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10주기 추모제 열려
“잘못된 제도에 의한 피해, 왜 죽음으로 증명해야 하나”

2014년 2월, 생계유지에 어려움을 겪던 송파 세 모녀가 자살하며 남긴 편지. 사진 서울지방경찰청

‘송파 세 모녀’는 가난 때문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칭하는 대명사가 됐다. 26일 오전 11시, 용산 대통령 집무실 맞은편인 전쟁기념관 앞에서 기초생활보장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 등의 주최로 송파 세 모녀 10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이날 시민사회계는 사회복지서비스의 시장화로 공공성이 훼손되면서 더욱 넓고 다양해진 빈곤의 제도화에 대해 질문했다.

- 10년 전, 송파 세 모녀가 우리 사회에 보낸 편지

“주인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2014년 2월, 서울 송파구의 한 단독주택 반지하집에서 살던 세 모녀가 번개탄을 피워 놓고 동반 자살했다. 이들은 ‘죄송합니다’라는 편지와 함께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으로 70만 원을 남겼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30대인 두 딸은 신용불량자였다고 한다. 큰딸은 당뇨와 고혈압에 시달렸고, 작은딸은 편의점 아르바이트 등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했다. 어머니 혼자 식당 일을 하며 생계를 책임져오고 있었으나, 그 전 달에 팔을 다쳐 더는 일을 나가지 못하면서 가난한 삶은 죽음으로 내몰렸다.

당시 정부는 “송파 세 모녀가 이용할 수 있는 제도가 있었는데도 이용하지 못했다”며 사각지대 발굴을 위해 자원을 총동원했다. 일제조사를 하고 정부가 수집하는 개인정보의 총량을 늘려나갔다. 그러나 이들이 제도를 이용하지 못한 것은 ‘제도를 몰라서’가 아니었다. 부양의무자 기준 등 기초생활수급비를 신청하기 위한 까다로운 선정기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근로능력평가 등 선별적인 복지 정책의 좁은 문 안에 들어가지 못해서였다.

사건에 대한 진단이 잘못됐으니 결과 또한 마찬가지였다. 정부는 ‘송파 세 모녀법’이라는 이름으로 국민기초생활보장법과 긴급복지지원법을 개정하고, 사회보장급여의 이용·제공 및 수급권자 발굴에 관한 법을 제정했다. 시민사회계는 “송파 세 모녀가 살아 돌아온다고 해도 개정된 법에 따르면 여전히 제도를 이용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까다로운 복지 선별 기준은 크게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소속 스님들이 천도재를 지내고 있다. 정면에는 괘불탱화가 걸려 있으며 그 뒤편엔 대통령실이 있다. 사진 강혜민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소속 스님들이 천도재를 지내고 있다. 정면에는 괘불탱화가 걸려 있으며 그 뒤편엔 대통령실이 있다. 사진 강혜민  

- 장애인, 쪽방 주민, 전세사기 피해자 등이 말하는 ‘오늘의 가난’

회색 장삼 위에 붉은 가사를 입은 스님이 북을 치며 천도재의 시작을 알렸다. 정면에는 괘불탱화(법당 밖에서 야외 의식을 할 때 걸어 놓는 불교 그림)가 걸려 있고, 제단에는 떡과 과일이 풍성하게 놓였다. 법주스님의 염불에 따라 천도재는 진행됐다. 영가(영혼)를 불러내어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파하고, 고통스럽고 힘든 이 세상을 떠나 부처님이 계신 극락으로 가길 바란다는 염원을 담았다. 자욱한 연기처럼 낮게 깔리는 염불 사이로 방짜요령과 목탁 소리가 가난으로 세상을 떠난 영가들을 위로하듯 선명하게 울렸다.

