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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 범죄는 없다, 공권력의 ‘가난에 대한 처벌’이 있을 뿐!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감옥복지국가가 도래한다
등록일 [ 2016년06월02일 13시14분 ]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경찰의 대응이 전광석화처럼 이뤄지고 있다. 물론 그것은 피해 여성을 추모하기 위해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 모여든 사람들이 바라는 대책과는 거리가 멀었다. 경찰은 이 사건이 ‘여성혐오 범죄’라는 세간의 지적을 단칼에 거부하고, 가해자의 정신질환병력을 근거로 단순히 ‘정신질환자의 묻지마 살인’이라고 규정지었다. 이에 따른 후속 대책으로 정신질환자에 대한 전수조사, 정신질환자 위험도를 구분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일선에 보급, 그리고 경찰에 의한 정신질환자 행정입원 강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의 이러한 행보가 정신장애인을 희생양 삼아 사회적 불안을 무마하려는 꼼수이며, 궁극적으로는 정신장애인의 인권을 짓밟는 행위라는 지적은 너무나 당연하고 타당하다. 이미 많은 정신장애인 당사자 및 가족, 인권 단체들이 이런 비판을 쏟아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볼 필요가 있다. 경찰이 이처럼 정신장애인을 악마화해서 얻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경찰이 이번 사건을 예측하고 미리 대책을 세웠을리는 없지만, 그간의 신속한 대응의 추이를 볼 때 어떤 뚜렷한 경향성을 발견할 수 있는 듯 하다.

강남역 10번 출구, '여성혐오' 범죄로 인해 살해당한 한 여성을 추모하는 쪽지로 가득하다.
 

불성실하기 짝이 없는 정의, ‘묻지마 범죄’


강남역 사건의 가해자에게 정신질환 병력이 있었다는 것은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했듯이) 단지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확인해 줄 뿐, ‘정신질환에 의한 범죄’라는 인과관계를 규명하지 않는다. 그런데 경찰은 정신질환 병력이 확인되자마자 바로 ‘묻지마 범죄’로 정리해버렸다.


그렇다면 대체 ‘묻지마 범죄’란 무엇인가? 사실 ‘묻지마 범죄’라는 것은 아직 학문적으로도 엄밀한 개념 정리가 되지 않은, 그저 언론이 만들어낸 말일 뿐이다. 형사정책연구원이 2014년에 발표한 「묻지마 범죄자의 특성 이해 및 대응방안 연구」에서도 ‘묻지마’와 ‘범죄’를 직접적으로 연결시킨 표현은 2000년 4월 24일 한국일보의 “‘묻지마 살인’ 광풍”이라는 기사에서 처음 등장하며, 그 이후 지속적으로 사용되다가 대체 용어 없이 지금까지 유지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한편, 대검찰청의 ‘묻지마 범죄’에 대한 정의는 “범죄행위자와 피해자 사이에 명확한 연관성이 존재하지 않는 불특정인을 대상으로 흉기 기타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 저지르는 범죄”다. 형사정책연구원의 연구에서도 비슷하게 “범죄의 동기가 뚜렷하지 않고 불특정인에게 폭력이 행해지는 경우”라고 규정한다. 달리 표현하면 ‘무동기 범죄(motiveless crime)’ 또는 ‘이상동기 범죄’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이는 매우 불성실한 규정일 뿐인데, 왜냐면 흔히 묻지마 범죄로 분류되는 사례와 일반적 범죄의 사례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연대․이윤호는 「묻지마 범죄담론의 사회적 구성과 영향」(한국경찰연구, 2013년 봄)이라는 논문에서 이 점을 잘 지적하고 있다. 일반적 범행동기라고 할 수 있는 금품, 성, 원한, 치정 등의 이유가 아닌 경우에도 모두가 무동기 범죄나 이상동기 범죄로 규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단순 기물파손의 경우 주취자나 청소년에 의해서 특별한 이득이나 원한이 없는 피해물을 대상으로 손괴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지만 이러한 범죄를 모두 묻지마 범죄, 이상동기 범죄로 규정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묻지마 범죄’는 동기보다는 결과의 측면에서 규정되어지기도 한다. 이를테면, 지하철에서 시비가 붙거나 직장 동료 간 다툼으로 인해 발생한 사건에서, 가해자가 칼로 찌른 경우에는 ‘묻지마 범죄’로 분류되는데, 주먹으로 때린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애초에 ‘묻지마 범죄’라는 개념 자체가 동기 유무에 초점이 맞춰져 있던 것인데, 범행의 강도와 결과를 기준으로 분류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결국 ‘묻지마 범죄’ 담론은 객관적인 판단에 근거해 범죄현상을 분석한 개념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조작된 관념’에 불과하다. 이는 “미디어의 작용을 통해 범죄행위와 일탈행위가 만들어지고, 사람들의 도덕적 패닉을 일으킬 수단으로서 ‘공공의 적’이 창출되어 결국 법집행이 강화되는, 즉 ‘도덕이 제조되는 과정’”인 것이다(정연대․이윤호의 논문 인용). 그렇다면 이 담론을 통해 ‘공공의 적’으로 창출되는 집단은 과연 누구인가?


