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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도 ‘삶의 고생’, 그 고생과 함께 사는 법
[마이너의 서재] 『베델의 집 렛츠! 당사자 연구』
등록일 [ 2016년07월22일 11시20분 ]

미야니시 가츠코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내내 왕따를 당했다. 15살 무렵부턴 환각, 환청, 망상 등 조현병 증상이 나타났다.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결국, 통학 전철을 타지 못해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힘겹게 대학 검정고시에 합격한 뒤엔 미술전문대학에 진학했다. 그러나 자취생활을 하면서 더는 밥도, 약도 먹지 않게 되었고, 또다시 은둔에 들어갔다. 그녀에겐 신문, TV에서 사건이 보도될 때마다 “네가 잘못 한 거야”라는 환청이 들렸다. ‘세상 모든 범죄가 내 탓’이라는 피해망상 스위치가 켜지면 견딜 수 없어졌다. 스스로 재판을 열어 자해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처벌했다.
 

그러다 자살 미수에 이르러 병원에 실려 가게 될 때면 부모님이 찾아왔다. 그녀에게 자살미수는 “부모님을 오게 하기 위한 폭발”이었다. 부모님께 차마 자신의 입으로 ‘외로우니 와달라’고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강남역 살인사건을 기점으로 근래 정신장애인(정신질환자)의 사건 소식이 뉴스 지면을 채운다. 사람들은 정신장애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느낀다. 아마 정신장애를 이성의 범위에서 제어되지 않는 돌발적 행위의 ‘원인’으로만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혹시 증상을 한 사람의 삶의 맥락에서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을까. 정신장애의 발현도, 정신장애로 인해 드러나는 증상의 패턴도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궤적에서 비롯됐다고 말이다. 너무 이상적일지도 모를 이 이야기가 실현되는 곳이 있다. 바로 정신장애인 공동체 일본 ‘베델의 집’이다.
 

베델의 집은 일본 홋카이도의 작은 어촌마을인 우라카와에 있다. 1978년 정신장애인 회복자 클럽 도토리회가 베델의 집 전신이다. 현재는 150여 명 되는 이들이 다시마 가공·판매 등을 비롯한 다양한 사업을 하며 지역에서 살아간다. 이곳 사람들은 세끼 밥보다 회의를 중요시한다. 회의에선 자신의 상태를 공유한다. 사람들은 그날 상태에 따라 일할 수 있는 만큼만 일한다. 하다가 힘들면 멈춰도 된다. 무리해서 일하면 재발한다. 이곳에서 약함은 감춰야 할 것이 아니라 드러내야 하는 것이다. 베델의 집에선 이를 ‘약함의 정보공개’라고 한다.
 

베델의 집 ‘당사자 연구’는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자기 삶을 온전히 살아온 것은 그 자신이기에, 자기 삶의 전문가는 의사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다. 당사자는 더는 치료의 대상인 ‘환자’가 아니라 자기 병에 대한 ‘전문가’가 된다. 의사에게 위탁했던 자기 삶의 주권을 되찾아오는 것이다. 그렇게 언어를 사용하는 ‘주체’가 달라졌으니 이곳에서 모든 언어는 달리 쓰일 수밖에 없다. 이는 ‘정신장애인’이라는 집단 군락으로 불렸던 이들이 자기 존재를 스스로 재정의하는 것이다. 당사자를 ‘대상화’했던 언어들은 이곳에서 바깥으로 밀려난다. 
 
『베델의 집 렛츠! 당사자 연구』, EM커뮤니티, 베델 행복연구소 펴냄
당사자 연구에선 정신장애로 인해 당사자가 겪는 경험을 ‘고생’이라고 표현한다. 정신장애인은 ‘문제를 가진’ 사람이 아니다. 삶을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겪는 그런 ‘고생을 하는 사람’이다. 정체불명의 목소리인 환청도 ‘환청 씨’라고 부른다. 이들에게 환청 씨는 무시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엄연히 존재하는 인격이다. 이들에겐 불안이나 걱정, 혹은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도 불쑥불쑥 찾아온다. 이를 ‘손님’이라고 부른다. 그것이 ‘나쁜 손님’이든, ‘좋은 손님’이든, 손님은 환대하며 그 시간 동안엔 같이 잘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손님들은 때가 되면 떠난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증상에 대한 병명을 스스로 짓는 것이다. ‘조현병 자폭형 자기 심판 타입’, 미야니시 씨가 지은 자신의 병명이다.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그것의 주인 됨을 의미한다. 
 

