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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산을 둘러싼 국가와 여성의 역동 : 시기별 변화의 양상과 시사점
[성과 재생산 포럼] ①
등록일 [ 2016년07월18일 20시58분 ]
[편집자 주] 2015년에는 ‘장애/여성 재생산권 새로운 패러다임 만들기 기획단’이라는 이름으로, 올해는 ‘성과 재생산 포럼’(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건강과 대안 젠더건강팀, 장애여성공감,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및 연구자 등으로 구성)이라는 이름으로 모였습니다. ‘장애와 젠더’의 경험과 관점을 가지고, 성과 재생산 정치에 개입하고 담론과 실천을 만들어나가고자 합니다. 장애와 젠더의 관점은 성과 재생산권리의 사각지대를 비추는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국가와 인구, 인권, 생명 문제에 보다 근본적으로 접근하는 통로가 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이번 연재는 총 8회에 걸쳐 진행됩니다.

 

한국에서 출산정책은 언제나 국가 발전을 위한 통제와 관리의 영역으로 다루어져 왔다. 이에 따라 가족계획 시대에는 조국 근대화를 위해, 저출산 위기 대응 정책의 시대에는 저출산·고령화 시대의 사회적 비용 증가에 대비하기 위해 여성들에게 출산 조절의 책임이 부여되었다. 한편 정부 차원의 인구 관리 정책 방향이 가족계획 정책에서 저출산 위기 대응 정책으로 전환되면서 여성운동과 학계에서는 그간의 정책들이 여성과 여성의 몸을 도구적으로만 대해왔음을 비판하고 여성주의적 입장으로 재설정하기 위한 연구와 활동들을 진행해 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간의 의미 있는 논의들 가운데서도 출산, 양육, 모성, 가족 차원에서 벗어나 여성의 성적 권리와 섹슈얼리티 측면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방향을 제시한 글은 그다지 많지 않다. 또한, 그간의 정책과 연구, 운동은 대체로 시스젠더(Cisgender, 신체적 성과 사회적 성이 일치하는 사람. 트랜스젠더의 반대말) 이성애 비장애인 가족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특히 출산-양육 정책의 중심 대상이 되는 여성은 2, 30대의 비장애인 중산층 여성이었다는 점에서 이러한 점들이 그간의 정책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그로 인해 여성에게 부여된 책임과 섹슈얼리티 통제에는 어떻게 작용했는지 등이 앞으로 보다 면밀히 검토될 필요가 있다. 또한 기술과 자본이 점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의 몸은 현재 어떤 위치와 관계에 놓여있는지, 그 과정에서 국가 발전을 위해 여성의 몸을 ‘도구화’, ‘사사화’ 했던 역사는 기술과 자본의 개입을 통해 이를 어떻게 다시 강화 또는 재편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분석해 보아야 한다.

이 글은 앞으로 이와 같은 방향의 연구와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기를 바라며 그 단초를 잡아보는 정도의 수준에서 작성되었다.
 

- 시기별 인구 정책의 변화와 여성

1) 해방 이후 1950년대
 

해방 이후 1950년대까지는 전통적인 가족 구조가 잔존하면서 다산, 특히 아들 출산에 대한 요구가 강하게 유지되는 한편, 전쟁 이후 가난과 가족 부양의 극심한 부담 속에서 출산조절을 간절히 원했던 여성들의 자가 출산조절 시도가 이루어졌던 시기로 볼 수 있다. 특히 아들 출산에 대한 압박은 국가 차원에서는 전쟁 이후 소실된 노동력 회복을 위한 요구로, 가족 내에서는 대를 잇기 위한 요구로, 여성들에게는 ‘며느리’로서의 자기 증명과 가족 내에서의 안정적 지위 확보를 위한 요구로 강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정부 역시 인구가 많아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통일 후 총선에 대비하려면 인구가 많아야 한다는 논리로 출산조절 보급에 반대하였으며, 1952년 5월 8일 대한부인회 주최 제1회 어머니날 행사에서는 자식을 많이 출산한 어머니에게 표창하였다.

그러나 여성들은 이와 같은 전통적 가족 역할에서의 요구나 국가의 요구와는 별개로 당장 생계가 시급한 상황에서 가족 부양과 가사, 양육 노동을 모두 책임져야 하는 부담을 크게 느끼고 있었으며 대도시를 중심으로 인공유산 시술이 상당히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기도 했다. 피임에 대한 금지와 낙인은 안전이 보장되지도 않은 인공유산 시술을 감당하게 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이었다. 대부분 피임기구는 불법 밀수품이었고, 주로 미군을 통해 전해진 콘돔과 발포성 살정제, 부작용이 큰 자궁내막약도포법 등이 피임법으로 사용되기도 했으나 주로 성병 예방으로 인식되었고 비도덕적인 일로 여겨졌다. 여성이 출산을 기피한다는 것은 ‘건전한 전통과 겨레의 혈통을 위협하는 일’, 민족의 쇠퇴를 가져올 것. 미군 상대 성매매나 불륜과 같은 타락한 성윤리와 연관된 것으로 인식되었다.
 

