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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내 사랑은 안 되는 거죠?
HIV/AIDS감염인과 함께한 연애토크
등록일 [ 2016년07월30일 20시31분 ]

다큐멘터리 「종로의 기적」에서, 나는 HIV감염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랑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으로 종종 묘사되었다. 관객들과 술 한 잔 할 때도 ‘대단하다’는 말을 들었고, 페이스북으로 ‘고맙다’는 쪽지도 받거나 자기도 감염인 애인과 살고 있음을 고백하며 주의해야 할 사항이 없는지 묻는 문의도 있었다. 사랑에 목말라하는 감염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감염인임을 고백하며 커밍아웃하는 이도 있었고, ‘부럽다’, ‘나도 비감염인 애인이 있었으면 좋겠다’와 같은 바람을 전해주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민망하다 못해 어디 구멍이 있으면 당장이라도 숨고 싶은 마음이다. 2년 넘는 촬영기간을 30분으로 압축해놓았으니 관객들은 편집된 나의 사랑이 전부인 것처럼 봤을 테고, 그런 반응들은 어쩌면 당연했을지 모른다.


그 당시를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느끼는 HIV감염의 공포를 덜어내기 위해 적지 않게 노력했던 거 같다. 치료제를 복용하고 있는 감염인은 바이러스가 미검출 상태가 되기 때문에 감염전파의 위험이 거의 없다는 의학적 정보를 전하거나 콘돔을 사용하지 않는 항문성교가 3% 이하의 감염가능성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사회 감염공포는 300% 이상인 것 같다는 설명을 덧붙이곤 했다. 치료제 접근의 문제, 진료거부 등 감염인들이 경험하는 차별의 문제도 빼놓지 않으려 했다.


사랑도 운명을 다하면 이별을 맞이하듯 30대 초반의 열병같이 앓았던 사랑은 추억으로 남겨두고 있다. 다만 작년 10월 KBS 조우석 이사로부터 “그가 에이즈 환자인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정욜의 애인은 에이즈 환자”라며 국가 전복을 노리는 더러운 좌파로 낙인찍힌 것만 빼면 한국 HIV/AIDS감염인연합회를 통해 감염인들과 만나는 일상을 불편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다큐멘터리 <종로의 기적> 포스터.

# “나의 화려했던 시간은 끝났어”


친구가 감기기운으로 한참 아프더니 병원을 찾았다. 위양성(거짓 양성)일지 모른다는 기대는 와르르 무너졌고 하나님의 형벌로 수십 년 동안 낙인찍혀 왔던 질병, HIV확진 결과를 받았다. 정신을 똑바로 차릴 여유도 없이 보건소로부터 역학조사를 받으러 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친구가 나에게 보건소에 함께 동행 해 줄 수 있냐고 물었다. 설명할 수 없는 그 고통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다면 보건소가 문제겠는가. 할 수 있다면 그 이상의 것을 도움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덕분에 역학조사 진행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한숨을 돌리기 위해 보건소 앞 커피숍에 앉았다. 별 말 없이 바깥을 쳐다보고만 있던 우리는 각기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누가 재촉이라도 하는 듯 발걸음을 빨리 옮겨 보건소 담당자를 찾았고, 그는 보건소 2층 후미진 곳 사무실을 열어 우리를 안내했다. 같이 입장하려는 나를 보건소 담당자는 제지했고 친구의 동의를 얻고 나서야 나란히 앉을 수 있었다. 경계하는 보건소 담당자의 눈을 읽을 수 있었다.


개인정보를 묻고 답하다 감염경로를 묻는 항목에서 멈칫했다. 내가 잠깐 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눈치였다. 친구는 덤덤하게 잘 모르는 남자와 성관계하다 감염된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역학조사가 마무리되고 치료과정, 병원진료 등에 대한 안내를 받고나서 마지막 즈음 타인에게 에이즈 전파시키면 안 된다고, 법적 처벌을 받는다는 설명을 했다. 친구는 아무 표정 없이 그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그 표정이 더 처연하게 느껴졌다. ‘타인’에게 HIV에 감염되어 과거를 추적하고, 현재를 혐오하고, 미래를 암울하게 생각하는 그 순간에 친구는 타인에게 HIV를 전파시킬 수 있는 ‘잠재 가해자’로서의 지위가 덧 씌어졌다.


정부가 해마다 발행하는 HIV관리지침을 보면 ‘HIV감염인으로서 법률상의 권리와 의무’를 설명하는 안내 글이 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받을 권리를 가진다.”(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제3조4항)고 하면서도 타인에게 혈액 또는 체액을 통하여 감염을 전파시킬 수 있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법 19조)고 언급되어 있다. 무엇보다 이 법을 어기면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진다(법 25조).


보건소를 나오며 “더 이상 사랑받지 못하겠지?”하는 친구의 말에 “치료제 시작하면 바이러스가 미검출되어서 감염시킬 위험은 거의 없어. 이제 건강에 신경 써야 해”라고 대답했다. “그건 나도 알지” 친구가 말했다. 그가 원했던 답은 무엇이었을까.


