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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 100년] 참혹한 과거를 지우니 ‘아름다운 자연’만 남았네
[사진] 열려있으면서 닫혀 있는 장소, 소록도
등록일 [ 2016년06월24일 18시31분 ]
올해는 국립소록도병원이 개원한 지 100년. 소록도는 섬 전체가 병원이다. 전국 각지에서 끌려 들어온 한센인들이 과거 최대 6000명 넘게 수용되어 있었다. 이곳에서 결혼하기 위해선 단종·낙태를 해야 했다. 내부 규율이 그랬다.

100년의 시간 동안 섬에도 많은 변화가 일었다. 소록도는 물리적 공간의 의미보다, 시간과 역사가 배어 있는 장소의 의미가 크다. 그러나 시간성은 잘려나가고 선택된 역사만이 물리적 공간 안에 배치됐다. 참혹한 과거를 지우니 치유와 봉사의 역사, 아름다운 자연만 남았다. 고흥군은 소록도를 ‘깨끗한 자연환경과 해안 절경, 역사적 기념물이 있는 명소’라고 소개한다. 작은 섬은 평화롭다.

소록도는 열려있으면서 닫혀있다. 2009년엔 소록도와 육지를 잇는 소록대교가 개통했다. 그러나 섬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머물 수 있다. 일반 시민이 들어갈 수 있는 지역은 매우 제한적이다. 소록도 주민들은 일반 시민들이 있는 곳엔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그들은 ‘출입금지’ 그 너머에 살고, 그렇게 살아가다 죽으면 화장장에 1년, 만령당(소록도 내에 있는 납골당)에 10년 머물다가 소록도에 단 하나 있는 봉분에 흩뿌려진다. 한센인의 역사는 그렇게 소멸되고 있다.

5년 전, 한센인들은 해방 후 국가가 자행한 단종·낙태에 대해 국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20일엔 소록도 현장에서 특별재판과 현장검증이 이뤄졌다. 사법부는 1시간 동안 다섯 곳의 현장을 둘러봤다. 그 장소에 깃들어있는 울음소리를 듣기엔 턱없이 짧은 시간이었다.

고통이 터지는 데는 한평생이 걸렸다. 가장 발음하기 힘든 기억을 스스로 꺼내야 했다. 기필코 자기 육성으로 말해야 했다. 고통이 응고된 땅에 삶이 먼저 누웠다. 그러나 아직, 살아남은 이들이 있다.

소록도 전경. 외지인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섬에 머물 수 있다.
소록도 입구에서 중앙공원으로 가는 길. 소록도에 온 사람들을 위한 보행자 도로가 2000년대에 들어 깔렸다.
애한의 추모비. 1945년 해방되면서 자치권을 요구했던 원생 84명이 죽창과 총으로 학살당한 현장을 기리기 위한 추모비. 2002년 세워졌다.
시신해부가 이뤄졌던 검시실. 소록도 주민에 의하면 1990년대 초까지 해부실로 사용됐다. 1996년까지는 이곳 선반에 낙태한 태아 표본을 포르말린액 속에 담은 유리병이 있었다.
감금실. 소록도 내에 유일하게 ‘담장이 있는’ 건물이다. 혹독한 강제노동을 견딜 수 없어 도망쳤던 이들이 강제수용됐다.
감금실. 바깥 풍경은 철창으로 분할되어 있다.
감금실 내부
감금실 방. 시멘트벽이 많이 허물어져 있다.
감금실 방 내부에 변기 하나가 덩그러니 있다.
감금실 방문 자물쇠는 안이 아닌 바깥에 설치되어 있다.
섬 너머 소록도와 육지를 잇는 소록대교가 보인다. 소록대교는 2009년 개통됐다. 이를 통해 육지에 있는 사람들은 전보다 자유로이 소록도를 오갈 수 있게 됐다. 소록도에 사는 이들의 삶도 그만큼 자유로워졌을까.
소록도 주민이 전동스쿠터를 타고 해안가를 산책하고 있다. 소록도 주민 대부분은 70~80대의 고령이다.
소록도 중앙병원에 있는 구라탑(나병을 구원하는 탑). ‘한센병은 낫는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천사가 악마를 제압하는 형상을 띠고 있다.
과거 소록도 벽돌공장 터에 있는 십자고상. 일제강점기 때 소록도병원 4대 원장 수호는 수용자들을 대폭 늘리기 위한 수용 공간을 만들기 위해 벽돌제조 공장을 세웠다. 당시 중일전쟁과 시기가 겹치면서 병원 재정의 상당 부분이 전쟁 비용으로 들어갔고, 강제노동은 더욱 혹독해졌다. 이를 기리기 위해 이후 벽돌공장 터엔 십자고상이 세워졌다.
한센인 유해를 나무 상자에 담아 보관하는 만령당(일명 납골당). 1937년 일제 강점기 때 세워진 만령당은 정동 쪽(일본)을 향해 있다.
지난 20일, 소록도에서 특별재판이 있었다. 현장검증 시간에 국립소록도병원의 전신 자혜의원 앞에서 소록도 주민 이남철 씨가 검사와 변호사에게 자혜의원의 역사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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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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