괘불탱화 뒤로 펼쳐진 8차선 도로 넘어 대통령실이 있다. ‘가난 때문에 죽지 않는 세상’을 바라는 스님들의 기도가 향하는 곳은 탱화 속 부처님이면서 그 뒤의 대통령실이었다. 대통령실을 휘감고 있는 날카로운 철조망 뒤로 얼굴을 숨긴 경찰들이 이곳을 노려보고 있었다.

천도재를 위해 회색 장삼 위에 붉은 가사를 입은 스님들. 가운데 천도재를 주도하는 법주스님이 오른손에 요령을 들고 흔들고 있다. 사진 강혜민  
천도재를 위해 회색 장삼 위에 붉은 가사를 입은 스님들. 가운데 천도재를 주도하는 법주스님이 오른손에 요령을 들고 흔들고 있다. 사진 강혜민  

이날 추모제에는 중증장애인, 쪽방 주민, 전세사기 피해자, 사회서비스 공공성 강화를 촉구하는 사회서비스 노동자들이 모였다.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이 발생하던 당시, 진보적 장애인운동과 반빈곤운동 진영은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의 3대 적폐 폐지 공동행동’(아래 공동행동)을 꾸리고 광화문역 지하 농성장에서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장애인수용시설 폐지를 요구하며 농성 중이었다.

이형숙 공동행동 집행위원장은 지난 10년의 시간을 이야기하며 “그간 정권은 세 번이나 바뀌었지만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는 아직 이뤄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주거급여, 의료급여에서는 완전 폐지가 되었으나, 정작 가장 중요한 생계급여와 의료급여에는 여전히 부양의무자 기준이 남아있다.

장애인 당사자이기도 한 이 집행위원장은 최근 발생한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아래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 해고에 대해 말했다. 2021년 서울시는 ‘노동 능력이 없다’고 평가받는 최중증장애인을 우선 고용하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를 만들었으나, 지난해 오세훈 시장이 이 사업을 폐지하면서 중증장애인 400명은 일자리를 잃었다.

이 집행위원장은 “장애인이 거주시설에서 나와 최소한의 돈을 벌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가 필요하다. 그래야 가난 때문에 목숨을 끊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서 “그러나 오 시장은 장애계와 논의조차 하지 않고 일자리를 없애 버렸다. 최중증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비장애인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시민권을 박탈해 버린 것”이라고 규탄했다.

동자동 쪽방 주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손에는 피켓과 하얀 국화를 들고 있다. 피켓에는 “부양의무자 기준, 근로능력평가 완전 폐지! 발굴이 아니라 정책과 제도 개선!” “가난 때문에 세상을 떠난 이들의 영면을 빌며 빈곤과 차별 없는 세상을 염원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사진 강혜민  
동자동 쪽방 주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손에는 피켓과 하얀 국화를 들고 있다. 피켓에는 “부양의무자 기준, 근로능력평가 완전 폐지! 발굴이 아니라 정책과 제도 개선!” “가난 때문에 세상을 떠난 이들의 영면을 빌며 빈곤과 차별 없는 세상을 염원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사진 강혜민  

쪽방에서 살아가는 김호태 동자동사랑방 전 대표는 정부가 동자동 공공개발을 약속한 지 3년이 넘어감에도 깜깜무소식이라며 답답함을 표했다.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자동 쪽방을 공공개발 하겠다고 정부가 발표하자, 동자동에 건물과 토지를 소유한 사람들이 나타나 민간개발을 주장하며 훼방을 놓고 있다. 정부의 공공개발 계획이 3년 넘게 표류하는 사이, 쪽방에 사는 사람들은 사망하거나 쪽방을 떠났다.

