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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마이크 : HIV감염인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동료 감염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의 지지와 연대를 나눌 수 있길
등록일 [ 2016년06월13일 18시00분 ]

“여보세요, 홈페이지에서 전화번호가 있어서... 혹시 에이즈 관련해서 일하시는 분인가요?” 경찰청에 근무하는 의경이라고 소개한 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감염인 모임에 있는데 어떤 일 때문에 그러시는 거예요?” 그의 목소리에서 다급함과 긴장감이 느껴졌다. 그는 헌혈 과정에서 HIV 양성반응이 나왔고 보건소 직원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처음에 어찌할 바를 몰라 경찰청 내 고충처리반이라는 곳에 전화를 걸어 알렸다고 했는데 ‘아차’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모든 문제가 거기서부터 엉켰을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답답한 듯 한숨과 눈물이 섞인 목소리로 말을 건냈다. 사실 HIV확진이 의심된다는 통보를 받을 때 마음을 다잡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살겠다는 다짐을 하고 청천벽력 같았을 소식을 온전히 견뎌야만 한다. 의경으로 근무하고 있으니 휴가도 자유롭지 않았고, 보건소를 당장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하루에서 몇 번씩 요동쳤을 마음을 진정하기도 바쁜데 전역심사과정을 밟아야 하고, 보건소에 가서 역학조사도 받아야하는 등 모든 상황이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그에게 포기하지 않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에 고맙다고 이야기했다. 힘을 냈으면 좋겠다는 위로가 그의 마음에 와 닿았을지 잘 모르겠다. 그는 어떤 말이 듣고 싶었을까? 마주 앉아 있었다면 펑펑 울기라도 했을까? 차라리 울기라도 했으면 속이라도 편했을까? 정답이 없는 상황에서 답을 찾아야 했던 시간은 답답하게 흘러갔다. 어느 정도 마음이 진정되었을 즈음 “같이 길을 찾아보자”는 말을 건네며 그 날 상담을 마무리했다.


다음 날 연합뉴스를 시작으로 어제 상담했던 의경 관련 기사가 뜨기 시작했다. “서울경찰청 기동단 의경 에이즈 양성반응... 병원 후송” 정말 낯 뜨거운 기사를 마주하려니 당사자의 마음이 어땠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는 나보다 먼저 기사를 본 듯 했다. 기사링크를 보냈고, 부모님이 알아볼까 걱정된다는 말, 어떻게 기사가 나오게 되었는지 도대체 모르겠다고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그의 문자가 실시간으로 도착했다. 별 것도 아닌 사건에 클릭 수만 높이려는 기사 제목도 문제였지만 내무반을 소독하고 함께 생활했던 부대원들을 대상으로 에이즈 검사를 했다는 경찰청의 당당한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어젯밤 나누었던 위로와 격려는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그가 예상한 것처럼 암울한 미래가 바로 찾아와 버린 것이다. “저 어떡하면 좋아요”라는 말 속에 깊은 절망감이 느껴졌다.


“나머지 인생은 보너스”


PL사랑방에서는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마다 HIV확진 받은지 3년 이내의 감염인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오픈마이크’ 행사가 열린다. 답답한 마음을 터놓을 수 있고, 같은 길을 걸어온 감염인으로부터 어디서도 듣지 못하는 삶의 경험을 들을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처음 확진받았을 때의 충격과 방황, 병원에서의 생활, 가족과 친구와의 관계, 직장생활, 동료 감염인을 만났던 이야기, 사랑과 연애에 대한 고민 등 HIV확진 통보를 받은 지 오래된(?) 감염인들이 신규 감염인을 위해 기꺼이 호스트가 되어 자기경험을 털어놓는다. 이미 지나간 시간이고 떠올리기 쉽지 않을 경험도 있을 텐데 신규 감염인이 자기와 같은 경험을 반복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야기모임을 마치고 나면 반찬가게를 운영하면서 시간이 될 때마다 KNP+ 활동에 참여하는 성민이형이 준비한 저녁밥상이 차려진다.