2) 1960년대~1980년대

그러다 1960년대가 되면 산아제한과 가족계획 정책이 본격화되기 시작한다. 이 시기는 ‘근대화’라는 목표 아래 본격적으로 국민의 삶을 통제하고, 우생학적 인구관리를 시도하였으며, 특히 의/식/주를 포괄하는 생활태도 전반에서부터 가족계획 정책을 통한 생식과 몸에 대한 개입까지 전개되었던 시기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가족계획’이라는 용어가 지니는 효과이다. 이 용어는 쿠데타 1년 전 대한어머니회 고황경 회장의 기고문에서 제안되었는데 ‘산아제한’ 대신 ‘가족계획’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여러 가지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가족계획 사업용 특수이동 시술 차량. 보건사회부는 1972년 3월 24일 USAID(미국국제개발처)로부터 가족계획 사업용 특수이동 시술 차량 13대를 인수했다. 차량 겉면에 “딸·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서울특별시 (사진 출처 : 서울사진아카이브)
우선, 출산에 대한 국가 차원의 관리와 통제를 가리고, 그 책임을 개인과 개별 가족의 차원으로 이전시킨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가족계획 정책은 국가적 차원의 프로젝트이지만, 실천은 개인의 몫이 된다. 나아가 가족의 빈곤에 대한 책임 또한 가족계획을 제대로 실천하지 않은 개별 가족의 몫이 되었다. 반면 국가가 제시한 자녀 수의 모델에 맞으면 소득세를 감면받고, 공공 주택을 얻을 수 있었으며, 불임수술을 할 경우 금융 대출에서 우선순위를 받거나 여러 금전적 혜택까지 받을 수 있었다. “우리집 부강은 가족계획으로부터”, “덮어 높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같은 표어들은 가족계획 정책이 의도했던 이와 같은 효과를 잘 드러내고 있다. 또한, 1950년대 후반 여성들이 많은 수의 자녀로 인한 경제적 부담과 양육 부담으로 힘겨워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한편으로 ‘가족계획’ 정책은 여성들에게 더 이상 ‘대를 이어야 할 며느리’의 책임감으로, 또는 가족 내에서의 안정적인 지위 확보를 위해 아이를 낳지 않아도 되는 명분을 마련해 주었다고도 볼 수 있다. 동시에 이는 여성들에게 새로운 과제를 제시한다. 이제 많이 낳는 대신, ‘적게 낳아서 잘 기르는’ 것이 중요한 역할로 부여되는 것이다. 

한편 가족계획은 새로운 주체화 방식과도 연결된다. 가족계획은 무질서와 나태로 상징되는 구태의 생활 태도를 계획적이고 근면한 ‘근대적’ 생활태도로 전환한다는 ‘재건국민운동’의 목표 중 하나로 포함되었으며, 재건체조, 신생활복 보급, 식생활 개선운동, 국민가요 제정, 가정의례준칙 등 생활양식 전반에 대한 개입과 함께 개인의 성생활에까지 국가가 개입하고 통제할 수 있는 명분을 마련해 주었다. 또한 이로써 개인들은 단지 조국 근대화에 복무하는 주체로서만이 아니라 스스로 ‘전통’의 구속에서 벗어나 근대적인 주체가 되는 자기 명분을 마련하기도 했다. 한편 여성들에게 이는 서구적 모델의 가정주부와 같이 위생과 건강관리, 근검절약으로 합리적인 가정 경제를 꾸리는 등 가정생활을 근대화하는 주체로서의 ‘새로운 현모양처형’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나타났다. 나아가 1963년 이후에는 ‘행복한 가정’이 가족계획 홍보의 전면에 등장하면서 핵가족 단위로 적은 수의 자녀를 낳아 잘 기르고, 자기 생활 정도는 스스로 책임지면서 남편 내조도 잘하는 근대적 주부로서의 역할이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여성의 이상적인 모델이자 책무로 여겨지게 되었다.

이는 동시에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적게 낳아 잘 기르는 어머니’와 ‘합리적인 주부’ 역할에 맞추어 관리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1966년의 “세 살 터울 셋만 낳고 35세 단산하자”라는 표어가 상징적으로 보여주듯, 여성의 몸은 인구 통제를 위한 관리 대상으로만 여겨졌을 뿐 여성의 건강이나 성적 권리, 섹슈얼리티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심지어 1975년 대한가족협회에서 발표된 한 연구는 “둘 낳기의 강조와 아울러 단산연령을 낮추도록 계몽하는 한편 일정연령 예컨대 ‘30이 넘어서 배가 부르면 꼴불견’이라든가 하는 식으로 사회인식을 바꾸어 주는 일도 매우 효율적이다”라고 제안하고 있다.

