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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표현? 문제는 혐오정치야!
혐오담론 씹어먹기 세미나 ①
등록일 [ 2016년05월13일 16시45분 ]

[편집자 주] 끔찍한 말들이 떠돌고 있다. 할퀴는 말, 증오를 선동하는 말, 차별과 폭력을 부르는 말, 무엇보다 그걸 즐기는 말들이. 그 말들은 말할 권리를 갖지 못한 자들, 권력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소수자들을 겨냥한다. 여성, 동성애자, 이주자, 장애인 등 소수자에 대한 혐오의 담론이 분출하고 있다. 언제 부터일까, 대략 2000년대 이후 온라인의 ‘일베’와 오프라인의 개신교 우파를 중심으로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와 차별과 폭력을 선동하는 담론이 노골적으로 유포되고 있다. 작금의 혐오담론은 단순히 개인적인 감정을 무분별하게 표현하는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자본주의 체제 위기를 반영하는 사회적 담론으로, 20세기 초반의 파시즘과 유사한 정치적 욕망의 표출이다. 유령처럼 떠돌고 있는 혐오 담론의 실체는 무엇이며, 거기 내포된 정치적 욕망은 무엇이고 그 혐오의 정치에 대항하는 정치는 어떤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비마이너가 노들야학과 함께 ‘혐오담론 씹어먹기’ 세미나를 열었다. 공개 모집을 통해 25명의 다양한 소수자, 인권 활동가들이 모였으며, 13주 동안 8권 정도의 텍스트를 읽고 토론할 예정이다. 그 토론 내용을 보고서 형태로 연재하려 한다.

 
혐오가 대세인가? 
 
첫 번째 세미나에서는 2000년대 이후 혐오담론의 실태를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에 대한 혐오로 나눠서 토론했다. 왜 2000년대 이후일까? 물론, ‘빨갱이’, ‘전라도’에 대한 혐오, ‘동성애자’, ‘혼혈’, ‘장애인’에 대한 멸시, 그리고 ‘여성’ 차별은 한국 사회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로서 공기처럼 존재해 왔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김대중-노무현 집권기, 즉 보수 세력 입장에서 ‘잃어버린 10년’ 동안 그 지배 이데올로기의 대기는 ‘혐오’의 정서로 응결되고 ‘담론’의 형태로 가시화되었다. 
 
크게 두 가지 상황적 요인이 있다. 하나는 신자유주의 체제의 도입, 확산으로 ‘불안’의 정서가 사회적으로 확산된 것이고, 두 번째는 정권을 잃은 보수 세력의 위기감과 민간 극우 조직의 형성이다. 여기에 ‘여성부’와 ‘국가인권위’가 출범하고, ‘다문화 정책’이 도입되고, ‘장애인 차별금지법’이 도입되는 등 전에는 인지되지 않던 권리들이 제도적 영역으로 들어오면서 주류 집단의 불안과 위기감이 소수자들에 대한 혐오감으로 투사된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와서는 민간의 극우 집단과 국가권력의 직·간접적인 협력 속에서 소수자/좌파 혐오를 ‘정상성’으로, ‘윤리도덕’으로, 심지어 ‘법과 제도’로 공인하려는 추세도 생겼다.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동성애 혐오와 무슬림 혐오를 공약으로 내건 기독자유당의 놀랄 만한 득표력(2.64%)과 박영선, 김무성 같은 정치인과 국회의원 후보자들에게 동성애 혐오를 강요하는 모습은 바야흐로 ‘혐오의 정치’를 예고한다.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다. 여성, 동성애자, 이주민에 대한 혐오발언으로 유명해진 도날드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가 되고,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될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또한 ‘필리핀의 트럼프’라 불린 검사출신 시장 두테르테가 예상을 뒤엎고 필리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치안불안에 시달리는 국민에게 “6개월 내 범죄 근절”이라는 공약을 내건 그는 "범죄자 시체를 빨랫줄에 널어 버리겠다.", "(성폭행당하고 살해된 여성을) 내가 먼저 했어야 하는데", "장애인들은 자살하는 걸 고려해 보라" 같은 혐오발언으로 대중들의 공격 충동을 자극했다. 조선일보의 말마따나 “미국도, 필리핀도 위선적이고 무능한 정치에 신물 난 유권자들의 인내가 한계에 이른” 걸까? ‘인권의 정치’, ‘평등의 정치’, ‘다양성의 정치’를 “위선적이고 무능한 정치”로 치부하고, 대중들의 불안과 공포를 자극하여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선동하는 혐오의 정치가 발흥하고 있다. 

2014년 11월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을 위한 공청회에 보수 기독교 단체가 난입해 격렬하게 반대하고 있는 모습.
 
연민과 혐오는 동전의 양면이다
 
세부적으로, 장애인에 대한 전통적인 태도는 연민과 공포이다. 가령, 모자보건법이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낙태를 허용한다고 명시할 때나, 국립재활원이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유치원, 초중고등 학생들에게 ‘장애 예방 5계명’(“다이빙을 하지 않아요”, “위험한 장난을 하지 않아요”, “안전벨트를 착용해요”, “오토바이, 청소년은 타지 않아요”, “무단횡단을 하지 말아요”)을 가르칠 때 장애는 개인적으로든 국가적으로든 연민과 공포를 자아내는 불행으로 표상된다. 그런데 ‘불쌍한’ 장애인에 대한 연민과 공포는 언제든 ‘위험한’ 장애인에 대한 혐오로 바뀔 수 있다. 
 
