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전사들의 노래 - 서지 않는 열차를 멈춰 세우며》(글 홍은전·그림 훗한나, 오월의봄)라는 책 제목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반지의 제왕》 같은 판타지 영웅 대서사시였다. 왜 이런 낭만적이고 비장한 제목을 골랐을까? 궁금증은 책장을 넘기며 자연스레 해소되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의 투쟁과 그 투쟁의 최전선을 지켜왔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있는 그대로가 장애인의 동등한 인권을 쟁취하기 위한 한 편의 긴 대서사시였다.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서사시의 주 무대는 운명을 건 전투다. 《반지의 제왕》의 헬름 협곡 전투든
지난 4월 14일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열린 ‘장애인권리예산 투쟁 1년: 지하철행동과 시민과 언론의 역할’ 좌담회에서의 일이다. 문화예술 분야 패널 중 한 명으로 초대받았지만 농인의 자녀인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s의 줄임말) 입장으로도 이야기하고 싶어 농인과 코다에게 전장연의 ‘지하철행동’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 발제했다. 언뜻 보면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라는 투쟁은 청각장애인을 비롯한 농인과는 별 상관이 없어 보이며 그렇기에 대다수의 농인 및 그들의 자녀인 코다는 지하철행동을 자
장애인의 속도로, 장애인의 삶과 권리를 외치는 영화제가 시작됐다.27일 오후 6시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야외무대에서 제21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개막식이 열렸다. 을지오비베어,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등이 축하 인사를 전했고, 장호경 감독은 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은 소감을 밝혔다. 가수 이랑의 축하공연도 이어졌다. 관객들은 이랑의 노래 ‘우리의 방’, ‘환란의 세대’, ‘늑대가 나타났다’를 따라 부르거나 무대 앞으로 나와 함께 춤을 췄다.이번 영화제는 ‘열차가 어둠을 헤치고’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장애인의 주체적인 삶을 담은 영화
21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아래 영화제)가 오는 27일, 서울시 종로구 마로니에공원 야외 공연장에서 개막한다. 올해로 21회를 맞이한 영화제는 장애인을 동정과 시혜의 대상으로 그려온 미디어의 문제점을 짚고, 장애인의 주체적 삶을 담은 영화를 상영한다.슬로건은 ‘열차가 어둠을 헤치고’이다. 문경란 영화제 공동조직위원장은 “오랜 투쟁에도 한국의 지하철과 버스는 비장애인만 싣고 달릴 것을 고집하고 있다”고 꼬집으며 “하지만 영화제는 장애인의 저항과 투쟁을 실천하는 열차를 발차할 것”이라고 전했다.이번 영화제에서는 사전 공모작 중 선정된
- 장애인인권영화란 무엇인가영화란 무엇인가. 내로라하는 수많은 학자와 감독이 이 질문에 답해 왔다. 가장 기억에 남는 답은 “아무것도 아니다”이다. 지난해 9월 타계한 프랑스 영화감독 장 뤽 고다르가 한 말이다. 그는 1997년, 50돌을 맞은 칸 영화제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했다. 인터뷰 전문을 보면 조금 더 길게 대답했다.“영화란 무엇인가. 아무것도 아니다. 영화는 무엇을 원하는가. 모든 걸 원한다. 영화는 무엇을 할 수 있나. 뭔가를 할 수 있다. 영화는 프랑스 혁명 당시 평민계급의 처지와 비슷하다. 평민계급과 영화 모두 사회
무언가를 지키겠다며 도시 한편에서 싸우고 있는 활동가들은, 눈에 자꾸만 뭘 담아두며 산다. 요즘 되뇌는 노랫말이 있다. 김일두 씨가 부른 ‘가난한 사람들’의 일부다.“주장할 사람, 거기 누구 없소? 나는 이제 그만 할라요.”그토록 많은 집회를 하고, 그토록 많은 활자를 쓰고, 그토록 많은 발언을 하고, 또 그토록 많은 죽음, 실패를 거치면서도 이토록 더디게 변하는 세상을 보면 주장하기에도 지친다. 그냥 가만, 가만. 내가 멈추면 또 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 길을 가지 않을까 하며 멍을 때리기도 한다.그러면서도 자꾸만 할 이야기
