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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는 ‘병’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삶의 궤적’이다
[인터뷰] 일본 ‘베델의 집’ 무카이야치 이쿠요시 씨
정신장애에 대한 생각의 전복, 일본 ‘베델의 집’을 만나다
등록일 [ 2016년05월23일 20시17분 ]
“세끼 밥보다 회의를, 마음 놓고 땡땡이칠 수 있는 회사 만들기, 자신의 병명은 자기가 붙이자, 손을 움직이기보다 입을 움직여라, 편견·차별 대환영, 환청에서 ‘환청 씨’로, 약함을 연대로, 약함의 정보 공개, 베델의 집에 오면 병이 드러난다, 올라가는 삶에서 내려가는 삶으로.”

일본 홋카이도 작은 어촌마을 우라카와에 있는 ‘베델의 집’이 내세우는 슬로건이다. 이들은 자신의 약함을 애써 감추지 않고 오히려 바깥으로 드러낸다. 매일 아침 회의를 통해 자신의 상태를 공유하고 그날 그날, 할 수 있는 양만큼의 일만 한다. 하다가 힘들면 멈춰도 괜찮다. 힘듦에도 불구하고 더 하게 되면 병이 도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금 이대로도 괜찮은’ 삶을 살아간다.
 
이곳에서 정신병은 치료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인근 병원에서도 가급적이면 약도 주지 않고, 굳이 입원을 시키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곳에서 자기 병에 대한 전문가는 의사가 아니라 바로 그 자신이다. 자신의 병이 어떠한 상황에서, 어떠한 패턴으로 발현되는지 스스로, 그리고 동료 정신장애인들과 함께 연구하고 병명을 짓는다. 이를 ‘당사자연구’라고 한다. 이 당사자 연구는 현재 정신의학계와 같은 전문가 집단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1978년 정신장애인 회복자 클럽 '도토리회'로 출발한 베델의 집의 실험은 1984년 우라카와의 낡은 교회당을 일부 개축하고 이후 다시마 산지 직송 사업을 하며 지역사회와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무카이야치 이쿠요시 씨는 이들과 1978년부터 함께한 사회복지사다. 비마이너는 이달 초 '정신장애인 지역사회 통합을 위한 한·일 국제 세미나'에 참여하기 위해 한국에 방문한 무카이야치 씨를 만나, 현재의 베델의 집과 일본 정신장애계의 현황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6일,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주관한 한·일 국제세미나에서 베델의 집 ‘당사자 연구’를 보이고 있는 무카이야치 씨(오른쪽)

- 베델의 집(아래 베델)은 정신장애인 당사자 운동의 시도로 매우 주목 받고 있다. 우선 베델은 어떤 조건에서 생겨날 수 있었는지부터 설명해달라.


우라카와 지역 주민 30%는 ‘아이누족’(일본 홋카이도, 러시아 사할린 등지에 있는 소수 민족)이다. 또한, 홋카이도는 과거에 조선반도 사람 수십만 명이 강제동원 된 지역이기도 하다. 전쟁 후에도 홋카이도에 남은 조선사람들이 히다카 지방에 많이 살고 있다. 여기서 알코올 의존증에 걸린 사람, 정신병을 앓게 된 사람도 많다. ‘단순한 병’이라는 관점이 아니라 그 병이 이야기하는 배경이 뭐냐, 그게 중요하다고 본다. 정신병을 앓게 된다는 것 자체가 그 지역의 역사적 배경,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그런 병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 말로 이야기하는 것은 아주 작은 시도일지 모르지만, 지금까지의 역사를 바꿀 수 있는 힘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초기 일본 정신장애인은 지적·신체장애인과는 달리 장애인복지법 대상도 아니고 복지서비스 대상에서도 제외됐다. 그러나 오히려 그 때문에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발전해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현재는 정신장애인도 다른 장애인과 마찬가지로 복지법과 복지서비스의 대상이 되었다. 헬퍼(한국의 활동보조인) 활용, 직업재활 등이 가능해졌다. 통합실조증 등 정신장애가 있는 사람도 어느 정도 넓은 영역에서 사회 참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틀이 짜였기 때문에 새로운 도전을 하기 힘들어졌다.
 

- 새로운 도전이란 게 뭔가?
 

