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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살인사건이 ‘정신질환자 범죄’라고? 장애인은 화났다
경찰, 정신질환자 판단하는 체크리스트 제작 등 발표
장애계, “정신장애인을 희생양 삼는가” 사과와 입장 철회 촉구
등록일 [ 2016년05월27일 17시41분 ]

기자회견 참가자가 정신질환자 체크리스트 제작 등 경찰 조치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의 손피켓을 들고 있다.
지난 17일 강남역 인근 화장실에서 30대 남성이 20대 여성을 살해한 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정신질환자 범죄’로 모는 것에 장애계가 분노하고 나섰다.
 

사건 발생 뒤 피의자 김아무개 씨는 경찰 조사에서 “여성들에게 무시를 당해 참을 수 없었다”라고 진술했다. 이에 대해 여성들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에 대한 차별, 혐오가 드러난 사건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경찰 조치는 달랐다. 경찰은 피의자의 정신질환 병력을 공개하며 이는 ‘정신질환으로 인한 범죄’라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 이후 조치 역시 ‘사회 안전을 위해 정신질환자를 어떻게 관리할지’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는 지난 23일 강신명 경찰청장의 기자간담회 발언에서 명확히 드러났다. 당시 강 청장은 “한국에 혐오범죄는 없다”면서 예방대책으로 범죄 위험 소지가 있는 정신질환자를 판단하는 체크리스트를 11월 중에 완성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현장 경찰이 요청하면 의학적 판단을 거쳐 지자체장이 입원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며, 당사자가 퇴원을 원해도 병원이 이를 거부하는 조치까지 적극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경찰의 이러한 조치는 지난 1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정신장애인 전부개정안 제44조 시·군·구청장에 의한 입원(아래 행정입원)에 근거한다. 이 조항에 따르면 경찰은 정신질환으로 자·타해 위험이 있다고 의심되는 사람을 발견했을 때 정신과 전문의나 정신건강전문요원에게 신청을 요청할 수 있다. 그러면 전문의 등은 시·군·구청장에게 입원을 신청할 수 있고, 시·군·구청장은 정신장애인을 의사 진단에 따라 입원시킬 수 있다.
 

그러나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들은 정말로 위험한가. ‘그렇다’고 단정하기엔 이제까지의 정부 발표 자료가 이를 반박하고 있다. 2011년 대검찰청 범죄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정신장애인의 범죄율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10%로 매우 낮은 수치다. 복지부 역시 올해 2월 ‘정신질환에 대한 오해와 진실’ 자료에서 “정신질환 중 공격성과 잠재적 범죄를 일반적 증상으로 하는 것은 반사회적 인격장애 한 가지뿐”이라면서 “조현병 환자들은 범죄와 폭력의 위험성이 매우 낮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장애계는 이번 경찰의 조치는 ‘정신장애인을 희생양으로 삼는 것’이라고 분노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를 비롯한 9개 장애계 단체는 27일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강 청장에게 사과와 입장 철회를 촉구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를 비롯한 9개 장애계 단체는 27일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강남역 살인사건을 정신질환자 범죄로 몰아가는 강신명 경찰청장에게 사과와 입장 철회를 촉구했다.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대표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 해소를 담은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주체 중 하나가 국가와 지자체, 정부기관이다.”면서 “그런데 지금 정부기관장이 장애인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강화하고, 이번 사회 문제 책임을 장애인에게 몰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락우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표는 자신 또한 조현병으로 환청, 망상, 환시를 경험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그러나 질환의 특성이 사람의 기본 특성보다 우선하진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인구의 1%가 조현병이 있다고 한다. 강제입원되어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약 45만 명가량이 이웃 주민으로 이 사건과 무관한 삶을 살고 있다”면서 “조현병 당사자가 사건·사고와 밀접하다면 나와 내 동료들은 전과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5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을 범죄자라고 보는 것이야말로 심각한 범죄”라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경찰의 말 한마디로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들이 더욱 배제되고 있다”면서 경찰의 행정입원 강화 계획을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왼쪽) 김락우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표, (오른쪽) 이정하 씨  

경찰에 의해 행정입원을 당했던 당사자의 호소도 이어졌다. 이정하 씨는 2000년부터 총 7번의 강제입원을 당했으며 이 중 한 번은 경찰 요청에 따른 행정입원이었다. 이러한 강제입원에 대한 경험으로 이 씨는 2014년 강제입원 위헌소송 당사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이 씨는 한국사회에서 강제입원, 장기입원이 횡행하는 이유는 정신병원 입원 환자 수가 병원 입장에선 “돈이 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씨는 “1996년엔 병상 수가 2만 6000개가량이었으나 최근엔 9만 병상에 이르렀다. 전 세계적으로 약물 발달로 병상 수가 줄어드는 추세인데 우리나라에서만 늘었다”고 밝혔다.
 

그중에서도 행정입원은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에 비해 자신을 입원시킨 주체가 뚜렷하지 않아 문제제기조차 어렵다고 전했다. 이 씨는 “보호의무자에 의해 강제입원되면 날 입원시켰던 보호자에게 꺼내달라고 압박하면 된다. 그러나 행정입원은 ‘공무원의 페이퍼’여서 사실상 명확한 주체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은 “지난 3월 발표한 여성정책연구 설문에선 한국 남성 54.2%는 김치녀, 된장녀, 김여사 등의 표현에 공감한다고 응답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이것이 여성 혐오 표현이 아니라 정당한 평가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면서 “이번 사건을 여성혐오범죄라고 인정하면 일상적 혐오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이 자신도 그러한 폭력에 공모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기에, 경찰은 이토록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라고 부정하는 것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이 사무국장은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경찰청장이 이러한 사회현장을 동조, 선동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여성을 혐오하고 차별하는 사회에서 발생한 젠더폭력 문제가 분명한데 우발적 범죄라고 명명하면서 사건이 일어난 배경과 환경을 경찰이 왜곡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자회견 뒤 이들은 경찰청 앞에 포스트잇을 붙이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강남역 살인사건 후 시민들이 추모와 애도의 뜻으로 이번 사건에 대한 자신의 목소리를 담은 포스트잇을 강남역 10번 출구에 붙였던 현상을 본뜬 것이다. 
 

“강신명 청장, 그대가 뭔데 정신장애인을 범죄자로 모는가? 아픈 사람을 죽이려 하나?”
“정신장애인에 대한 마녀사냥을 중단하라”
“정신장애인 절대다수가 마음 여린 사람들이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범죄자 취급이냐”
“경찰은 국민인 정신장애인을 보호할 의무가 있습니다”

- 경찰청 앞에 붙은 포스트잇 내용

이후 이들은 경찰청장의 사과와 입장철회 촉구를 담은 항의 공문을 경찰청 측에 전달하며 공식적인 답변을 요청했다. 

경찰이 이번 사건을 정신질환자 범죄로 몰아가는 것에 대해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비판하는 내용의 포스트잇을 경찰청 앞에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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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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