다.”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었기 때문에 다음날도 이른 아침부터 일정이 시작되었다. 9시부터 ‘뉴 베델의 집’을 찾았다. ‘베델의집’은 3동의 건물을 사용하고 있는데, 각각 ‘베델의집’, ‘부라부라카페’, ‘뉴 베델의 집’이 그것이다. ‘베델의집’은 공동주거시설 겸 식당으로 쓰이는데 1층에는 음식을 만드는 곳이 있고, 2층에는 커다란 다용도 공간이 있다. ‘부라부라카페’는 식사와 다과를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작업장에서 가공 포장한 다시마나 당사자들이 직접 제작한 기념품도 판매한다. ‘뉴 베델의 집’은 2층 건물로 1층은 작업장으로 사용되며, 2층은 유한회사 ‘복지숍 베델’이 쓰고 있다.


우리는 ‘뉴 베델의 집’ 2층에서 열린 아침회의에 참석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베델의 집 구성원들이 모두 참여한다고 했다. 본격적인 회의에 앞서 한사람도 빠짐없이 돌아가며 오늘의 몸 상태와 기분, 그리고 시간을 이야기했다. “오늘은 순조롭습니다. 여섯시까지입니다.”, “조금 졸리지만 괜찮습니다. 저녁까지입니다.”, “오늘 몸 상태는 별로입니다. 세시까지입니다.” 시간이 무슨 의미인지를 물으니, 본인의 컨디션에 따라 그 날 그 날 일할 수 있는 시간을 사전에 공유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오랜 시간 집중하기 어려운 당사자들의 특성을 반영한 운영방식이었다. 회의실 벽에는 'がんばらない(열심히 하지 않기)'라고 쓰여진 액자가 걸려 있었다. 이후에는 각 사업단의 책임자가 현재 하고 있는 일의 진행상황과 오늘의 할 일을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중간에 갑자기 중년의 여성분이 일어나 가운데로 나오더니 한국에서 온 여러분을 위한 환영하기 위해 노래를 한다며 노래 한 곡을 부르고 들어가셨다.


뉴 베델의 집 1층 작업장에는 'おりていくいきかた(내려가는 삶의 방식)', 2층 사무실에는'がんばらない(열심히 하지 않기)'란 족자와 액자가 걸려있다.
 

아침 회의 중 환영가를 열창해 주시는 장면


다시마 포장, 그룹홈 투어, 부라부라 카페에서의 점심식사


아침회의가 끝나고 내려가니 다함께 작업장을 청소하고 있었다. 한쪽 소파에 누워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아무도 뭐라 하거나 신경 쓰지 않았다. 옆에서는 다시마 포장작업을 시작하려 준비하고 있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베델의 집을 일으킨 최초 사업이었다. 내친김에 앞치마와 머릿수건을 두르고 한켠에 앉아 포장지에 씰 붙이는 작업에 나섰다. 투명한 비닐의 한 가운데 씰을 붙이는 작업은 생각보다 긴장되었다.
 

씰 붙이는 법에 대한 강습 중이다
 

짧은 체험을 마치고는 그룹홈 투어에 나섰다. 베델의 집 사람들은 주로 그룹홈에 살고 있다. 베델의 집, 플라워하이츠, 역전하우스 등 6동에서 총 59명이 헬퍼(한국으로 치면 활동보조인)의 도움을 받으며 지내고 있다. 그룹홈 내부는 깔끔했고, 남녀가 공동으로 생활하는 그룹홈도 있었다. 남녀가 같이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용료는 한화로 월 24만원 정도이다.

 

그룹홈 내부 모습, 우리집보다 훨씬 깔끔하다

점심은 부라부라카페에서 먹었다. 내부는 흙과 짚으로 지어졌으며, 여느 카페만큼이나 멋지게 꾸며 놓았다. 식사와 다과를 할 수 있으며, 베델의 집 사람들이 직접 만드는 공예품, 책, 음반, 수첩, 달력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물론 판매도 한다. 스탭은 4~5명이 상주하고 있고 하루 평균 30여명의 손님이 방문한다고 한다. 식사를 기다리며 카페를 둘러보았다. 베델의 집 관련 책자가 많이 눈에 띄었다. '병이 낫지 않도록’, ‘베델의 집 연애 대연구’, ‘느리게 살기-’, ‘당사자의 시대-기법이전’. 쇼핑본능이 발동해 책 한권과 귀여운 공예품들을 지르고야 말았다. 때마침 식사가 나왔다. 튀김덮밥, 오므라이스, 함박스테이크를 시켜 나눠 먹었는데 어느 것 하나 맛없는 게 없었다.
  


