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자립 능력’ 유무에 따라서
‘탈시설 할 수 없는 장애인’ 있다는 천주교
중요한 것은 ‘자립이 가능한가’가 아닌
성공적인 탈시설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

[편집자 주]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상한 마음을 싸매어 주고, 포로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갇힌 사람에게 자유를 선언하여라.” - 이사야서 61장 1절

천주교가 운영하는 170여 개 장애인거주시설에 약 3천 명의 장애인이 갇혀 있다. 그래서일까. 천주교는 지난 2021년부터 4년 넘게 탈시설을 왜곡하고 있다.

전국 각지 성당에서 탈시설 반대 서명운동을 벌이는가 하면, 중증발달장애인을 ‘무능’한 존재로 폄하하며 탈시설이 불가능한 사람이라 낙인찍는다.

이에 비마이너는 천주교의 왜곡을 바로잡고 탈시설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를 담은 기사를 연속 보도한다.

① “탈시설장애인 24명 사망” 주장, 사실일까?
② ‘탈시설 할 수 없는 장애인’은 없다
③ 자립지원법이 장애인 생존 위협? ‘거짓’
④-1 [집담회] 시설을 벗어나, ‘나’로 살아가다
④-2 [집담회] 할 수 없다? 우리는 ‘하고 있다’

 “장애인들도 본인의 상황과 의지에 따라 시설 거주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자립’이라는 화려한 말 뒤에 숨겨져 있는 위험을 교회는 분명하게 인지하며, 장애인들의 ‘존엄한 삶’을 위하여 깨어 있는 예언자로서 우리의 소명을 잃지 않을 것을 다시금 다짐한다.”

- 2025년 3월 30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이자 한국카리타스협회 이사장인 조규만 주교 입장문

“자립이 어려운 중증장애인의 경우, 적절한 보호 없이 퇴소를 강행하는 정책은 생명권을 침해할 수 있다.”

- 2025년 4월 17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공문

천주교는 중증발달장애인을 “자립이 어려운 존재”, “시설 거주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 존재”로 여긴다. 그 주장 속에는 탈시설의 기준이 ‘자립 능력’에 달려있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그러나 실제로 장애인의 탈시설에서 중요한 것이 ‘자립이 가능한지’, ‘지역사회에서 자립할 능력이 있는지’일까?

《중증·중복 발달장애인의 시설 수용 끝내기 – 어려운 꿈》(학지사, 2024)을 쓴 도로시 그리피스와 프랜시스 오웬은 이렇게 말했다.

“이제 질문은 복잡한 욕구를 가진 중증·중복장애인들이 지역사회 안에서 사는 것이 ‘가능한가’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성공적인 전환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이다.”

2025년 4월 6일,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가 장애인의 탈시설권리를 왜곡하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인 조규만 주교에게 면담을 요청하기 위해 서울 중구에 위치한 명동대성당에서 기습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김소영

- 장애인에게는 ‘시설’도 필요하고 ‘자립’도 필요하다?

천주교는 “장애인에게는 ‘시설’도 필요하고 ‘자립’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2025년 3월 30일, 조규만 주교 입장문)

논리적으로야 사람이 감옥도, 병영도, 사막도, 시설도 선택할 수 있다고 말은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논리의 문제가 아니다. 이 문제의 핵심은 ‘시설이 어떤 곳’이냐다. [《장애, 시설을 나서다》(진실의힘, 2025), p.195]

2020년 12월, 보건복지부의 위탁을 받아 한국장애인개발원이 수행한 ‘장애인 거주시설 전수조사’가 발표됐다. 이 조사는 전국 612개 장애인거주시설에 사는 21,183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최근 진행된 전수조사 중 가장 많은 시설과 시설 거주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다.

이 전수조사에 따르면 평균 5명의 장애인이 방 1개에서 생활한다. 100인 이상 시설에서는 약 7명이 한 방을 공유하는데 방에는 화장실이 단 한 개뿐이다. 그러니 혼자만의 공간을 갖기 어렵다. 목욕도 혼자 할 수 없는 곳이 많다. 이처럼 시설은 사생활을 보장받기 어려운 공간이다.

시설 거주 장애인들은 핸드폰을 소유할 수도 없다. 전수조사 전체 응답자의 83.69%가 핸드폰이 없다고 답했다. 그만큼 정보 접근이 어렵다. 외출 역시 자유롭지 않다. 외출을 하지 못하는 이유로는 혼자 나가기 어려워서(62.5%), 시설에서 나가지 못하게 해서(16.3%), 아는 사람이 없어서(4.3%), 타고 나갈 차가 없어서(3.3%) 등을 꼽았다.

외출이 어려우니 여행도 잘 가지 못한다. 전체 응답자 중 1년 이내에 1박 2일 이상 여행을 다녀온 경험이 있는 장애인은 2.9%에 불과했다. 반면, 여행을 한 번도 다녀오지 못한 응답자는 무려 76.6%에 달했다. 그 가운데 여행을 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 비율은 93.7%로, 여행을 가지 못한 대부분이 실제로는 여행을 원하고 있었다.

