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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이후 4년, ‘코로나19’에도 장애인 대책 없어… “정부가 더 무섭다”
감염병 대책에서 또다시 ‘민낯’ 드러낸 장애인 지원·구제 대책
장애인 자가격리에서 지원은 마스크와 손소독제뿐… 활동지원은?
등록일 [ 2020년02월17일 14시24분 ]

17일 오전 11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 4개 장애단체가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은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올해 가장 많은 눈이 내렸다.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장애인들은 “죽지 않기 위해 나왔다”며 정부를 향해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사진 허현덕
 

“저는 주말에 교회를 다닙니다. 그 교회에 신종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가 있었고, 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저에게 자가격리가 필요하다고 했고, 마스크와 손소독제, 체온계를 주었습니다. (…) 저는 14일 동안 집에만 있었습니다. (…) 위험한 상황에서 저는 도움을 요청하고 또 도움을 받고 싶습니다. 앞으로는 제가 상황을 알아차리고 대처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코로나19 자가격리자 이혜미 씨)

 

지난해 12월 중국 우한에서 시작한 새로운 유형의 코로나바이러스(아래 코로나19)로 29개국에서 6만 9,000여 명의 환자와 1,6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1월 20일 첫 번째 확진자가 확인된 이후 현재까지 30명(2월 17일 기준)이 확진 판정을 받았고, 감염경로상에 연관성을 가진 수백여 명의 사람이 의심감염자로 자가격리 상태에 있다.

 

그 가운데 장애인에 대한 정부의 지원과 대책이 전혀 마련돼 있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장애계는 이미 메르스 사태를 경험했지만 손 놓고 있는 정부의 무관심에 분노했다.

 

- 장애인 자가격리에서 지원은 마스크와 손소독제뿐… 활동지원은?

 

이혜미 씨는 지난 1월 26일 서울시 종로구에 있는 명륜교회 오전 예배에 참석했다. 그런데 그날 코로나19 6번 확진자도 함께 예배에 참석했고, 같은 달 30일 확진 판정을 받았다. CCTV를 확인해 보니 이 씨는 2층 출입구 앞 휠체어석에 있었고, 6번 확진자는 2층 앞쪽 오른편 자리로, 둘은 매우 가까운 거리였다. 2월 2일 종로보건소에서는 이 씨와 활동지원사 모두 자가격리 대상자가 아니라고 했다. 보건소에서는 증상이 없는 상황에서는 검사를 받을 수 없다며, 검사도 진행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씨의 활동지원중개기관인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는 감염병 확산 우려에 이 씨를 자가격리시켰다.

 

문제는 자가격리 시에 활동지원 대체 인력에 대한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함께 예배에 참석했던 활동지원사도 자가격리대상자여서 이 씨의 활동지원은 중단 위기에 처했다. 매 순간 활동지원이 필요한 중증장애인에 대한 대책 부재가 여실히 드러난 순간이다. 또한 현재 이 씨는 세 명의 장애인과 장애인자립생활주택에서 생활한다. 세 명의 장애인과 이들의 활동지원사도 함께 생활하는 공간이기에 완벽한 자가격리는 아니다. 다른 거주인에 대한 대책도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자가격리 기간 동안 이 씨가 지원받은 것은 종로구청으로부터 받은 마스크와 손소독제, 보건복지부(아래 복지부)로부터 받은 ‘가족 활동지원을 허용한다’는 공문이 전부였다. 다행히 이 씨와 활동지원사는 2월 9일, 14일간 증상이 없어서 자가격리를 해제했다.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아래 장추련) 사무국장은 “가족에 의한 활동지원도 불가능한 자가격리 대상 장애인에게 어떤 대책도 마련되지 않아 이 씨와 활동지원사는 결국 활동지원중개기관의 자발적 조치에 의존해야 했다”며 “코로나19와 관련해 복지부가 장애인활동지원 중개기관이나 장애단체 등에 관련 매뉴얼이나 지침을 내리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필순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은 “만약 증상이 발견되었으면 어떻게 대처를 했어야 했는지 눈앞이 캄캄하다”며 “코로나19가 마무리된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감염병이 계속 나올 가능성이 큰데, 정부는 중증장애인에 대한 지원 대책과 매뉴얼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 자가격리자 이혜미 씨가 미리 준비한 원고를 읽으며 발언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 메르스 소송 4년, 정부는 뒷짐만… “코로나19보다 정부의 무관심이 더 무섭다”