- 지루한 농성장농성장에 있으면 지루하다. 밖에서 보면 농성장의 매일이 뜨겁게 흘러가는 줄 알지만 그렇지 않다. 특별히 할 일이 없다. 농성장을 지키는 것 외에는. 지나가는 시민에게 서명해 주시라 요청하기도 하고 연대단체에서 찾아와 문화제나 공연을 열기도 하지만 끝나고 나면 조용하고 외롭다. 별로 안 친한 사람과 긴 시간을 보낼 때도 있다. 그래서 농성하다 보면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한다. 독서를 하거나 기타를 튕겨 본다. 일기를 쓸 때도 있다.시간 죽이는 것도 일이지만 불편한 것도 문제다. 길거리에 천막을 세우고 그 안을 지키는
‘집으로 가는’과 ‘길’ 사이에 쉼표가 찍혀있는 책을 받아들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당사자와 조력자들이 고군분투하며 집으로 가기 위해 함께 버텨냈을 ‘길 위의 시간들’이었다. 시설을 나온다고 바로 살 집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살 집이 있다고 해서 저절로 살아지는 것도 아니라는 걸 알아차리게 해주었던 건 바로 이 쉼표였다. 2008년, 석암재단 산하 석암베네스다요양원의 거주인과 직원들은 재단의 비리와 거주인에 대한 인권유린을 폭로하며 문제해결을 촉구하기 위한 운동을 조직했다. 그 후 5년간 시민사회의 끈질긴 개입을 통해 재단 운
10월 15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공연장. 가수 시와는 노래에 앞서 잠시 숨을 골랐다. 조용히 눈동자를 굴리며 관객들의 표정을 살피고, 연주자들과 짧은 대화를 주고받은 뒤에야 그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여러분은 어떤 순간을 떠올리며 공연장에 오셨나요. 제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 여러분은 어떤 마음이실까요. 두근두근하는 기대를 담아 먼저 네 곡의 노래를 들려드릴게요.”‘숨’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오자, 공연장에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음악에 참여했다. 시와는 노래를 부르고, 관객들은 연주를 감상하고, 수어통역사와 문자통역사
청와대 첫 전시로 ‘장애예술인 특별전’이 선택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31일 보도자료에서 “장애 예술인의 전시공간을 많이 확보하고 전시 기회도 대폭 늘리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자리라고 밝혔다. 실로 윤 대통령은 장애예술에 관심이 많은 듯 보인다. 지난 6월, 윤 대통령은 발달장애인 예술가 김현우 작가를 대통령실로 초청하고, 7월 25일에는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1층에 발달장애 작가들의 그림 15점을 걸었다. 장애인은 귀빈 대접을 받고 장애예술인들의 작품은 촉망을 받는 듯하다.그러나 이것은 대통령의 취사 선택된 관심이
노들장애학궁리소는 장애인운동단체의 진지인 ‘대항로’에 있으며, 장애 문제를 연구하고 토론하는 곳이다. ‘궁리’를 통해 장애를 규정하는 근거에 대해 바닥까지 따져 묻고, 장애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억압하는 온갖 삶의 형식을 부수어나갈 운동의 지혜와 전략을 모색하고자 한다. 강좌, 세미나, 차담회 형태로 해 오던 궁리 외 또 다른 방식을 궁리하다가 연구자들이 매달 돌아가며 장애와 관련한 책을 읽고 서평을 쓰기로 했다. 장애인뿐만 아니라 정상성 권력에 의해 억압받고 차별받는 다양한 소수자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도 담으려 한다. 모든 장소에는
서영의 오빠는 발달장애인이다. 엄마는 오빠의 돌봄만으로도 벅찼다. 사람들은 서영에게 “그러니 부모님 말씀 잘 듣고 효도해야 한다”라는 말을 아주 쉽게 했다. 반면 서영의 조그만 실수에는 “너는 멀쩡한 애가 왜 그러니?”라고 타박했다. 서영에게 ‘오빠가 저러니까 나까지 속 썩이면 안 돼. 내가 잘해야 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웠다.오랜 시간 서영은 ‘서영으로’ 살지 못했다. 서영은 어린 시절 사랑을 갈구할 때는 밀쳐냈던 엄마가 성인이 된 자신에게 ‘다정다감하지 않다’고 핀잔을 주니 무척 혼란스러웠다. “여태껏 오로지 오빠에게
노들장애학궁리소는 장애인운동단체의 진지인 ‘대항로’에 있으며, 장애 문제를 연구하고 토론하는 곳이다. ‘궁리’를 통해 장애를 규정하는 근거에 대해 바닥까지 따져 묻고, 장애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억압하는 온갖 삶의 형식을 부수어나갈 운동의 지혜와 전략을 모색하고자 한다. 강좌, 세미나, 차담회 형태로 해 오던 궁리 외 또 다른 방식을 궁리하다가 연구자들이 매달 돌아가며 장애와 관련한 책을 읽고 서평을 쓰기로 했다. 장애인뿐만 아니라 정상성 권력에 의해 억압받고 차별받는 다양한 소수자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도 담으려 한다.어느 날부터 내