시설에서는 신분증 관리조차 시설 직원이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전체 응답자의 66.6%가 자신의 신분증을 시설 직원이 관리하고 있다고 답했으며, 특히 100인 이상 대형 시설에서는 그 비율이 73.3%에 이른다. 금전 관리 역시 시설 직원이 하고 있다는 응답이 48.9%에 달해, 장애인의 경제적 활동의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시설에 입소한 장애인은 평균 18.96년 동안 시설에 수용된 채 살아간다. 100인 이상 거주하는 시설에서 사는 장애인은 평균 26.84년 수용된다.

시설에 23년 동안 거주하다 탈시설한 발달장애인 당사자인 박경인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공동대표는 “시설은 돌봄이 잘 되어 있는 곳도, 안전한 곳도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박 대표는 지난 5월 7일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정순택 대주교를 만나는 자리에서 이야기했다.

2025년 5월 7일, 정순택 대주교와의 면담 자리에서 박경인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공동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대주교님, 시설이 필요한 장애인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아무리 좋은 사람이 운영하는 좋은 시설이라고 하더라도, 시설로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시설에는 존엄한 삶은 없고 오직 생존만이 있습니다.

요즘 저는 지원주택에서 살고 있습니다. 나만의 사적 공간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아시나요? 대주교님도 그렇잖아요? 이 행복을 저는 시설에서 나온 다음에야 알게 됐습니다. 시설에서 살고 싶다고 말하는 장애인이나 부모님들도 다른 삶을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시설이 좋다고 말하는 게 아닐까요? 시설에 들어가지 않아도 충분히 돌봄을 받을 수 있다면, 시설에 보내고 싶은 부모님도 없을 것입니다.

대주교님, 대주교님이 본적 없다고 해서 없는 일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23년간의 시설 생활 중 20년을 천주교가 운영하는 시설에서 율리안나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제 몸이 증거입니다.”

시설은 단지 물리적으로 열악하거나 위험하다는 문제를 넘어, 개인의 기본권이 제한되는 공간이다. (《장애, 시설을 나서다》, p.195) 그러므로 탈시설은 단순히 시설을 폐쇄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인권을 보장하자’는 요구이며 ‘모든 시민이 시설성이 극복된 사회에서 살아가자’는 제안이다.

결국 탈시설정책이 지향하는 핵심 가치는 ‘보편적 인권’이다. (《장애, 시설을 나서다》, p.286) 장애인에게 시설은 필요하지 않다. 그 누구에게도 시설은 필요하지 않다.

- 신체장애인만 탈시설 할 수 있고, 발달장애인은 탈시설 할 수 없다?

“우리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사람들은 자기 의사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어 강제 탈시설된 무연고 중증발달장애인들이다. 우리는 그들이 ‘도대체 누구이며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해서 관심이 전혀 없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가톨릭교회는 이러한 ‘비참한 사태’를 초래한 원인이 국가가 장애인을 사회적 실험 대상으로 여겨 자기결정권과 생명을 짓밟는 데 있다고 판단한다. 또한 이러한 정책은 반인권적 행위이고, ‘전체주의적 탈시설 정책’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 2024년 11월 8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및 한국카리타스협회 입장문

“장애 유형에 따라 ‘예민하고 다양한 접근’이 이루어져야 한다.”

- 2025년 3월 30일, 조규만 주교 입장문

이기수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신부는 2023년 10월, ‘장애인 주거복지정책의 방향성 모색 토론회’에서 비인간동물의 지능과 발달장애인의 지능을 비교하는 표를 만들어 공개했다. 표를 보면 앵무새와 까마귀는 지적장애 1급, 호랑이과 고양이는 지적장애 2급에 해당한다는 식으로 설명돼 있다. (관련 기사: 지적장애 1급은 까마귀 지능? 천주교 신부 발언 ‘논란’)

이 신부는 강아지 지능부터는 장애인 보호작업장 근무가 가능하며 코끼리 지능부터 ‘자립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탈시설권리 왜곡에 앞장서는 천주교 신부이자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중증장애인거주시설인 둘다섯해누리 원장이기도 했다. 이처럼 천주교는 지능을 중심으로 장애인을 서열화하며 중증발달장애인의 탈시설권리를 왜곡해 왔다.

2024년 11월 8일, 이기수 신부가 ‘국가의 전체주의적 탈시설 정책으로 죽어가는 익명의 장애인들에 대한 입장문’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2023년 10월 26일, 이기수 신부가 토론회에서 공개한 비인간동물과 발달장애인 지능 비교 표. 유튜브 채널 ‘알TV’ 캡처
2023년 10월 26일, 이기수 신부가 토론회에서 공개한 비인간동물과 발달장애인 지능 비교 표. 유튜브 채널 ‘알TV’ 캡처

‘중증발달장애인은 자립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천주교가 외면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탈시설은 ‘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탈시설은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이지, 천주교가 하듯 평가하거나 선별할 대상이 아니다.

