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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장애차별해소법, 그 내용과 의의
‘일본 장애인차별해소법 vs 한국의 장애인차별금지법’ 비교
등록일 [ 2016년05월04일 10시34분 ]

지난 4월 1일부터 일본에서는 ‘장애인차별해소법’이 시행되었다. 일본의 장애인단체들은 이 법의 시행을 하루 앞두고 ‘차별해소법의 탄생’을 축하하는 퍼레이드를 진행하기도 했다. 법의 내용을 훑어본 개인적인 첫인상은 “도대체 이 법이 무슨 실효성이 있을까?”였다. 그럼에도 이 법을 둘러싼 사회적 분위기는 작은 변화의 시작임을 알리고 있으며, 잘 들여다보면 일본 장애인단체와 정부가 나름대로 정교한 세공을 거친 흔적도 발견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그 의미와 한계를 우리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비추어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장애인차별해소법’ 시행을 하루 앞둔 3월 31일, 그 시행을 축하하고 기념하는 퍼레이드가 도쿄 중심가에서 펼쳐졌다. 이날 각 지역 장애인단체 등 약 700여 명이 참여했다. (사진 제공 : 원영)
1. 법의 기본 목적: 사회인가, 장애인 개인인가
 

일본의 장애인차별해소법의 정식 명칭은 ‘장애를 이유로 하는 차별의 해소 추진에 관한 법률’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정식 명칭은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이다. 법의 명칭에서 어떤 차이를 확인할 수 있을까? 법의 목적을 보면 그 차이가 보다 명확해진다. 일본의 장애인차별해소법은 제1조에서 법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다소 길게) 서술한다.
 

“이 법은 (…) 모든 장애인이 장애인 아닌 사람과 동등하게 기본적 인권을 향유 할 개인으로서 존엄성이 중시되고 (…)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 해소의 추진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 행정 기관 등 및 사업자의 장애를 이유로 하는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 등을 정함으로써 (…) 모든 국민이 장애의 유무에 의하여 차별받는 일 없이, 상호의 인격과 개성을 서로 존중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실현하는 데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한편, 우리 장애인차별금지법의 목적은 보다 간단하다.
 
“이 법은 모든 생활영역에서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장애를 이유로 차별받은 사람의 권익을 효과적으로 구제함으로써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권 실현을 통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함을 목적으로 한다.”

 

법의 이름과 목적은 각각의 법률이 초점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일본의 장애인차별해소법은 차별받은 사람의 ‘권리’를 구제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하는 법이 아니라, 장애를 이유로 차별하는 여러 제도와 관행을 ‘해소’하여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상호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국가와 사회구성원의 의무를 정한 법이다. 반면 한국의 장애인차별금지법은 특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법이라기보다는, 차별의 피해자인 장애인 당사자의 차별을 금지하고 그의 권리를 구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2. 공공과 민간의 차별금지 및 해소 의무
 

한국의 장애인차별금지법은 국가의 국민에 대한 차별금지의무는 물론, 국민 상호 간에도 광범위한 영역에서 차별금지를 규정한다. 문화, 예술·체육활동이나 재화의 공급과 이용은 물론 가정 내에서 발생하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도 금지한다. 이는 개인과 개인 간의 관계에서는 ‘사적 자치’(자신의 선호나 취향에 따라 경제활동과 사회활동 등을 자신의 판단으로 선택하고 영위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하는 대다수의 자유주의 법체계에서 상당히 예외적인 것이다.
 
일본의 장애인차별해소법은 국가 등의 공공단체와 민간 사업자에게도 장애인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의무를 부여하기는 하지만, 차별상황을 해소하기 위한 ‘합리적 배려’에 대해서는 국가만이 법적 의무를 지도록 했다. 따라서 민간 사업자는 합리적 배려를 제공해야 할 ‘노력 의무’만을 질뿐이다.

