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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그리다 - 왼발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화장실 대처법
등록일 [ 2016년03월14일 21시34분 ]

(*주의: 이후 글에는 다소...아니 많이 더러운 이야기가 있으니 특히 비위가 안 좋으면 읽지 마시오! 그런데… 궁금하쥬? ㅋㅋㅋㅋ)


어렸을 때, 어머니로부터 심한 학대(?)를 당한 적이 있다. 화장실 바닥에 내팽개쳐지고 물 호스로 맞고 얼굴을 향해 뿌린 물줄기가 코로 들어가서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물고문을 당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어머니가 그러신 이유는 똥 때문이었다.


내가 똥, 오줌을 가리기 시작했던건 몇살때 부터였는지 기억나지는 않는다. 또래보다 조금 영특한 편이어서 (크큭) 조금 일찍 가리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라, 뒤처리가 힘들었다. 지금까지도 오줌은 고무줄 바지를 입은 상태에서 왼손으로 어찌저찌 내려서 통이든 변기든 요강이든 눌 수가 있었지만 똥은 달랐다. 그때는 무조건 어머니 또는 아버지가 뒤처리를 해주셔야했고 변기에 어렵게 앉아서 싸야했다.


그럴 때 마다 난 부모님의 푸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야했다.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다 큰 아들 거기를 닦아줘야하느냐. 더러워 못살겠다. 냄새난다. 그만 좀 쳐먹고 싸라. 등등. 그리고 그런 분위기에서 누군가에게 (설령 부모라도) 가장 은밀하고 민감한 부분을 보여주고 닦임을 당하는 느낌은 그 어떤 것 보다도 싫었다.


그런 이유로 난 똥을 자주 싸지 않으려고 무지하게 노력을 했다. 3,4일은 기본이었으며 1주일을 넘기기도 다반사였다. 그러다보니 부작용이 생겼는데... 똥을 옷에 조금씩 지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그런 나를 어머니는 보다못해 화장실 바닥에서 물고문(?)하기에 이른다. 오죽하면 그러셨을까? 냄새에 빨래에.. 나를 비롯한 가족들의 건강까지... 많이 속상하시고 힘드셨을것 같다.

사진 출처 : flickr.com

그러던 중 그때도 어김없이 똥을 지르고 씻기 위해서 화장실에서 옷을 벗고 기다리는 중이었는데 문득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샤워기를 써서 엉덩이를 딲아 볼까 라는 생각이었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바로 실행에 옮겨 보았다. 의외로 잘 닦였다. 물론 조준도(?) 힘들고 물을 많이 써야 하고 똥을 쌀때 무조건 바지를 벗고 해야했지만 드디어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뒤처리를 할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 후로는 거의 옷에 똥을 지리지 않게 되었다. 나혼자 그걸 할수 있게 되면서 화장실 가는게 귀찮긴 했지만 전처럼 우울하거나 죽을만큼 싫지 않았다. 그래서 자주 가게 되고 자연스럽게 속옷을 버리지 않게 되었다.


그 후에 지금처럼 장애인 단체에서 일하기 전에, 나는 조그마한 벤처기업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인터넷이 보급되기 전, 피씨통신에서 알게 된 동아리 사람들과 벤처기업을 만들어서 일을 했었다. 당시에는 장콜도 없었고 활동보조인도 없어서 출퇴근을 하기에는 열악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사무실에서 먹고 자고 했다. 처음에 회사는 가정집에서 시작하여 화장실에 샤워기도 있었고 내가 들어가기도 어렵지 않았지만, 회사가 커지면서 사무실을 넓은 곳으로 옮기고 내 거처도 그 사무실로 옮기게 되었다. 그곳은 정말 전형적인 사무실이어서 화장실이 열악했다. 샤워기도 없고 접근하기도 어렵고 좁기도 하였다.