 

이에 17일 오전 11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장추련 등 4개 장애단체는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은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올해 가장 많은 눈이 내렸다.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장애인들은 “죽지 않기 위해 나왔다”며 정부를 향해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장추련은 이러한 전염병에 대한 지원과 대책 부재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부터 지속적으로 문제제기했던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사망자 38명, 확진자 186명, 격리대상자 1만 6,693명을 남긴 사회적 대참사가 일어났던 지난 2015년 메르스 사태 때도 정부는 감염병 관리에 철저한 무능을 보였다. 특히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감염병 안전대책은 속수무책이었다.

 

당시 뇌병변장애인 ㄱ 씨는 입원한 병원에서 메르스 환자가 발생해 자가격리대상 통보를 받았는데, 격리되어 있던 14일간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을 수 없었다. 지체장애인 ㄴ 씨는 자가격리대상자는 아니었으나 메르스 전파 우려로 활동지원 인력이 연결되지 않았다. 독거장애인 ㄴ 씨는 결국 병원 입원을 선택해야 했다. 장추련은 이러한 사례를 바탕으로 2016년 10월 국가를 상대로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기본계획 수립 및 시행’, ‘감염병 위기관리 표준매뉴얼 작성 및 운영’ 등을 요구하는 장애인차별구제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그러나 정부는 현재까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김성연 사무국장은 “정부는 4년 동안 법원의 강제조정도 받아들이지 않고, 소송기일에 담당부서 책임자가 단 한 번도 참석하지 않은 채 원고들의 요구를 외면했다”며 “이번 코로나19로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 복지부 장애인정책국, 중앙사고수습본부 상황반, 120 다산콜센터, 경기도청, 서울시청 등에 확인했지만 모두 전화를 받지 않거나 다른 부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확인해봐야 한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고 지적했다. 결국 4년 동안 감염병 체제에서 장애인의 구제조치는 하나도 마련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김준우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는 “코로나19보다 중증장애인의 안전에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정부의 태도가 더 무섭다”며 “활동지원사 없이 물도 밥도 못 먹는 중증장애인이 감염되면 자가격리를 하라지만, 사실상 방치와 다를 게 없다”고 토로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은 현재 감염병 재난 상황에 정부가 중증장애인의 안전대책을 즉각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의 옷에는 눈이 쌓여 있다. 사진 허현덕
 

- “국가는 감염병에서 ‘장애인은 어쩔 수 없다’는 포기선언 해선 안 돼”

 

코로나19에 대한 수습을 맡은 질병관리본부 콜센터 1339와 보건소 등에서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통역과 문자서비스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현재 국민콜 정부민원안내 110에서 오후 6시까지 수어통역이 가능할 뿐이다.

 

김성연 사무국장은 “지진이 나면 엘리베이터를 절대 타면 안 된다는 안내방송, 문자를 보내면 답하지 않는 1339 비상안내전화, 자가격리대상자는 무조건 아무도 접촉하지 말라는 감염병예방지침은 ‘장애인은 어쩔 수 없다’는 국가의 포기선언이 아니냐”며  "현재 지역사회 감염도 확인되고 있는 상황에서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 정부는 장애인과 지원이 더욱 필요한 사람들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은 정부의 중증장애인 안전대책이 박근혜정부나 문재인정부나 다를 게 없다고 강력히 규탄했다. 박 이사장은 “그동안 정부가 감염병 상황에 대해 강력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언론을 통해 자화자찬하고 있는데, 중증장애인의 안전대책은 과거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전혀 없다”며 “소를 잃으면 외양간이라도 고치는데, 이 나라는 중증장애인을 ‘소’처럼 잃으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인식조차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현재의 감염병 재난 상황에 대해 즉각 정부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거듭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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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현덕 기자 hyundeok@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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