‘장애인차별해소법’ 시행을 하루 앞둔 3월 31일, 그 시행을 축하하고 기념하는 퍼레이드가 도쿄 중심가에서 펼쳐졌다. 이날 각 지역 장애인단체 등 약 700여 명이 참여했다. (사진 제공 : 원영)

3. ‘합리적 배려’의 문제
 

일본의 장애인차별해소법은 제7조와 제8조에서, “장애인에게서 그 시점의 사회적 장벽의 제거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의사표명이 있는 경우에 대하여, 그 시책에 수반되는 부담이 과중하지 않은 경우에는, 장애인의 권리와 이익을 침해해서는 안 되며, 당해 장애인의 성별, 연령 및 장애의 상태에 부합하도록 사회적 장벽을 제거하는 시책에 관한 필요하고 합리적인 배려를 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위에서 언급했듯이, 공공기관은 ‘하여야’하는 의무가 있고, 민간사업자는 배려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는 차이가 있다). 합리적 배려는 우리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정당한 편의’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미국 장애인차별금지법(ADA; 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이 규정하는 합리적 조정(reasonable accommodation)의 법리를 채용한 것이다.
 

한국의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정당한 편의제공을 하지 않는 것을 차별행위의 하나로 보지만, 일본법에서 합리적 배려와 차별금지의 관계는 다소 모호하다. 이 규정의 취지나 기원을 본다면 합리적 배려를 하지 않은 경우 곧 차별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이지만, 만약 그렇다면 합리적 배려를 해야 할 ‘노력 의무’만을 지닌 민간에겐 모순된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예컨대 민간에서 노력은 했지만 합리적 배려를 하지는 못했다고 하자. 그러면 노력의무를 다했으니 장애인차별해소법 위반은 아닌데, 합리적 배려는 안 한 것이니 차별이므로 장애인차별해소법 위반이라고 보아야 할까?
 

그렇다면 차별은 구체적으로 무엇이고, 합리적인 배려는 어떤 행위를 말할까? 일본 장애인차별해소법은 제10조와 제11조에서 국가가 차별금지와 합리적 배려를 위해 ‘국가 공무원 대응 요령’과 ‘사업자의 대응 지침’을 만들도록 하고 있다. 또한 이 경우 장애인단체들의 공식 의견을 듣도록 규정한다.
 

위와 같은 작업을 통해 일본 정부는 부처별로 대응요령과 대응지침을 장애인차별해소법 시행 직전 공포하였다. 이는 행정규칙의 일종인 훈령 형식이므로 법률적 효력을 갖는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대응요령이나 대응지침의 구체적인 내용 준수 여부가 결국 장애인 차별 여부를 판단할 때 중요한 고려요소가 될 수밖에 없기에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큰 의미를 가질 것이다. 흥미롭게도, 대응요령과 지침 곳곳에는 장애인권리협약과 ‘사회적 모델’ 등의 용어가 공식적으로 언급되고 있으며, 합리적 배려가 무엇인지가 비교적 구체적으로 예시된다. 예를 들어 일본 문화청 대응요령은 ‘합리적 배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장애차별해소)법은, 장애인권리조약의 합리적 배려 개념에 근거하여 (…) 장애인이 받는 제한이 장애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다양한 장벽과 만나게 될 때 발생하는 것으로 소위 ‘사회 모델’의 개념에 입각하여, 장애인의 권리 이익을 침해되지 않도록 장애인이 각 상황에서 필요로 하는 사회적 장벽을 제거하기 위해 필요한 합리적인 노력[을 하는 것이다]”(문화청,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 해소의 추진에 관한 대응 요령. 2015년 12월 25일 공포. 문화청 훈령 제3호). 
 

합리적 배려의 구체적인 예시로는 다음과 같은 것을 든다.
 

“장애인의 신청이 있는 경우 천천히, 주의를 기울여 신중하게 반복 설명하면서 내용이 이해되었는지를 확인하며 응대한다. 또한, 생소한 외래어는 피하고 한자로 숫자를 표기하지 않으며, 시간은 24시간 단위가 아닌 오전·오후로 표기[한다]” (위 문화청 대응요령 중 ‘의사소통에 있어서 합리적 배려’)


DPI, 『합리적 배려, 차별적 취급이란 무엇인가』와 일본 변호사협회 인권위원회 소속변호사들이 쓴 『장애인차별해소법 Q&A』(왼쪽에서부터). 대응지침과 대응요령에 규정된 합리적 배려의 예시들은 일본 장애인단체들의 공식의견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사진 제공 : 원영)