지난 6월 말 신규감염인과 함께하는 오픈마이크 시간에 연애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너 요즘 섹스는 하니?”라는 질문에 깔깔거리며 웃다가도 자기 연애사를 꺼내면 무섭고, 두렵고, 힘들고, 자신감이 없고, 죄의식을 가지게 되고, 혹시 모르지 않냐는 의심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나의 화려했던 시간은 끝났어”
“정말 힘든 거 같아요. 만나는 것도 힘들고, 사람 대 사람 일반적인 관계도 잘 안 되는 거 같기도 하고”
“무섭긴 하더라고... 전염력이 안 생기지만 혹시 모르잖아”
“확진이후 연애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졌어”  
“감염인이기 때문에 그냥 감염인만 만나야 할 거 같아”
“비감염인을 만나면 이야기를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고민되고, 말 안하면 죄 지은 느낌이야”


HIV확진 이후 많은 감염인들은 더 이상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는 절망감을 가지고 살아간다. 짊어지기에 무거운 사랑은 “누가 나 같은 놈이랑 자겠어”라는 생각에 자존감을 떨어뜨린다. HIV에 감염되기 전 가졌던 화려함은 확진통보와 함께 시들해졌다고 푸념도 하고, 자신을 감염시킨 상대에 대한 분노보다 자신이 누군가를 감염시킬 수 있는 존재라는 생각 때문에 일반적인 인간관계마저 헝클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치료제를 복용하면 감염시킬 확률이 거의 없다는 의학정보를 알고 있으면서도 혹시 모르지 않냐는 질문에, 그래도 상대에게 감염사실을 털어놔야 하는 건 아니냐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 적도 있다고 했다. 국가인권기본계획(NAP) 수립을 위해 진행한 HIV/AIDS감염인 생활실태조사(2015)에서 많은 감염인들이 경험하는 가장 큰 어려움으로 ‘성생활 및 연애생활’을 꼽은 것을 보면 사랑과 연애는 감염인에게 너무 중요한 문제다.  .     


# 전파매개행위 금지가 말하는 위험


오픈마이크에서 집중해서 토론한 주제는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에 규정되어 있는 ‘전파매개행위금지’ 처벌에 대한 것이었다. 상대의 감염여부와 상관없이 ‘처벌’만 앞세운 법률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면서도 이 조항이 없으면 자신을 감염시킨 익명의 사람(누군지도 모르는)을 단죄시킬 법률이 없어지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도 동시에 든다고 했다. 분노를 마음에 품고 있어야 살아갈 이유가 생긴다는 그 말이 무겁게 다가왔다.


최근에 연인관계였던 두 사람이 에이즈 때문에 고소한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감염사실을 고지하지 않은 채 콘돔없이 성관계를 가졌기 때문에 자신이 HIV에 감염되었다는 이유였다(포커스뉴스, 「연인에게 에이즈 옮긴 혐의 30대男…집행유예 받은 이유는?」, 2016.05.29). 고소를 당한 사람은 치료제를 잘 복용하고 있던 터라 상대를 감염시켰을 이유가 없다고 했지만 재판부는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은 에이즈의 실제 전파 결과와 상관없이 그 위험성을 초래하는 것 자체만으로 처벌하고 있다"고 설명하며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전파매개금지행위 규정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바로 그 ‘위험’에 대한 상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 상대에게 전파시켰는지는 후순위고, 고지하지 않고 위험한 행위, 즉 콘돔 없이 성관계를 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처벌받을 수 있게 하는 법, 개인의 성적권리를 존중하기보다 감염인에게만 일방적으로 책임을 지우는 이런 판결은 고지의 자율성을 더 훼손하고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더 강하게 만들며 감염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더 드러낼 수 없게 만들 뿐이다.  


무엇이 위험한가. HIV감염사실을 상대에게 쉽게 알리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콘돔은 한 사람의 일방적인 요구 때문에 사용하지 않았는가. 법은 위험을 들먹이며 고지하지 않았다는 책임을 감염인에게만 묻고 있지만, 인권을 존중받지 못한 지금의 상황에선 그 누구도 자신의 감염사실을 털어놓지 않았다는 책임을 지울 수 없다. 당신 때문에 내가 위험해졌다는 그 말은 협박과도 같다.


전파매개행위 금지규정이 폐지된다고 HIV감염이 더 많이 확산되거나 불안전한 성적관계가 만연해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감염인이 고의적으로, 악의적으로 불특정 다수에게 감염전파를 시키는 범법자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공포를 조장하는 위험이야말로 에이즈 예방에도, 인권에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법이 폐지되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상대에게 자신의 감염사실을 털어놓으면서도 더 안전하게 사랑할 수 있는 길을 열기 때문이다. 감염인의 성적권리가 보장될 때 비로소 에이즈 예방과 관련해 유의미한 토론이 가능한 것은 아닐까.
  
 

정욜의 헬로! 레드리본

10년 넘게 HIV/AIDS감염인과 함께 인권에 관해 이야기해왔다. 지금은 감염인 인권운동의 자력화를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에이즈 인권운동을 하며 '더러운 좌파'라는 낙인도 찍혔지만 감염인들은 내 삶에 든든한 힘이 되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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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욜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KNP+ 간사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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