‘묻지마 범죄’ 대책, 누구를 겨냥하는가


앞서 언급한 형사정책연구원의 연구는 대검찰청으로부터 제공받은 2012년도에 발생한 47건의 ‘묻지마 범죄’ 사건 기록을 바탕으로 가해자의 특성을 분석했다. 대검찰청이 47건의 사건을 골라낼 때에는 자신들이 만든 ‘묻지마 범죄’의 정의에 기초했을 뿐, 별도로 가해자의 인구학적 특성을 고려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연구의 분석 결과를 보면 일정한 인구학적 경향성이 드러난다.


우선 가해자의 성별은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남자였고, 고정된 주거가 없는 사람이 20%, 그리고 절반 정도가 동거인 없이 혼자 거주하고 있었다. 또한, 어린 시절 부모의 존재는 자료상 부모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14.6%), 부모가 둘 다 있었던 경우는 45.8%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으며, 어머니 또는 아버지만 있었던 경우가 약 22.8%, 부모가 없었던 경우가 약 16.7%였다. 부모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자료상 알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18.8%), 부모와의 관계가 양호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되는 가해자가 50%를 차지했다. 또한, 가해자의 정신질환 병력 유무를 조사했을 때, 정신질환 진단을 받은 경험이 있는 가해자는 58.3%나 됐고, 과거 혹은 현재에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 가해자는 54.2%를 나타냈다.


가해자의 경제적 수준을 살펴보면, 범행당시 직업이 없던 경우가 전체의 75%를 차지했고, 직업이 있는 경우도 대부분 비정규직 혹은 일용직 종사자들이었다. 월 소득이 전혀 없는 가해자도 73%나 됐고, 소득이 있더라도 모두 100만원 혹은 200만원 미만이었다. 끝으로, 가해자의 혼인 상태는 미혼이 75%였다.


이를 통해 봤을 때, 저들이 말하는 소위 ‘묻지마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은 누구인가? 그것은 통념상 정상적인 가족을 구성하지 못하고 불안정한 주거 환경에서 저소득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이 때문에 정신질환을 앓기도 하는 남성 하층민으로 대략 정리할 수 있다. 하지만 저들은 저소득, 1인 가구, 정신질환자 등이 저지르는 범죄를 특정 분류로 몰아넣고 이에 대해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면 이들의 범죄가 다른 인구 집단의 범죄보다 더 심각하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이미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이들이 일으키는 범죄가 더 심각하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개념 설정이 필요했을 것이다. ‘묻지마 범죄’라는 용어는 그래서 유용하지 않았을까? ‘동기도 없이 우발적으로 불특정 다수를 겨냥해 공격하는 위험한 하층민의 범죄’라는 본연의 의미를 ‘묻지마’라는 말로 포장해 버린 것은 아닐까?