베델의 집이 시작됐을 땐, 조직 대표나 그런 포지션은 베델 멤버들만 참여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리카 씨라고 집에서 못 나오는 히키코모리분이 계시다. 예전엔 ‘조직 대표로 누가 좋으냐’고 했을 때, 다 같이 이야기해서 리카 씨를 대표로 정했다. 과거엔 그런 게 가능했는데 지금은 무턱대고 그럴 수 없다. 왜냐하면 대표가 되기 위해선 어떠한 ‘자격’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하루 8시간 일할 수 있다거나, 그런 조건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조건을 맞추려면 다들 병이 더 심해질 것이다. 이런 요건들 때문에 다들 대표를 못 하게 됐다. 그래서 대표 교체 시기가 왔을 때, 당사자가 하던 걸 비장애인이 맡게 되는 그런 체제가 됐다. (최근엔) 베델에선 다시 한 번 대표를 당사자가 맡으려고 시도하고 있다. 지금은 대표의 절반 정도가 과거 병을 앓은 적 있다. 그게 큰 도전이기도 하다.


- 베델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정신장애’에 대한 생각의 전복, 철학 같다. 하지만 이를 물리적으로 구축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지속가능하게 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문제다. 베델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그전까진 병을 고쳐야 하는 치료의 대상으로 보았다면, 베델에선 병을 한 사람의 인생 문제라고 본다. 하나하나의 병이 지금까지의 인생 궤도, 그 사람의 배경을 다 짊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걸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한 사람, 한 사람 인생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것으로 병을 드러내 왔다는 게 베델이 해온 가장 중요한 시도라고 본다.

정신장애인은 무섭지 않다, 이런 접근은 하고 싶지 않다. 우리도 그냥 보통 사람이고 보통의 일을 하는 사람이다. 미역 봉지를 사 오고, 미역 판매를 하며 지역 사람들과 평상시에 접촉하는 현실이 상당히 중요하다. 거기서 정신장애 같은 건 관계없다. 우리는 생활하는 데 해야 할 일을 하는 거다.
 

- 책 『베델의집 사람들』 중 “베델의 집은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중시하는’ 삶의 방향을 가졌다. 정신장애라는 것은 ‘위로 올라가는 삶’에 대해 저항하는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예민한 센서’"라는 구절이 있다. 분명 베델의 모습은 사회가 요구하는 방식의 '위로 올라가는 삶'은 아니다. 오히려 이를 경계하며 체제 바깥에서 나타난 새로운 삶의 방식이다. 하지만 베델이 추구하는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중시하는 삶'과 베델의 확장 등으로 불가피하게 나타난 '위로 올라가는 삶(처럼 보이는 삶)', 이 둘 사이의 긴장과 충돌은 없나.
 

딜레마, 모순과 함께 살아가는 것에 거꾸로 의의를 느끼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 자체가 이미 모순투성이의 일이며 이 세상엔 부조리가 가득 차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지혜로서 ‘약함의 정보공개’에 따라 항상 타인에게 관심을 기울이며 서로 도와가는 터를 마련하고, 답이 안 보이는 나날 속에서 헤매고 바르작거리고 있다. 그 지혜를 찾아가는 수단으로서 당사자연구가 존재한다.
 

- 베델의 집엔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찾아오나. ‘베델의 집에 살고 싶다’고 찾아오는 정신장애인분들이 1년에 평균 몇 분 정도 계시나.

 
개인적으로 상담하러 오는 사람은 한 해 1000건 정도. 일본 각지에서 견학하러 오는 사람들은 연간 2000명 정도로 여전히 많다. 그러나 제도나 관계 시스템이 많이 변하면서 여러 어려움이 생겼다. 예전엔 희망하는 사람이 있으면 ‘오십시오’ 했고, 그때 실제 많이 왔다. 지금은 복지법 등 여러 제도가 생기면서 베델의 집과 당사자만의 관계가 아니라 그 사람이 속한 지자체와 우라카와의 문제가 되었다. 그 둘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가능한 상태가 되어 버린 거다. 특히 문제 되는 것은 나이 드신 분이나 장애인은 생활보호(한국의 기초수급비)를 받고 있는데, 생활보호는 국가가 100% 지원하는 게 아니라 국가와 지자체가 일정 비율 나눠서 부담한다. 일본의 전반적인 추세를 보면 국가 지원 부분이 계속 줄어들 것으로 본다. 그래서 지자체 입장에선 그런 사람이 늘어나면 재정이 악화되니깐 재정 문제를 생각 안 할 수가 없다.

일본 베델의 집 모습. 판매할 다시마를 작업 중인 사람들 (사진 제공 : 한울주거생활지원센터)


# 일본 정신병원, 빈 병상에 ‘치매 환자’ 장기입원시키는 계획 추진 중

 

- 토론회에서 ‘2004년 일본은 정신보건복지 개혁 비전을 통해 병상 수를 줄여서 지역사회에서 정신장애인도 살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정책을 강구했다’고 하셨다. 이것이 실제 일본사회에선 어떻게, 얼마나 효과를 발휘하고 있나.