우생학적 주장과 시도도 꾸준히 이어졌다. 1960년 6월 23일 자 조선일보에는 연세대 의대 교수 황영남의 기고문이 게재되었는데 그는 이 기고에서 모체의 보호, 불구아의 계속 분만, 부모에게 유전병이 있는 경우, 생활난 등 4가지를 산아제한의 필요성으로 제시하였다. 또한 1963년 ‘내각수반지시각서 제18호’에서는 법무부에 ‘우생보호법’ 제정의 필요성을 검토하게 하기도 했다. 나아가 1973년 비상국무회의를 통해 제정된 ‘모자보건법’은 제한적이나마 인공유산을 합법화한 조치로서 그중 14조의 1항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우생학적(優生學的)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2항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는 명확히 우생학적 입장을 담고 있다. 특히 1항에 대해서는 다른 항의 요건과는 달리, 배우자의 사망·실종·행방불명, 그 밖에 부득이한 사유로 동의를 받을 수 없을 경우 본인의 동의만으로 할 수 있고, 본인이나 배우자가 심신장애로 의사표시를 할 수 없을 때는 그 친권자나 후견인의 동의로, 친권자나 후견인이 없을 때는 부양의무자의 동의로 각각 그 동의를 갈음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어 우생학적 요건을 가장 강력하게 통제하려 했음을 알 수 있다.

가족계획 사업용 특수이동 시술차량 내부 모습 ⓒ서울특별시 (사진 출처 : 서울사진아카이브)
3) 1990년대~현재


저출산 문제가 본격적으로 공론화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였다. 1986년에 이미 합계 출산율은 1.58로 떨어졌지만 산아제한 정책을 폐기하면 기껏 낮춘 출산율이 다시 반등할까 봐 정부는 산아제한 정책을 유지했다. 2005년 대통령 주재로 저출산 대책 마련을 위한 회의를 할 때까지도 장관들은 ‘돈만 많이 들고 출산율은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로 반대를 심하게 했다고 한다. 그런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런 시점에 중요한 발언을 한다. “출산율 수치에 연연하지 말자. 결혼을 안 하고 애를 안 낳는 건 인간 기본권 문제인데 그 원인을 치료해 줘야지 결과만 보면 안 된다”고 한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 발언은 저출산 정책에 본격적인 시동을 거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저출산, 특히 ‘결혼을 안 하고, 애를 안 낳는 것’을 ‘인권문제’로 설정함으로써 저출산 정책이 의도하고 있는 인구관리의 본질을 가리고 결혼과 출산 중심의 ‘지원 정책’으로 인식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평가해야 할 지점이 있다.

저출산→고령사회→생산인구 감소→노동생산성 저하→경제성장 둔화→사회보장 지출 증가→국가재정 파탄→젊은 세대의 부양부담 증가→세대 간 갈등 심화→사회 갈등의 격화로 연결되는 이른바 ‘저출산 시나리오’는 마치 괴담처럼 위기 시나리오로 반복되며 주로 그 책임과 정책 초점을 다시 여성들에게 맞추었다. 2005년 10월 26일 진행되었던 한국여성단체협의회의 제41회 전국여성대회 풍경은 정책 초기의 이와 같은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영부인과 여성부 장관, 통일부 장관 등이 참석했던 이 자리에서는 ‘저출산 위기극복 결의문’을 낭독하면서 저출산은 ‘퇴폐적 상황’이라고 진단하고 “결혼은 선택이 될 수 없고, 출산은 여성의 창조적 의무”라고 구호를 외쳤다.  

한편, 저출산 정책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저출산을 매개로 의료, 기술 개입과 이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 왔다는 것이다. 산전검사와 난임지원이 대표적이다. 이는 1차에서 3차로 갈수록 더욱 두드러지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여성의 몸을 미래 노동력 생산을 위한 도구로 대하고 있는 출산 정책의 기조 하에서 이를 매개로 한 기술개입 및 이에 대한 지원 확대는 여성의 몸에 대한 기술 개입을 정당화하고 그 선택의 책임을 다시 여성에게 돌릴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현재의 흐름과 영향을 반드시 추적할 필요가 있다. 