경찰청이 올해 5월 내놓은 「한국의 이상 범죄 유형 및 특성」이라는 보고서에서는 아예 더 나가서 범행동기가 이상한 경우를 ‘해고, 실연, 가정불화, 정신질환’으로 못 박았다. 반면, 범행동기가 원한, 치정, 금품, 성욕 등 “법률상으로나 이론적으로 정립되어 있는 범죄유형”은 이상범죄로 분류하지 않았다. ‘해고, 실연, 가정불화, 정신질환’이라고 자신들 스스로 동기를 밝혀 놓고는 그게 또 왜 이상하다고 하는 것일까?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해고는 계급적 성격이 분명한 것이고, 가정불화․정신질환 역시 당사자의 삶을 둘러싼 안전장치가 부재할 경우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는, 광의의 계급적 성격을 갖는 요소들이다. 경찰은 결국 ‘묻지마 범죄’ 담론을 통해 바로 이 위험에 처한 ‘계급’을 겨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신장애인을 예비범죄자 취급하며 행정입원을 강화하려는 경찰의 조치를 규탄하는 피켓을 들고 있는 사람들.

치안의 이름으로 가난을 처벌하기


따라서 이런 논의와 맥을 같이 하는 강남역 살인 사건에 대한 경찰의 후속 대책은 사실상 치안의 이름을 빌어 ‘가난을 처벌’하는 것이다. 물론 이들의 치안 행위는 ‘행정입원’과 같은 형태로, 세련된 의료적 절차를 거치는 것 같은 외양을 하고 있다. 때문에 정신장애인 강제입원 강화가 의료적 복지 제공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상은 복지를 통한 형벌 절차 수행이나 다름없다. 복지라는 귀찮은 껍데기만 벗어던질 수 있다면, 저들이 진정 하고 싶어 하는 말은 1980년대 미국에서 우파 이데올로그로 활약했던 찰스 머레이의 저 냉소적인 한 마디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사법기관은 누군가가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게 된 원인을 고민하는 데가 아니다.” 혹여 가난한 자의 범죄를 둘러싼 원인을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 그들의 궁핍한 상태가 아니라, 그들의 ‘가난한 도덕심’만이 관심사이리라.


『가난을 엄벌하다』라는 책을 통해 미국의 사회복지가 축소되는 동시에 형벌정책이 강화되는 현상을 분석한 사회학자 로익 바캉은 이런 현상을 일종의 ‘프리즌페어(prison fare)', 즉 감옥복지라고 표현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90년대 후반 이후, 뉴욕의 경찰들은 ’톨레랑스 제로(tolerance zero)'를 표방하며 가난한 유색인종을 겨냥한 불관용 정책을 강화했다. 이에 경찰이 민간 복장으로 복면 패트롤카를 타고 수사를 벌여 2년 동안 길거리에서 복장, 걸음 태도 특히 얼굴색만 보고 검거 또는 체포한 사람만 4만5천여 명에 달했다. 그러나 이 가운데 3만7천여 명이 관련 없다고 판명되었고, 남은 8천여 명 중 절반이 법원에 의해 기소 무효 처리되었으며, 남은 4천 명만이 체포 혐의가 입증되었다. 지금 우리나라 경찰이 위험한 정신장애인을 분류하기 위해 체크리스트를 만들겠다는 둥 하는 소리가 이와 다를 바 무엇인가? 경찰이 직접 사회복지를 대체한 감옥복지를 수행하는 것이라 단정하는 것이 과연 억측에 불과할까?


현재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시민사회 내에서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반드시 공유되어야 할 지점은, 이번 사건을 빌미로 국가가 소수자를 겨냥한 형벌주의를 강화하려 한다는 점이다. 소수자를 향해 총을 겨누고자 고개를 쳐들고 있는 ‘감옥복지국가(prison fare state)’에 맞서 시민사회의 튼튼한 연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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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철 기자 rollingston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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