유엔 탈시설가이드라인은 말한다. “선택권을 보장한다는 것은 장애인이 얼마든지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존중하는 것이다.” 그동안 ‘못 하고, 안 되며, 그래서 실패한 존재’로 취급받아 온 사람들에게 없던 것은 ‘능력’이 아니라 ‘자리’다. (《장애, 시설을 나서다》, p.195)

‘자립 능력’을 판단해 누구는 자립할 수 있고 누구는 그렇지 않다고 구분하는 데 초점을 두어선 안 된다. 지역사회에서 이들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 어떤 과정을 통해 자립을 가능하게 할 것인지 고민하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2023년 12월 10일, 한 활동가가 기자회견에서 든 피켓에 천주교 삼행시가 적혀 있다. ‘천’주교 신부가 사람을 등급으로 나누다니! ‘주’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 모르나? ‘교’회는 사람을 시설에 가두지 마라. 사진 하민지
2023년 12월 10일, 한 활동가가 기자회견에서 든 피켓에 천주교 삼행시가 적혀 있다. ‘천’주교 신부가 사람을 등급으로 나누다니! ‘주’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 모르나? ‘교’회는 사람을 시설에 가두지 마라. 사진 하민지

장애인 당사자 부모이자 탈시설 옹호자인 수잔 스웬슨은 이렇게 말했다. (《중증·중복 발달장애인의 시설 수용 끝내기 – 어려운 꿈》, p.96)

“장애가 너무 심하기 때문에 자신의 이름을 가질 권리, 정체성을 가질 권리, 가정에서 성장하고 인간관계를 가질 권리, 학대를 받지 않을 권리, 재산을 가질 권리, 지역사회에 참여할 권리와 같은 인권을 가질 수 없다는 생각을 우리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당신은 당신 자체로서 권리가 있다. ‘시설화’는 이러한 권리들을 위협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장애가 중한 사람이라도 ‘시설화’되어서는 안 된다.”

탈시설이 장애인의 ‘생명권’을 침해하며, 중증발달장애인은 ‘탈시설 할 수 없는 존재’라고 주장하는 천주교. 이에 대한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시설과 지역사회, 두 공간 모두에서 장애인을 만나온 노진영 대구 나로장애인자립생활주택지원센터장을 찾았다.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의 탈시설을 지원하고 지역사회에서의 자립의 과정에 함께하는 노진영 센터장에게 탈시설권리를 왜곡하는 천주교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그는 시설에 사는 중증발달장애인과 지역사회에서 자립해 살아가는 이들의 현실과 일상을 전해주었다.

노 센터장은 “지역사회에서는 활동지원, 자립생활주택 인력 등 1:1로 개인별 지원을 하는 것이 원칙이다. 건강 상태와 관련해서도 가까이에서 개별적으로 당사자의 상태를 살피고 대응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1:다(多) 지원을 하는 시설보다 더 나은 조건”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장애인들이 증상을 자각하지 못하거나 아픈 곳을 호소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증상이 겉으로 드러난다거나 당사자가 고통을 표현하는 경우는 시설에서도 바로 진료는 할 텐데, 가까이에서 일상생활을 지켜보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질환들이 있다. 실제로 탈시설하고 나서야 백내장 수술을 하거나 치질 수술을 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다”고 설명했다.

탈시설을 지원할 때 지원 단체는 장애인 개인별로 의료지원 계획을 세우는 데, 그 과정에 대한 이야기도 노 센터장에게 들을 수 있었다.

노 센터장은 “의료 정보를 인수인계받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병력에 대한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언제 어떤 질환이 발생해 어떤 치료 과정을 거쳤는지’, ‘왜 이 약을 복용하게 되었는지’, ‘몇 년 동안 약을 복용해 왔는지’, ‘이 약을 먹은 후 호전되었는지’ 등과 같은 치료 경과나 이력이 공유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특히, 중증발달장애인의 경우, 정신장애가 아님에도 정신과 약물을 먹고 있는 사례가 많다. 탈시설 후 병원을 옮겨 진료를 받으면 의사가 ‘무리가 될 수 있어 요즘 잘 처방하지 않는 약물’이라고 지적하는 경우들도 있다”며 “추측해 보면, 소수의 인력이 다수의 장애인을 돌봐야 하다 보니 소위 ‘어려운 행동’이 나타날 때 이를 통제하기 위해 행동 조절용 약물을 처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시설은 집단생활을 하기 때문에 ‘어려운 행동’이 나타날 경우 이를 조절해야 할 수밖에 없었다면, 시설 밖에서는 1:1 지원을 통해 장애인 당사자가 ‘어려운 행동’을 표출하는 이유를 파악하고 적절히 대응할 수 있게 된다. 약물로만 ‘어려운 행동’을 제어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 되는 것”이라며 “결국 시설에 계속 살면 약물 용량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약을 증량하지 않고도 본인의 상황에 맞는 지원 방식을 찾아나갈 수 있는 환경은 오히려 시설 밖 지역사회에서 마련된다”고 강조했다.

노 센터장은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에 나와 스포츠 바우처를 이용하거나 재활운동을 하는 등 자신의 건강에 맞는 방법을 찾아나가는 분들도 많다”며 “더 확대되어야 한다는 과제는 남아있지만, 탈시설 후 지역사회의 다양한 자원을 직접 활용해 자신에게 적합한 건강 관리 방식을 모색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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