회사 동료들이 물론 많이 도와 주었다. 지금도 그 부분에 있어서는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거희 자원봉사 이상의 역할을 해 준 경우이기 때문에 나는 커다란 빚을 지고 있고 아직까지도 그걸 갚지 못하고 있다. 정말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런 도움과 귀찮음, 껄끄러움, 서운함 등이 어우러져 그 동료들과 늘 갈등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래서 마음 편하게 도움을 부탁 할 수도 없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기꺼이 도와주는 마음이 점점 작아지는 것을 느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역시 화장실이 었다. 특히나 큰 것을 볼때, 더욱 안좋은 상황은 배탈이라도 나서 설사로 인해 옷을 버렸을 때는 정말 그 상황이 죽을 만큼 싫고 괴롭고 수치스러웠다


그때도 배탈이 나서 조금만 서두르지 않으면 큰 거사(?)를 치를 상황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화장실을 빨리 도착을 해서 무사히 시원하게 똥을 쌌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느낌적인 느낌으로 엉덩이에는 이미 겉잡을 수 없는 지저분함이 있었고 샤워기는 없었다. 그렇다고 그 상황에서 샤워실이 있는 3층까지 옷을 벗고 갈 수는 없었다. 우리 사무실은 1층에 있었고 샤워실은 3층에 있었지만 엘리베이터는 없었다 계단을 기어 올라가야 했다. 30분 정도 고민을 했던것 같다. 어떻게 하면 이 뒤처리를 나혼자 있는 상황에서 해결할 수 있을까.


내 손은 엉덩이에 닿지 않는다. 그렇다고 휴지를 입에 물고 어찌 할 수도 없다. 남은건 발가락인데…. 발가락? 그래 발가락으로 해보자,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험삼아 발가락 엄지 검지로 휴지를 잡아 봤다. 오른발도 되고 왼발도 되었다. 하지만 내가 장애가 좀 덜하다고 느낀 오른발로는 엉덩이에 그 부분까지 닿게 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해도 가능하지가 않았다. 모든걸 포기하고 왼발로 해 보았다. 그곳까지 닿았다. 글로 설명하기 어려운 자세였지만 여하튼 휴지를 집은 상태로 그곳에 닿아서 닦았다.


그 후로 어려웠지만 샤워기가 아닌 휴지로 뒤처리가 가능해 지면서 최소한 그 부분 만큼은 그 당시의 동료들에게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되었다. 그것은 사소한 일인것 같지만 정말 당사자에게는 절실하고 중요한 일로 느낀다. 당시에는 잘 못느꼈지만 사람으로써의 역할을 드디어 제대로 하는구나 라는 느낌을 받은 것 같았다.


평소에 내 왼발은 없는 것처럼 취급 당했었다.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그저 바지구멍에 끼워지는 내 살덩어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가끔은 왼 무릎에 종기가 생겨서 날 아프게 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그 왼발로 뒷처리가 가능할지 누가 알았겠는가?


내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장애를 극복 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안되는 것을 억지로 하자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내 팔다리 몸을 지금까지 어떻게 알아 왔고 사용했으며, 어려운 것을 파악하고 대안을 끊임없이 찾는 과정. 그것을 여러분과 함께 고민하고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했다.


요즘에는 똥을 싸고 뒤처리를 하는 것을 힘들고 귀찮게 샤워기나 왼발로 하지 않는다 비데를 쓰거나 활동보조인에게 부탁을 하고 있다. 충분한 대안이 있으면 그 방법을 쓰면 된다. 여기서 중요한것은 충분한 대안은 당사자 혼자 고민할 수도 있지만 주위사람들 가족들 나아가서는 우리 사회가 함께 하면 조금 더 나은 대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내 몸에 대한 고민, 당신의 장애에 대한 고민, 더 이상 나 혼자, 당신 혼자 고민하지 말자. 함께 하자. 그러면 좋은 방법과 대안이 쏟아질 수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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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현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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