일례로, 2016년 1월 16일 자 중앙일보 기사에서는 “난임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서울 강남차병원에서는 산모 다태아 출산율이 90%에 달한다”고 언급하며, “산모의 고령화와 그에 따른 난임 증가는 난임치료를 통한 다태아 출산 증가로 이어지고, 다태아 출산은 미숙아의 증가로 연결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제시한다. 그러나 산전검사는 지원하지만 출산 이후의 지원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정부의 태도는 결국 선천적 이상이 확인될 경우 중절하게 되는 방향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결국 다시 여성의 몫으로 남는다. 특히, 장애나 질병이 있거나 연령이 높은 소위 ‘고위험군 산모’들에 대해서는 ‘검사’와 ‘예방’만을 강조함으로써 개인의 책임에 대한 부담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특히 장애 여성의 경우 실제 필요한 것은 장애 유형에 따른 정확한 의료 정보, 의료 기관에의 접근성, 의료진의 노력, 의료 환경의 개선, 체계적인 양육·돌봄 지원 등임에도 이와 같은 내용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단지 검사나 출산 비용 지원에만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실제로 정책 초점이 여전히 인구 질의 통제에만 맞추어져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 선택의 수사, 지원의 딜레마

저출산 정책 시대의 여성은 언제든지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는 노동력이자 동시에 양질의 노동력을 재생산할 정책 대상으로 놓인다. 그리고 이에 대한 의도는 ‘일·가정 양립’, ‘모성보호’ 지원과 각종 보상, 수당, 비용, 기술 지원으로 대표되는 각종 계획을 통해 ‘지원 정책’의 외피를 쓴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여성들에게 ‘다양한 지원과 기술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출산하지 않는 것’ 또는 ‘질병이나 장애의 가능성을 미리 없애지 않는 것’에 대한 선택의 압박과 책임으로 돌아온다.  
 
1차에서 3차까지의 저출산 정책 흐름을 분석해 보면 결국 저출산 정책이 표면적으로는 복지, 지원 정책의 특징을 띄고 있지만 구조적인 개선을 위한 노력은 매우 빈약하며 사실상 내용상으로는 출산 정책을 통해 시장과 기술개입을 매개하는 방식이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특히 ‘일자리 유연화’+‘난임 및 고위험군 출산에 대한 의료/기술적 지원 확대’+‘민간 서비스 중심의 보육 지원’이 불러오는 시너지는 실제로 여성들에게 미치는 부담과 영향이 매우 크며, 질병과 장애에 대한 편견을 강화할 가능성도 크다. 심지어 ‘브릿지 플랜’에서는 취업 시기를 앞당기게 할 계획을 반영함으로써 기대 노동력의 구분 의도를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는 저출산 정책을 통한 인구 관리를 위한 시도가 출산과 양육, 보호에서 더 나아가 노동 인력에 대한 구분까지 계획으로 포괄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다양한 여성들이 처한 정보, 의료 접근권의 차이나 가족 관계의 변화, 섹슈얼리티의 문제를 고려하지 않은 채, ‘건강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 아래 결혼과 출산 중심의 정책을 강화하고 의료적 지원과 기술 개입만을 확장해 가는 것은, 인권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매우 부정의한 방향이다. 또한 이는 상대적으로 정보와 자원에 대한 접근이 용이하고 이른바 ‘정상가족’을 구성해 적절한 출산과 양육을 책임질 수 있는 수준의 비장애인, 이성애자 여성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여성 내부의 차이를 심화시키는 영향을 가져오기도 할 것이다. 질병이나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현재의 지원은 매우 협소한 영역에 불과하다. 출산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사회가 별로 책임지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부모의 삶이 보장되지 않으면 포기하거나 혼자 감당할 수밖에 없다. 정부 홍보물에서는 ‘저출산·고령사회가 미래 세대의 짐’이 될 것이라 이야기하지만, 사실 출산은 부차적인 문제일 수 있다. 오히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의 삶이 스스로의 삶을 충분히 보장할 수 있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호 돌봄이 이루어지는 상황을 이 사회가 어떻게 만들 것이냐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그러나 가족계획에서부터 저출산 정책에 이르기까지 정부 정책과 의료·기술에 대한 선택의 수사는 여성을 통해 인구 통제를 실현해 온 과정의 본질을 가리고, 여성의 자율성과 섹슈얼리티 보다는 모성에 대한 보호나 지원을 중심으로 고민하게 만들었다. 또한 실질적으로 필요한 사회경제적 구조의 개혁 대신 출산·양육에 대한 개별 지원에 초점을 맞추면서 재생산 정의의 실현을 가로막아 왔다. 앞으로 지금까지의 대응 방향이 가져왔던 한계를 보다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다양한 교차 지점들을 함께 보며, 인구 관리에 종속되지 않는 실질적인 재생산 정의의 움직임을 만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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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적녹보라 의제행동센터장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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