당사자 연구는 동료와 지원자의 협조를 받으며 진행된다. 당사자 연구에선 증상이 발현되는 패턴의 반복을 발견하여 도식화한다. 역할극을 할 수도 있다. 이렇게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되면 ‘문제’의 의미와 가능성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약물 복용 중단도 사실 자신을 지키는 하나의 선택이었음을, 자해가 가족과 소통하는 유일한 방법이었음을 발견한다. ‘부정적으로’ 평가받아온 행위도 내가 나를 돕는 방법의 하나였음을 깨닫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 이면의 무언가와 만나는 것, 그 고통으로 함께 내려가 공유하고 그것을 도울 방법을 동료들과 함께 찾아 나가는 것, 그것이 당사자 연구다.
 

그렇게 ‘폭발’로 ‘자신을 돕고 있었다’는 것과 동시에 ‘그로 인한 부작용’도 수면 위로 띄워서 함께 바라볼 때, 지금까지와는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내가 나를 이해하고 수용하면 체기가 가라앉고 그 전과 다른 길들이 열리는 것처럼. 환청을 없애기 위해 나는 이제까지 이러한 방법을 택해왔는데, 다른 방법은 없는가? 동료들에게 아이디어를 구할 수도 있다. 익숙한 선택 말고 조금 다른 선택을 하기 위해선 수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당사자 연구모임은 그 연습을 위한 장이다.
 

그러나 문제 해결을 목표로 하진 않는다. 어차피 금방 될 일이 아니었다. 베델의 집 사람들은 “연구하면 된다”고 말한다. 베델의 집 언어로 번역하자면 ‘고생을 보류’하는 거다. 여전히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지만, 대신 그 고통과 함께 살아갈 힘을 기른다. 현재의 고생을 견딜 수 있는 힘, 그것은 이 고통에 공감하고 같이 고민해주는 이들과의 만남에서 비롯된다. 내 고통을 아는 이를 만나면 우린 조금 덜 외로워진다. 그리고 그가 나를 돕듯, 나 또한 그를 도울 수 있다. 이곳에선 많은 고생을 하게 만드는 그 ‘약함’이 힘이 된다. 나를 구하고, 내 벗을 구할 수 있는 힘.
 

“갈등이 발생하고 당사자 주변에 여러 곤란한 일들이 쌓여 가면, 어느새 ‘사람’과 ‘문제’가 하나가 되어 사람을 ‘문제 취급’하게 되고, 스스로도 자기 자신을 문제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사람과 문제의 분리’가 중요합니다.” (23쪽)
 

고생을 겪는 사람을 문제 자체로 놓을 때, 우리는 그 사람 자체를 치워버리려 한다. 그러나 베델의 집에선 "어떤 경우라도 사람이 아니라 문제가 문제인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가 연구의 시작점이다. 그런데 이는 인간 사회 보편에 해당하는 말이 아닌가. 베델의 집 당사자 연구가 담고 있는 고민과 가치가 인간과 사회 보편에 대한 통찰과 맞닿는 지점이다.
 

숭고해 보이기만 하는 이 가치는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까. 일본 우라카와의 베델의 집에선 날마다 이러한 시행착오가 되풀이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한울지역정신건강센터, 청주정신건강센터에서 ‘당사자 연구’가 진행 중이다. 이제까지 일본 베델의 집을 소개한 책은 몇 권 번역됐으나 당사자 연구만을 다룬 책은 한국에 소개되지 않았다. 그래서 올해 4월 베델의 집 ‘당사자 연구’에 대한 자세한 방법론을 담은 책 『베델의 집 렛츠! 당사자 연구』(EM커뮤니티, 베델 행복연구소, 이진의 옮김)의 발간은 기쁘다.
 

누구나 지향하는 삶의 모습이 있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의 차이는 언제나 크다. 그래서 좌절한다. 자책은 덤이다. 이렇게 찾아온 ‘손님’을 나는, 우리는 어떻게 환대할 수 있을까. ‘고생을 보류’하며, 나에게도 조금 덜 외롭게 이 고생과 함께 살아갈 힘이 필요하다. 책 『베델의 집 렛츠! 당사자 연구』는 그런 모두에게 손을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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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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