당사자 스스로 정신장애를 연구하고 회복의 힘을 기르는 ‘당사자연구’


점심을 먹고 난 후에는 이번 연수의 마지막 코스이자 현재 베델의 집의 주력 활동인 SST(Social Skill Training: 사회적 기능 훈련), 이른바 ‘당사자연구’가 이루어지는 곳으로 향했다. ‘당사자연구’는 매주 한 차례 열리며, 정신장애인 스스로 정신장애를 연구하는 방법이다. 당사자들이 돌아가며 각자의 증상을 공유하고 서로 조언하며 병과 함께 살아갈 힘을 나눈다. 이곳에서는 환청을 ‘환청 씨’라 부른다. 비당사자에게 환청이나 망상을 무시해야 할 대상이지만 당사자에게 환청이나 망상의 대상은 이미 하나의 인격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연구대상인 야마토 씨는 환청 씨가 자꾸 남의 것을 훔치라고 한단다. 큰돈은 아니지만 베델의 집 내부인의 돈을 훔치기도 했다. 돈을 돌려주고 사과하고 싶었지만 환청 씨는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야마토씨는 환청 씨를 설득했다. 그 자리에서 역할극을 통해 야마토 씨가 사과하고 돈을 돌려주는 연습을 했다. 환청 씨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고 설득하는 모습이 좋았다는 칭찬도 들었다. 아마토 씨는 다음 시간까지 실제로 ‘절도’의 상대방에게 돈을 돌려주고 직접 사과하기로 했다. 이후 환청 씨와의 관계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준비하기로 하고 연구 활동을 마쳤다.


이들에 의하면 환청 씨는 당사자가 술을 마시고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사람들과 사이가 좋지 않으면 부정적인 혹은 공포스러운 말을 한다. 반면, 당사자가 술, 담배를 하지 않고 착실하게 일을 하고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면 환청 씨도 긍정적인 말을 한다. 아마도 환청도 당사자의 내면의 소리이기 때문에 자존감이 올라가면 그에 상응하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리라. 이처럼 당사자연구는 객관적인 연구 뿐 아니라 당사자의 회복과 잔존능력을 향상시킨다. 즉, 환청이나 망상을 완전히 없앨 수 없다면 환청 씨와의 관계 맺기를 통해 환청 씨와 함께 생활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당사자들에게 환청이나 망상이 어떤 존재이며 어느 정도 무게감을 가지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당사자연구가 한국에도 조속히 도입되기를 바라게 되었다. 동료 당사자활동가의 말을 빌리면, 한국인의 정체성을 외국인이 알려줄 수 없듯, 정신장애인 연구도 겪어보지 않은 전문가들보다 직접 경험하며 고충을 겪고 있는 당사자들이 주도할 때 더욱 효과적일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당사자연구 시간. 야마토 씨가 칠판에 환청 씨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제 돌아 온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반인권적인 감금과 학대, 열악한 입원환경 등은 정신장애계의 전통적인 해결 과제였으나 이것은 병원이나 시설에 있는 정신장애인을 전제로 한 논의였다. 그동안 정신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배제와 무관심 속에 장애인복지정책은 신체장애인을 중심으로 편제되어 있었다. 베델의 집 사람들처럼 병원을 나와 지역사회에 살고 있는 정신장애인들은 점점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고립되고 있었던 것이다. 지역사회에 살고 있거나 혹은 병원에서 퇴원한 정신장애인들이 살아갈 수 있는 기본적인 환경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탈원화’라는 외침은  공허해 보일 뿐이다. 정신장애를 가졌어도 가족에게 부담주지 않고 생활할 집이 있고, 능력에 맞게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고, 혼자하기 어려운 일을 도와 줄 사람이 있고, 지역사회 내에서 적절한 정신건강 서비스가 제공된다면, 입원 자체를 예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탈원화 정책도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되리라.


이런 비전으로 ‘정신장애인 복지지원법 추진 공동행동’에서는 지난 1년 여간 「정신장애인 복지지원법」을 제정하고자 했다. 법안의 내용은 현재 정신보건법 개정안으로 들어가 곧 열릴 임시국회에서의 통과를 목전에 두고 있다. 법안이 통과된다 하더라도 법을 제대로 시행하기 위한 시행령, 시행규칙 개정에 대한 의견개진과 견제가 이어져야 한다. 서울시에서는 지난 해 ‘마포구 정신장애인 사망사건’을 계기로 ‘정신장애인 자립생활센터’를 시범운영하기로 했다. 정신장애인 자립생활센터에서는 정신장애인들이 주체가 되어 동료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동료지원 및 상담서비스를 제공하고, 베델의 집의 당사자연구와 같은 회복 프로그램을 이끌어나갈 예정이다. 이와 별도로 동료상담가를 양성하는 사업도 진행될 것이다. 이러한 사업이 제대로 운영되는지에 대한 모니터링 역시 우리의 몫이다. 이러한 움직임과 노력들이 결실로 이어져, 정신장애인이 강제로 장기입원하지 않고 지역사회에서도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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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희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변호사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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