 
비전으로 내세웠지만 그건 단순한 비전이지 달성된 건 없다. 60~70년대 일본에서 정신병원이 많이 생겼는데 지금이 마침 재건축 시기다. 재건축으로 새로 생긴 병원은 반짝반짝한 게 마치 호텔처럼 생겼다. 이런 병원이 지금 많이 생기고 있다. 옛날처럼 철창에 갇힌 병원이 아니라, 외관상 보면 ‘이런 데면 나도 입원하고 싶다’하는 병원이 생기는 거다. 결국 10~20년 사이에 일본 정신병원이 재건축되면서, 정신병원 병상 수 줄이고 지역 일체화되는 기회를 놓쳤다. 왜냐하면 병원 재건축하면서 생긴 대출금을 갚아야 하니깐. 그걸 갚을 수 있는 게 병상 수다. 정부는 ‘병상 수 줄이고 지역사회로 나가자’는 슬로건을 걸고 있지만 거짓말이다. 정신의학계뿐만 아니라 의료계, 복지계 전체가 상업화되어 가고 있다.


‘일본 정신병원협회’라는 전국 모임이 있는데 일본 자민당의 큰 자금줄 중 하나다. 일본 정부에서 병상 수 줄이자고 해봤자 여당 돈줄인 정신병원협회에서 이를 뒤집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현재 일본 정신과병원 병상 수 사용률은 낮다. 빈 병상이 늘어나고 있다. 젊은 사람들의 장기입원이 줄어들고, 입원하지 않는 추세다. 10명 중 9명은 입원 기간이 1년 이내다. 나머지 10%가 장기입원이다. 그 사람들이 고령화되면서 그 안에서 죽어가는 사망률이 연간 20%다. 빈 병상이 많아져 경영이 어려우니 정신병원협회가 ‘오렌지 플랜’이라는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치매 환자들을 장기입원시키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비판이 많다. 복지 쪽에서도, 병원 안에서도. 완력이 심해지고 있는데 정계하고도 연계되어 있으니 쉽지 않다.
 

- 일본의 정신장애인 현실도 낙관하기엔 힘든 것 같다. 혹시 베델은 일본사회의 정신장애인 정책에 대해 어떠한 비판적 목소리를 내나.
 

현재 상황을 긍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비판이 남을 ‘비난’하는 악순환과 ‘병원이냐, 지역이냐’하는 불모의 이념 대립에 빠져 있는 것 같다. 베델은 항상 그 양측으로부터 거리를 둬 왔다. 베델이 가장 중요히 여긴 것은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비판적으로 검증하고 그것을 해소하는 수단을 스스로 만들어내어 사회에 그 결과를 제안하는 것이다. 특히 실패의 경험을 솔직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간이 걸리지만 그것이 현실을 변혁해가는 가장 유효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베델의 ‘당사자연구’는 그 속에서 태어났다.
 

- 현재 베델의 집이 당면한 어려움은 무엇인가?


우라카와의 경우, 정신과 병상 수가 제로지만 문제가 없어진 건 아니다. 기존 시스템이 없어져서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데 구축하지 못하고 있다. 이게 우리가 맞이한 가장 큰 어려움이다.

 
- 정신장애인에 대한 사회 구조적 문제들이 변하지 않는다면, 정신장애인이 치료와 입원이 아닌 다른 삶을 살기 위해서 꼭 ‘베델의 집 안으로’ 들어와야만 하는 건가하는 물음이 든다. 일본 내에서 베델과 같은 대안적 삶을 살기 위한 정신장애인 조직의 시도, 노력이 있나.
 

일본,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 정신위생보건의 모토가 ‘회복’이 되고 있다. 단순히 증상의 회복이 아니라, 증상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더라도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거다. 진정한 의미의 회복이라면 당사자만이 아니라 의료종사자, 가족도 같이 회복되어야 한다. 베델의 집이 지금까지 해온 게 베델만의 것이 아니라 세계적 흐름과 상당히 일치하는 게 많은 것 같다. 다른 조직이 있다기보다는 세계적 흐름이 그런 것 같다. 일본 내 최근 5년간 큰 변화가 있다면 배우, 가수 중에서 통합실조증 등 정신적 병을 앓은 사람들이 커밍아웃하고 일반 시민들이 그걸 받아들이게 됐다는 거다. 일본 여러 방송국이 이제껏 베델에 취재하러 왔는데 국영방송인 NHK만이 울타리가 좀 높았다. 그런데 최근 NHK도 베델에 대해 호의적인 접근을 많이 하고 있다. 큰 변화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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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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