김 전 대표는 “3년 전엔 동자동 쪽방에 사는 가구가 천여 세대가 넘었으나 지금은 800여 세대로 줄었다. 백여 명은 돌아가시고 나머지 분들은 동자동을 떠나 다른 동네로 이주했다”면서 “임대주택으로 가신 분들도 있는데 그곳에 가면 외로워서 동자동으로 다시 돌아오거나, 외로움을 참지 못하고 자살한다. 쪽방 주민의 삶은 이 지경인데 대통령은 빨리 공공개발 하라고 국토부에 명령 내려야 하는 것 아닌가”라면서 대통령실을 향해 호통쳤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자신이 사는 집에서 떠밀리는 사람은 비단 쪽방 주민만이 아니다. 지난해 우리사회는 전세사기 사건으로 발칵 뒤집혔다. 전세 사기로 사망한 이들 집 앞에도 각종 고지서가 쌓여 있었다.

무적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 공동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손에 든 피켓에는 “전세사기는 사회적 재난이다. 선구제 후회수! 특별법을 개정하라”고 적혀 있다. 사진 강혜민
무적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 공동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손에 든 피켓에는 “전세사기는 사회적 재난이다. 선구제 후회수! 특별법을 개정하라”고 적혀 있다. 사진 강혜민

무적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 공동위원장은 “더 어려운 상황에 놓인 이웃들을 보며 이 고통을 스스로 감내해야 한다고 자신을 채찍질하곤 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미비한 사회 제도로 발생한 문제인데 왜 이걸 개인이 감내해야 하나. 왜 죽음으로써 증명해야 하나. 내가 피해자가 되어 보니 비로소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무적 공동위원장은 “나라가 인정한 국가공인 전문가와 금융기관을 통해 대출받고, 나라가 보증하는 제도를 통해 계약했다. 전세 사기 피해자는 제도권 안에서 정당한 거래를 했을 뿐인데 왜 이것이 개인의 무지로 치부되어야 하나”라면서 “어떻게 특정 기간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러한 사건이 발생할 수 있나. 정말 제도에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게 맞나”라고 규탄했다. 그는 “전세사기 피해로 돌아가신 일곱 분의 유언이 헛되지 않도록 정부는 전세사기특별법을 개정하라”고 촉구했다.

송파 세 모녀 10주기를 추모하는 피켓을 들고 있는 동자동 쪽방 주민들. 사진 강혜민  
송파 세 모녀 10주기를 추모하는 피켓을 들고 있는 동자동 쪽방 주민들. 사진 강혜민  

신현석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사회복지지부 조직국장은 “송파 세 모녀 죽음 이후 정부와 지자체는 각종 데이터를 활용해 취약계층을 발굴하는 데만 중점을 두었을 뿐, 사회복지현장의 인력 충원, 복지 예산 확대는 없었다”면서 “결국 10년이 지나도 빈곤층의 죽음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신현석 조직국장은 현재 정부와 서울시가 사회복지 공공성을 훼손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그는 “윤석열 정부는 ‘사회서비스 고도화’라는 이름으로 사회복지서비스 제공을 위한 투자 펀드를 조성하고 금융지원을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 정책은 사회서비스 시장화를 촉진하여 이윤이 되지 않는 빈곤층에겐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할 것”이라면서 “이미 국민의힘 서울시의회 의원들은 지난해 서울시 사회서비스원 예산을 70% 삭감하고 올해는 조례마저 폐지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이날 추모제 사회를 본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정부는 약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복지를 주겠다고 한다. 이 말은 언뜻 합리적인 것처럼 들리지만 지금 정부의 행태는 ‘약한 사람들을 더 많이 만들겠다. 정부가 주는 거 적당히 받아서 살라’는 것과 다름 없다”면서 “‘약자 복지’가 아니라 ‘권리 복지’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26일 오전 11시, 용산 대통령 집무실 맞은편인 전쟁기념관 앞에서 기초생활보장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 등의 주최로 송파 세 모녀 10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폴리스라인 넘어 대통령실이 보인다. 사진 강혜민  
26일 오전 11시, 용산 대통령 집무실 맞은편인 전쟁기념관 앞에서 기초생활보장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 등의 주최로 송파 세 모녀 10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폴리스라인 넘어 대통령실이 보인다. 사진 강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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