이처럼 일본 장애인차별해소법 상의 대응요령이나 대응지침은 우리 장애인차별금지법보다 훨씬 더 약한 규범력(법률로서 행위를 강제하거나 간접적으로 촉구하는)을 가지기는 하지만, 장애계와 장애학계, 국제인권 담론에서 발전된 이념과 용어 등을 장애인단체들이 참여하여 직접 구성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은 고무적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합리적 배려’라는 용어가 적정한지는 일본 내에서도 논란이 있다. 배려는 여전히 권리를 떠오르게 하기보다는 친절과 베풂의 태도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미국 ADA의 합리적 조정(reasonable accommodation) 법리를 가져오면서도, 이를 더욱 적극적인 권리와 정당성을 떠오르게 하는 용어인 ‘정당한 편의’로 표현한 우리 장애인차별금지법 입법자들(사실상 장애운동가들과 옹호자들, 법률가들)의 선택은 탁월했음을 느끼게 된다.
 

4. 권리의 구제
 

일본의 장애인차별해소법에서 차별받은 개인은 어떻게 구제받을 수 있을까? 앞서도 언급하였듯이 이 법은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이 아니라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드는 데 초점을 둔 법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장애인차별금지법과 같이, 차별의 피해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장애인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거나 법원을 통해 직접 ‘적극적 조치’ 등을 구하는 내용은 담고 있지 않다. 그보다는 국가 및 지방 자치 단체가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 해소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이해를 증진”하는 계발활동을 하도록(제15조) 하는 등 국가의 행정적인 차별해소 노력을 규정할 뿐이다.
 

다만 사업주 등이 차별을 했다고 보이는 경우, 주무 대신(우리나라의 장관에 해당한다)은 합리적 배려의무 등을 잘 준수했는지에 대해 특히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 사업주에게 보고를 요구하거나 조언, 지도 혹은 권고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제12조) 사업자가 보고하기를 거부하면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한다.
 

우리나라의 장애인차별금지법도 장애인의 차별을 적시에 빠르고 효과적으로 구제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음을 생각해보면, 일본의 장애인차별해소법은 차별 받은 사람에 대한 권리구제의 측면에서는 사실상 효과적으로 기능하기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민사소송이나 행정소송 등 기존의 권리구제 방식(손해배상이나 행정처분의 취소 등)을 사용할 때 장애인차별해소법상의 차별사유를 근거로 삼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법원을 통한 구제 가능성은 더 커졌다고 할 수 있다.
 

5. 함의
 

많은 비판과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인의 권리보호 측면에서 상당히 진일보한 법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광범위한 영역에서 차별을 금지하고, 차별을 받은 경우 차별 여부를 판단하는 독립된 기구를 두고 있으며, 법원도 적극적으로 차별해소에 개입할 여지를 두고 있다. 그 점에서 일본의 장애인차별해소법은 권리구제 측면에서 우리가 참조할 요소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럼에도 일본 장애인차별해소법의 제정과정과 제정 이후, 대응요령과 대응지침의 구성 단계와 그 내용 등에서 우리가 진지하게 살펴볼 내용이 있다. 일본은 2007년 장애인권리협약에 가입한 이후 약 7년이 지난 2014년 1월에서야 조약을 비준하였다. 이토록 느린 진행에는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 부족도 있겠지만, 그 기간 장애인권리협약에 부합하도록 장애법 전반에 대한 조정 작업이 진행된 것도 사실이다. 2011년 장애인기본법이 합리적 배려 개념을 채용하며 전면 개정되었고, 장애인고용촉진법 역시 차별구제 절차를 강화하는 쪽으로 개정되었다. 장애인차별해소법이 제정된 이후 시행까지 2년간 이 법에 따른 대응요령과 대응지침을 마련하기 위해 일본 장애인단체와 정부 부처들이 논의테이블을 가졌고, 그 결과 정부 공식 문서에 ‘사회모델’, ‘합리적 배려’, ‘권리협약의 이념’ 등의 표현이 담겼으며, 합리적 배려와 차별의 구체적인 예시들이 공식 행정 규칙 내부로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우리는 빠른 속도로 강력하고 세련된 장애법체계를 마련해가고 있지만, 차별을 피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며, 정당한 편의는 어떻게 제공하여야 하는지가 정부 등 공적인 수준에서 충분히 논의되고, 공유되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권리협약에 대한 목소리가 높지만 그 규범력은 국내법체계에 충분히 녹아들지 않고 있다. 그런 점에서 신중하고 꼼꼼하게 한 발씩 나가고 있는 일본 장애계의 노력은 여전히 우리가 참조하고 성찰해야 할 가치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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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영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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