영화관 장애인 관람석 대부분이 맨 앞줄에 배치되어 있어, 휠체어 이용 장애인들은 좌석 선택권조차 누리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영화진흥위원회를 통해 3대 영화관(CJ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 3004개 상영관을 대상으로 전수조사한 결과, 장애인석 10석 중 7석은 맨 앞줄에 배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전국 431개 극장 전체 상영관 중 장애인석이 설치된 79.7%(2395개)를 대상으로 조사했다. 제일 앞줄에 장애인석을 배치한 영화관은 메가박스 76.5%(1,067석), CGV 71.7%(1,784
- 질병 서사를 찾아 헤매다몇 해 전 2차 장애로 만성신부전을 진단받았다. 담당 의사는 나에게 향후 몇 년 안에 반드시 투석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앞으로 내가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았다. 한 달여간의 입원치료를 받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계획해왔던 미래가 아득히 멀어져 가는 것을 느꼈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한단 말인가? 앞으로 나에게 어떤 삶이 가능할지 궁금했다. 질병 서사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몇 해 전까지 한국의 작가가 쓴 질병 서사는 만나기 어려웠다. 수
어릴 적 봤던 디즈니 만화영화 인어공주 속 에리얼은 지금도 선명히 상상할 수 있을 정도로 뇌리에 박혀있다. 붉은색 긴 머리, 새햐얀 피부, 초록색 조개껍데기로 가린 가슴, 날씬한 허리. 그에 반해 마녀 우르술라는 보라색 피부에 뚱뚱한 몸매를 가졌으며, 착한 에리얼의 목소리를 빼앗는 나쁜 등장인물로 기억한다. 마녀로부터의 역경을 극복한 에리얼은 목소리를 되찾고 두 다리를 가진 인간이 되어 ‘언어·지체장애가 사라진 채’ 왕자와 성대한 결혼식을 올린다. 그런데 재작년 즈음, 디즈니 만화영화 ‘인어공주’의 실사판 제작 소식이 알려지면서 주
“아픈 게 내 탓이라고만 생각했어요.”“제가 예민해서 병에 걸린 거래요.”“너무 힘든데 뭐라고 설명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얼마나 아파야 아프다고 말해도 괜찮은 걸까요?”아픈 몸으로 살아가는 여성들의 질병 경험을 담은 책 『질병과 함께 춤을』 (조한진희 엮음, 다리아·모르·박목우·이혜정 지음, 푸른숲)이 출간됐다.이 책은 각자 다른 질병을 가진 여성 4명이 질병과 더불어 살아가는 고유한 삶을 온몸으로 써 내려간 이야기다. 질병을 안고 살아가는 여성들이 자책감과 불안감에 휩싸여 있을 누군가에게 조용히,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코다 코리아가 아시아 최초로 ‘2023 코다 국제 콘퍼런스’ 한국 유치에 성공했다. 코다 국제 콘퍼런스는 전 세계 코다가 모여 교류하는 자리다. 2023년에 열릴 콘퍼런스에는 약 30개국의 400여 명 코다가 참여할 예정이다.‘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는 농인 부모의 자녀를 일컫는 말로, ‘코다 코리아’에는 한국의 청인 코다가 모여 있다. 2014년에 설립된 코다 코리아는 아시아에서의 첫 코다 국제 콘퍼런스 유치를 목표로 노력해 왔다. 2023년에 한국에서 열리는 제19차 세계농인연맹 총회 및 세계
노들장애학궁리소는 장애인운동단체의 진지인 ‘대항로’에 있으며, 장애 문제를 연구하고 토론하는 곳이다. ‘궁리’를 통해 장애를 규정하는 근거에 대해 바닥까지 따져 묻고, 장애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억압하는 온갖 삶의 형식을 부수어나갈 운동의 지혜와 전략을 모색하고자 한다. 강좌, 세미나, 차담회 형태로 해 오던 궁리 외 또 다른 방식을 궁리하다가 연구자들이 매달 돌아가며 장애와 관련한 책을 읽고 서평을 쓰기로 했다. 장애인뿐만 아니라 정상성 권력에 의해 억압받고 차별받는 다양한 소수자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도 담으려 한다.불구는 어떤 존
발달장애아동을 위한 예술체험 프로그램이 열린다. 안단테 아츠가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 후원하는 이번 프로그램에서는 소리, 빛, 움직임 등을 통한 체험형 예술교육을 받을 수 있다.프로그램은 8월 24일부터 9월 14일까지, 매주 화요일 오후 2시에 시작된다. 점, 선, 면 등의 오브제로 마련된 공간을 탐색하고, 마을을 직접 만들어 보거나 신체 움직임으로 그림을 그리는 등 다양한 체험이 가능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장소는 서울시 종로구 이음센터 이음아트홀이며 사전에 신청해야 참여할 수 있다. 프로그램별로 6명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