2000년대 이후 장애인 운동과 장애인의 사회적 참여가 활발해지면서 ‘일도 안 하고 국고만 축내는 장애인’, ‘언제든 우리 아이들을 해칠 수 있는 위험한 정신 장애인’, ‘시도 때도 없이 교통을 방해하는 떼쟁이 장애인’ 등 혐오의 감정이 드러나고 있다. 2015년에 아프리카 TV 방송에서 다수의 BJ들이 "장애인한테 사람 대접 해 줘야 합니까", "여기는 또 뭐 전부 장애인이냐. 자랑도 아니고 장애인 저 구석에 좀 해 놓지" 등의 혐오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것은 장애인에 대한 연민과 동정 이면에 혐오의 감정이 도사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억압된 혐오감은 언제든, 상황만 조성되면, 노골적으로 분출하여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강제수용과 우생학적 조치를 선동할 수 있다. 
 
혐오는 불안을 먹고 자란다
 
이주민, 혼혈, 이슬람에 대한 인종주의적 혐오는 순혈적 민족주의가 강한 한국사회에서 뿌리 깊이 내재해 있다가 2000년대 이후 이주민의 대량 유입, 다문화 정책, 이슬람-테러와의 전쟁을 배경으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1961년 한국장애아동조사보고서에서 장애의 12가지 종류에 ‘혼혈’도 포함된 것처럼 인종적 타자에 대한 혐오와 장애인 혐오는 원래 겹쳐지는 지점이 많다. 혼혈이 장애의 한 종류로 ‘비정상화’ 된 것처럼 장애는 인종의 한 가지로 취급되어 인종주의적 조치를 받아 왔다. 
 
장애인에 대한 ‘연민’과 ‘혐오’처럼 ‘다문화’ 가정에 대한 ‘관용’과 불법이주자에 대한 ‘혐오’는 양가적으로 복합(complex)되어 있다. 또한 2012년 조선족 오원춘 사건 이후 특정 이주민 집단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혐오담론이 확산된 것은 2014년 발달장애청소년의 상윤이(2세) 살해 사건 이후 발달장애인 전체를 잠재적 범죄 집단으로 표상하는 양상과 닮아 있다. 혐오 담론은 항상 위험 담론을 동반하며 혐오 집단을 잠재적 범죄 집단으로 취급하는 특성이 있다. 
 
혐오 담론의 주체는 혐오의 정치를 부른다  
 
2000년 이후 혐오담론을 주도한 주도 세력은 보수 개신교 집단이다. 그들의 주된 혐오 대상은 동성애, 특히 남성 동성애자들이다. 2000년대 이후 유명 동성애자들의 커밍아웃과 퀴어문화축제로 ‘관용’의 분위기가 확산되고 2007년부터 성소수자 차별을 포함한 포괄적인 차별금지법 제정이 논의되면서 개신교 우파를 중심으로 동성애 혐오세력이 결집했다. 
 
그들은 성서의 교리와 설교의 자유를 지키는 차원을 넘어 동성애 혐오를 이슬람 혐오 및 종북 혐오와 묶어 스스로를 대한민국 체제 수호자로 자임한다. 즉, 개신교 우파와 국정원을 비롯한 보수 정치인, 뉴라이트 조직, 그리고 ‘일베’의 직·간접적 커넥션 속에서 가족질서를 파괴하는 동성애자, 사회질서를 파괴하는 이슬람 테러리스트, 이념적 질서를 파괴하는 종북 좌파로부터 대한민국 체제를 수호하자는 급진적인 극우 정치가 대두하고 있다.

퀴어퍼레이드 현장에서 성소수자 혐오 단체에 맞서 한 참가자가 "사랑이 혐오를 이긴다"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있다.
 
혐오 개념은 남용되고 있는가?  
 
첫 번째 세미나에서 가장 열띤 토론을 불러일으킨 주제는 ‘혐오’ 개념의 남용 여부이다. 언제부터인가 ‘혐오’라는 개념이 유행어처럼 번지면서 ‘편견’, ‘차별’, ‘비하’, ‘무시’, ‘실수’ 등을 모두 ‘혐오’로 부르는데, 그것은 구별되어야 할 태도를 구별하지 않는 ‘남용’인가, 아니면 겉으로는 구별되는 태도들 이면의 본질적 정서를 적실하게 표현한 것인가?   
 
또한 혐오 세력에 맞서는 혐오도 회자되고 있는데, ‘한남’(한국남성의 줄임말) 혐오, ‘어버이’(어버이연합) 혐오, ‘개독’(보수 개신교) 혐오도 똑같은 혐오인가? 만약 다르다면 ‘혐오’라는 개념의 조작적 정의가 필요한 것인가? 만약 같다면 혐오 담론에 맞선 대항적 혐오 담론, 혐오의 정치에 맞서는 대항적 혐오의 정치도 생각해 볼 수 있는가? 
 
이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제기될 것 같다. 그럼에도 우리 앞에 제기된 문제는 개별적인 혐오 표현이 아니라 사회적인 혐오 담론과 혐오의 정치라는 점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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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 lizom@hanmail.net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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