감염인들과 함께 나눈 저녁밥상

5월 모임에도 열 명 정원을 훌쩍 넘긴 숫자가 참여했다. 갓 스물을 넘긴 젊은 친구들도 왔고, 그 친구들이 태어나기 전 89년도에 감염되어 가장 오래된 ‘감자’라고 소개한 형도 있었다. 5월의 주제는 건강이었고 밥상메뉴는 산채비빔밥이었다. 확진이후 삶, 건강을 유지하는 자신만의 비결을 이야기하는 자리였지만 주제와 상관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말, 평소 궁금했던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한 쪽 주방에선 맛있는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2015년 3월이었는데 병원에서 피검사를 하더라고요. 하루 이틀 정도 지나고 나서 놀라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위양성도 나올 수 있다고 해서 대학병원도 가보고 미친 듯이 돌아다녔어요. 어느 날 맞다는 걸 알게 되니까 그 다음부터는 생각이 많아지기 시작했어요.”
“아직도 극복 중이에요. 정신적으로 요즘 더 힘들어요. 많이 움직이려고 하는데 제가 아는 게 별로 없어요.”
“저 스스로도 대견해요. 1년 정도 힘들었어요. 술만 먹으러 다니고, 술 술 술 매일 술 먹고 그렇게 생활했는데 감염되지 않은 친구가 다독여주면서 힘을 낼 수 있었어요”
“저는 HIV확진 이후부터 나머지 인생은 보너스다라고 생각했어요. 이전은 죽은 사람이고 앞으로 열심히 살아보자는 다짐. 하고 싶은 걸 나열하게 되었고, 지금은 하나하나 이루는 과정이 재밌어요” 
“내가 나를 정리할 시점이 되면 똑같아지는 것 같아요. 항상 큰 병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행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질병을 받아들이는 각자의 경험은 모두 달랐다. 여전히 정신적으로 힘들다고 호소하는 분도 있었고, 확진결과를 부정하며 검사를 받고 또 검사를 받았던 사람도 있었다. 자신을 대견하다며 칭찬하거나 보너스 같은 삶을 잘 보내려는 이들까지 다양했다. 이야기를 마치고 나서 열여섯 그릇의 산채비빔밥이 한 상 가득 차려져 있었다. 모두들 함박웃음을 지었다.
 

성소수자 인권을 부정하고 혐오를 선동할 때 빠지지 않는 이슈가 에이즈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돼도 에이즈가 확산되고, 서울시민인권헌장이 선포돼도 에이즈가 확산된다며 말한다.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정부가 침묵하는 사이 보수교계가 주도하는 돈과 언론의 힘으로 비과학적이고, 비상식적인 정보가 ‘진짜’처럼 유포되고 있고 공포는 계속 확산되고 있다. 한국은 HIV유병율이 낮은 국가에 속한다. 약 만 명 정도 되는 감염인이 우리와 더불어 살아간다. 하지만 최근 3년 동안 신규감염인 수는 매년 천 명을 넘었고 연령대도 20대가 가장 많다. 정부관계자도, 감염내과 교수들도, 인권활동가들도 감염인이 늘어나는 이유에 대한 원인을 분석하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지만 앞으로 이 같은 추세는 계속될 전망이다. 최근에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혐오선동이 성소수자 건강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두고 봤을 때 성소수자 혐오와 감염인 수의 증가를 별개로 생각할 수는 없다.


신규 감염인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지만 우리 사회는 늘어나는 감염인 수에만 관심이 있지 HIV확진이후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설명해 주지 않는다. 타인에게 질병을 전파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보건소 직원의 당부가 감염인이라는 사회적 위치를 다시 확인시켜줄 뿐이다. 확진통보보다 더 무서운 것이 홀로 남겨질 것 같은 외로움이라고 말한다.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찾기란 더더욱 어렵다. PL사랑방이 시작한 신규감염인들의 오픈마이크는 더 확대되어야 한다. 동료감염인의 경험을 들을 수 있고, 지지와 연대를 보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어야 굳건히 서 있을 수 있는 힘도 생기는 것이다.


현재 병원에 입원해있는 의경은 전역심사과정에 있다. 매일 같이 자신의 안부를 전하고 궁금한 점을 물었던 그의 문자가 뜸해졌다. 요동쳤던 마음이 이제 잠잠해졌나보다. 전역 이후 오픈마이크 행사에 한 번 참여해보자는 제안을 할 예정이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저녁식사를 함께 나누면서 꼭 어두운 미래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늘 건강해야 한다.
 

 정욜의 헬로! 레드리본
10년 넘게 HIV/AIDS감염인과 함께 인권에 관해 이야기해왔다. 지금은 감염인 인권운동의 자력화를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에이즈 인권운동을 하며 '더러운 좌파'라는 낙인도 찍혔지만 감염인들은 내 삶에 든든한 힘이 되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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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욜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KNP+ 간사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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